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에 따라 무작정 적는 글
'반딧불이' 를 본적이 있나? 아마 지금 사람들은 잘 모를거다. '무주반딧불 축제'를 통해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무더웠던 여름밤을 보면 동네 할머니들과 그네들의 손자 손녀가 언덕길 위쪽에서 아래로 돗자리를 깔고 오손도손 모였다. 큰 부채를 펄럭이며 아이들 시원하라고 바람을 불어주시고, 혹여 먹을거라도 있음 나눠먹던 시절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겨우 1~2마리가 아닌, 많은 반딧불이가 몰려 날아다니곤 했다. 그럼 나는 반딧불이를 잡을려고 얼마나 쫒아다녔던가.... 그 많던 반딧불이는 어느샌가 사라져 보이지가 않다. 한번 전혀 의도하지 않게, 늦은 밤 고향집에서 나는 뭔가 빛이 아롱아롱 움직이는걸 보았다. '하~'놀랍게도 반딧불이였다. 어렸을 때 봤던 반딧불이를 40대 후반의 내가 본 것이었다. 단 1마리가 아롱아롱 움직이는데 얼마나 반갑고 그리웠던지 한참을 보다, 반딧불이는 허공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가만히 현재의 밤과 과거의 밤을 그날 볼 수 있었다.
겨울이 되면 신나는 일도 많았다. 우리집은 마을에서 약간 지대가 높은곳에 위치해있었다. 그래서 아래 공터로 가기위해서는 언덕길을 내려가야 한다. 눈이 그친날 언덕길에 서서, 속이 텅빈 비료포대에 짚을 잔뜩 넣고, 썰매를 탔다. 내려갈때의 속도감에 흥분하고 그 재미에 푹 빠진 나는 몇시간동안 반복하듯이 눈썰매를 탔다. 지금 성인돼서 놀이기구를 타봐도 그때 눈썰매 만큼 재미있고,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을 느껴본적이 없다. 하루는 삼촌과 아버지를 따라 산을 갔다. 아버지 말로는 산에 '올무'를 놔뒀다는 것이었다. 올무에 걸린 '토끼'를 잡을 수있다는 말에 신나게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 산은 정말 멀고 또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은 온통 하얗고 하얗다. 산을 오르락내리락 몇번을 했는지 결국 보게 된 텅빈 올무는 어렸음에도 새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산 어슭부분에서 보게된 멧돼지의 똥무더기는 멧돼지를 잡는다는 잠깐의 흥분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가을이 참 좋았다. 단풍잎이 울긋불긋, 코스모스가 색색 피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먹을게 풍부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집 뒤에 있는 감이 홍시가 되고, 윗쪽으로 올라가는 언덕 밤나무에 밤이 주렁주렁 열려서였다. 집 뒷 감나무에 매달려서 그 작고 어린 아이가 아둥바둥하며 홍시를 따서 먹고, 조그마한 자루를 들고 밤나무에가서 긴 막대기로 밤을 털고, 즉석에서 밤껍질을 벗기고 먹기도 했지만 진정한 별미는 아궁이 숯불에 구워 먹는것이었다. 바짝 탄 부분도 있고 설익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때 먹은 구운밤은 정말 맛있었다. 그때는 뭘 하든 재미있고, 즐겁고, 맛있는데 지금은 왜 잘 못느끼게 된걸까? 느끼는것 마저도 나이를 먹는걸까?
봄에 산나물이 많이 자랐다. 어렸을 때 산나물 따러 이산 저산 돌아다녔다. 내가 딴 것은 아니고 어른들이 채취하는것을 그냥 따라가서 본 것이었다. 어린 칡은 그 자리에서 먹기도 한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너무 써가지고 먹기 싫었다. 어머니가 두릅을 반찬으로 내줬던 걸로 기억한다. 녹색에 뭉쳐진 맛없는 잎 싸귀를 왜 그렇게 어른들이 먹는지 그때는 이해를 못했다. 지금은 누가 보기전에 달려든다. 어렸을 때 못 먹었던 별미를 나이를 먹어 먹는 것 이런 건 좋은것 같다.
어렸을 때가 좋다. 지금도 좋다. 앞으로도 좋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의 어린시절이 그립다. 그 곳에는 젊고 건장한 아버지가 있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있으니까. 세상 사는게 어렵다 느낄 때, 이 글을 보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