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것은 좋은 것입니다
쑥전 부쳐서 맑은 막걸리 한 잔 하니, 바삐 가던 봄도 쉬어 갑니다.
마당가에 쑥이 쑥쑥 컸어요.
생명력이 아주 강한 식물이라 캐내도 어디선가 쏙쏙 모습을 드러내는 흔하디 흔한 풀이지요.
진시황의 불로초가 쑥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효가 뛰어나서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의초로 불린다지요.
우리에게는 약쑥, 인진쑥, 개똥쑥, 그늘에 말린 약애 등 일상 치료용으로 친근하게 사용되었고요, 여름에는 말린 쑥을 태워 모기를 쫓기도 하고, 냉장고 냄새 탈취용으로도 좋지요.
우리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쑥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품목이지요.
바로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는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먹으며 100일 동안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않을 조건을 참고 견딘 덕분에 21일 만에 곰에서 여자로 변신했어요. 역사 문헌마다 좀 다르긴 하다 해도 우리가 단군신화를 배울 땐 <삼국유사> 본을 따라 그렇게 배웠죠.
이처럼 쑥은 환골탈태, 변신, 변화, 통과의례, 인내, 새로움 등의 의미와 아주 가깝네요. 그리고 곰이 여자로 변하는 걸로 봐선 여성에게 더 효능을 실어주고요.
그래선지 나는 쑥이 참 좋습니다.
이른 봄에 쏙 올라온 쑥으로 들깻가루 넣고 끓인 쑥국은 봄맞이 통과의례고요,
노란 콩고물 묻힌 쑥떡은, '쑥떡은 쑥떡거리며 먹어야 제 맛이야' 하며 콩고물 흘려가며 지인들과 함께 먹을 때 다 아는 얘기도 다시 재밌고 새로워지게 하지요.
또, 쑥을 뜯어말렸다가 갈아서 만든 쑥차는 쌀쌀한 날 따뜻함 더하기에 제격입니다.
흔하다는 건 우리에게 더 필요해서 가까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소중한 건 멀리 있지 않다는 말처럼요.
내 이름은 참 흔합니다. 병원에 가면 같은 이름이 100명이라고 할 정도로요.
중학교 1학년 때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가 우리 반에 5명이나 있었어요.
그야말로 김, 이, 박, 한, 홍.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 날은 교실 뒷문에서 담임선생님이 화난 목소리로 '00야!'하고 불렀어요. 우리 다섯 명은 동시에 벌떡 일어나며 '예'하고 큰소리로 대답했고요. 그 바람에 우리 반 아이들은 물론 그 무서웠던 '고급돼지' 담임샘까지 웃게 한 일이 있었어요.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때 처음으로 내 이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요.
'아부지는 왜 딸 이름을 아무따나 지어가지고, 씨.'
집에 가서 아버지께 따졌어요.
"아부지는 왜 내 이름을 아무따나 지 가지고, 신경 좀 써서 귀한 걸로 짓지."
내 얘기를 들으신 아버지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야야, 어떤 부모가 자식 이름을 아무따나 짓겠노. 좋으니까 많이 짓지."
아, 나는 이 한 방에 완전 굴복하고 말았죠. 마음이 얼마나 환해지던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어요.
그럼 그렇지. 우리 아부지가. 좋으니까 많이 짓는 거 맞네.
이후로 나는 같은 이름을 보면 무척 반가웠어요.
'아, 너도 부모님이 너를 참 아끼셨구나' 하고 말이죠.
나는 흔한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주변이 밝아지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부모님이 물려주신 마음의 유산이 많아서 참 든든한 부자로 살아갑니다.
흔하디 흔한 약초 쑥처럼 이 흔한 이름으로 살아가는 나도 세상에 최소한 해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흔한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
흔한 것의 존재 이유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참 필요하기 때문이란 걸
오늘 쑥전에 막걸리 한 잔 하며 꺼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