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금) 6시부터 새벽2시까지
2024년 12월 13일은 보통의 금요일이 아니었다. 나의 과거,현재,미래를 봐도 특별한 날인듯 싶다. 돌아다니는것 싫어하고, 사람 만나는것 싫어하고, 오롯이 따뜻한 집에만 있고 싶은 나였는데, 그 날은 2시간 넘게 서울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6시 퇴근하자마자 사무실 옆에 앉은 나이먹은 팀장님과 함께 지하철로 갔다. 늙은 팀장님이야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를 소유하고, 주말마다 헬스장에 가는 분이다. 그에 반해 난 뚱뚱한 몸매에 중년 배나온 아저씨일뿐이니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지하철을 타는것 자체가 힘이 들었다. 출발하는 지하철 안에서 늙은 청년 팀장은 나에게 물었다.
"아니 이 추운날 그 먼곳까지 고생을 사서 하나요?"
"아마추어 글작가이지만 훗날 교과서에 기록될 사건 현장에 저도 있어야죠."
역사를 좋아하고, 누구보다 역사학자이고 싶은 나였기에, 오늘은 따뜻한 집 안에 노곤노곤하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집으로 퇴근하는 팀장을 보내고 지하철 노선을 갈아타며 7시 '당산역'에 도착했다.
원래 아내와 함께 국회의사당에 가고 싶었는데, 그 친구가 회사 업무인수인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자신은 집회 못 가니 끝나고 보자'고 했다. 그래서 보무도 당당하게 '혼자라도 가겠다'고 했는데 만원 지하철안에서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같이 가자. 당산역! 40분만 기다려"
이 친구가 참~맘에 들지 않다. 처음부터 같이 가자고 했다면 핫팩4개를 준비할 수 있었고, 8시에 이승환옹이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티비말고 연예인을 본 적없는 나이기에 연예인을 보는건 내 역사에 다른 중요한 날인것이다. 준비한 핫팩은 2개인데 이 친구가 온다면 분명 '하나'를 줘야 할것 아닌가
40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기위해 눈앞에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커피숍이 익숙하지 않은 내가 할 줄아는 주문은 '뜨아'뿐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홀짝이며 창 밖을 봤다. 창문 밖, 역주변 사람들은 분주했고, 어딘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그들에게 망설임은 없었고, 주저하는 모습도 없었다. 1.2배속 감겨지는 화면을 보는것처럼 나의 사고는 조금씩 '무' 와 '공'을지향해 가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텅빔을 느낄 때 행복했다.
"웅~~~!!" 진동소리에 '무'와 '공'의 영역에서 깨어나, 창문 밖으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뚱뚱한 사람을
봤다.
"오빠 배 많이 고프지 분식 먹으러 가자."
"분식 말고 여기 앞에 이삭토스트 있는데 토스트 먹고 바로 가자."
"아냐 오빠 토스트는 어디서든 먹잖아. 여기 분식집에서 김밥이랑 떡복이 먹자고."
"안 땡기는데...."
내가 싫다고 했으나 아내는 이미 분식집 안에 들어갔다. "빨리 먹고 가자. 들어와."
진짜 맘에 안드는 친구다.
분식집에서 김밥2줄이랑 떡볶이를 먹고 국회의사당역으로 출발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누군가가 '어디로 가야 해?'하니 다른곳에서 '사람들 따라가면 돼'라고 하는걸 들었다. 나도 아내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의 사람들을 따라갔다. 밖으로 나와 국회가 보이는 곳에는 수많은 인파가 있었고, 마이크 소리와 집회 참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붐비는곳에 가면 언제나 '빙글빙글'도는 느낌이 드는데, '아 정말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아내 손을 잡고 사람들 무리 곁을 지나쳐 걸었다. 중간 중간에 안내를 맡은 사람들이 "여기는 사람들 다 찼어요. 저쪽으로 가보세요."라는 말 덕분에 많은 집회 군중속에서 나와 아내의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은 안되지만 중간쯤인것 같았다. 가져온 백팩에서 여름용 돗자리를 깔고, 핫팩을 하나씩 나눠가진 후 둘이 같이 앉아서 집회를 보왔다.
