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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인계에서 전임자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

계속 그 이유가 궁금하다

by 유진 박성민

소속된 사조직에서 임원을 내려 놓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였다.

종이 문서와 정리된 파일 폴더 및 전자메일까지 전달을 완료했다.

2년간의 업무 일정과 업무 매뉴얼 수준의 인수인계 자료를 요구하여

보편적으로 하는 1장의 인수인계서가 아닌, 28쪽의 인수인계서를 전달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보안과 관련된 업무여서 문서에 없는 번외편을 상세히 알려주고 싶어 연락을 했는데 안받는다.

본인이 필요시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인수인계 한달 후 연락이 왔다.

유선상으로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었다.

보편적으로 대면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문서로 전하기 어려운 팁을 자연스럽게 전하게 되는데

대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서에 없는 유용한 정보를 전하는데 한계가 있다.

대개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잊고 있었던 경험이나 기억을 소환하여

풍부한 조언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안면행정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화로 인수인계를 마쳤다.

전임과 후임 조직의 인수인계 식사 자리를 만드는 관례도 사라졌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랑 인수인계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한가지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의구심이 있었다.

'왜 궁금한 것을 질문하지 않지?'

후임자가 처음 하는 일이므로 더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관련된 질문이 없었다.

심지어 보안 업무인데 호텔에 여럿을 불러서 교차 검토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유출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뒷감당을 할 근거나 자신이 있나.

호텔 비용을 적립된 회비에서 함부로 사용해도 될까.

몰라서인지 용감해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매뉴얼 수준의 업무 인수인계서를 보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일까.

항상 문서의 글(text)이 아닌 맥락(context)을 이해하여 종합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때마침 후임자 중에 한명이 전화가 왔다.

후임자들 회의에서 하도 열을 받아서 워킹하러 나와서 마음을 삭히는 중에 연락을 주었단다.

이유는 후임자 회의에서 유일한 전임자인데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테랑인 그 사람의 의견을 안듣는 건 매우 위험해 보였다.

새로운 조직 문화를 형성하려는 목표가 있어서이겠지만, 무엇보다 현재가 있기까지의 역사와 운영 방식,

그리고 전임자의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이 필요한 점 등을 청취하는 것은 도움이 될텐데 말이다.

조직이 순조롭게 잘 운영되기를 바라지만 계속 불안한 것은 미련일까 아니면 후임자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그즈음 전전임자도 걱정된다며 전화를 주셨다.

서류의 인수인계만이 아니라 운영의 디테일까지 인수인계 되어야 하는데 심히 걱정된다는 의견이셨다.

내가 걱정한들, 듣고자 하는 귀를 갖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이순(耳順)의 듣는다는 것은 타인과의 조화를 의미한다.

60대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지금 이순의 가르침을 주지하되,

필요 없는 훈수나 참견을 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스린다.

걱정도 팔자인 오지랖을 줄여야 한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나 없이도 지구는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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