"이승환옹 노래가 8시에 시작했을텐데....자네 때문에 듣지 못했구만"
"바보야! 이승환같은 유명사람은 마지막에 나오는거야. 사람이 참 답답하다니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정면에 보이는 대형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대형스크린에 사회자인 듯한 여성이 진행을 하며, 나와 같은 시민들이 무대에 보였다. 누가봐도 평범한 시민이었고, 용기를 내서 집회에 참가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중간 중간 노래가 있었다. 놀랄만한 일이 많았는데 생각나는 놀람중에 기억나는 건 어린 여성학생들이 당당하게 집회에 온 포부를 얘기하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이런 학생들을 보며 '어른'이라고 불리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가졌다. 나는 저 나이때 '대항해시대4를 하면서 퀘스트를 어떻게 깨야 하는지' 걱정만 했는데....요즘 애들은 정말 다르구나....학생들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가슴을 간질간질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집회를 왔다고 생각했는데 집회가 아닌 축제 콘서트장에 온 것 같구만"
"요즘은 다 이렇게 해~. 오빠는 집회 첨와서 잘 모르는구나"
집회라고 하면 누군가가 선동하고, 구호 외치고 그걸 무한 반복하는거라 생각했는데....여기 집회는 완전 달랐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연예인 응원봉을 흔들고,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발언하는 시민의 말에 깊게 호응해주고, 전체인듯 전체가 아니고 혼자인듯 혼자가 아니었다. 40년 이상이라는 시간을 살며 무리안에서 '하나'를 느껴본적 없고, '울어'본적 없고, '웃어'본 적이 없었다. '왜 나는 저 사람들과 같은 감정을 못 느끼는거지....내가 이상한가?'라는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울었고, 웃었고, '하나'를 느꼈다.
아내의 말처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이승환 옹은 10시가 넘어서 보였던것 같다. 추운날이라 이승환 옹도 목소리가 떨리고, 첫노래에서는 목이 트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가 계속되고 응원소리가 커지고 감정이 격해졌을때, 왜 연예인을 영어로 'star'라고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별'이었고, 찬란히 빛났다. 마이크를 머리위로 들었고, 노래를 불렀고, 그 힘찬 소리를 들었을 때, 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승환 옹 콘서트에 무조건 갑시다." 눈에 눈물이 고인채 얘기했다.
"뭐야 주책이야....늙어가지고....이제는 아무때나 눈물 흘려...."
맘에 안드는 친구의 소리도 그때는 좋았다. 그때 동영상을 찍은게 정말 잘한 것 같다.
1~2시간만 있다가 가려했던 나는 사회자의 "여러분 이제 해산합시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시간의 흐름을 알아챘다. 내 앞뒤 수많은 군중은 일어섰고 가지고 온 쓰레기를 줍고, 천천히 하지만 빠르게 자리를 일탈했다. 내 앞에 쓰레기 하나없는 공간을 보며 여기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오랜 시간을 함께 했었던 것이 마치 '공상'인듯 했다. 알수없는 떳떳함과 자랑스러움이 온 몸을 휘감았다. 내가 이 나라에 국민이고 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좋았다.
집으로 가기 위해 사당역에 내렸다.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인근 골목에서 방금 술자리를 파한 듯한 일련의 사람들을 봤다. 휘청이는 모습과 구토할 것 같은 모습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 저네들도 뭔가 힘든일이 있어서 과하게 마셨는가 보구나'
"오빠 여기 붕어빵집이 진짜 맛있어 돈 좀 줘봐 내가 사올께"
상념에 빠져있는 나에게 친구가 돈을 달라고 했다. 만원한장을 주니 신나게 붕어빵집으로 달려갔다. 분명 나에게 올때 양볼 가득 붕어빵을 우겨넣었을것이다.
집에 도착하고,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시간을 보니 새벽2시가 넘었다. 몸은 피곤했고, 추웠지만 맘은 이상하게 뿌뜻한 그런 하루였다. 나는 오늘 역사를 보고 느꼈고 그리고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