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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빵 Mar 27. 2024

육아로 아빠가 엄마를 이길 수는 없더라

딱히 이기고 싶은 건 아닌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그 흔한 맞벌이 부부다. 집 밖을 나서면 각자의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온다. 요즘은 바깥사람, 안사람 따지는 것이 무용한 시절이다. 바깥에서는 각자 바깥일을 하고 안에 들어와서는 각자 안쪽일을 한다. 그래서 많은 맞벌이 부부들이 집안일로 마음 상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집안일에 대해서 다툼이 난 적이 없다. 그만큼 깔끔하게 분담하고 있어서다. 9 대 1. 내가 9다. 그러니 다툼이 일어날 틈이 없다. 나는 행복하다. 1도 행복할 거다.


    아내가 임신을 확정 짓고, 점점 배가 불러오면서 나의 가사의 비중은 9.5가 되었다. 9나 9.5나 도긴개긴이다. 앞으로 맞이할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10도 상관없다. 그렇게 바닥 걸레질을 하면서 나에게 문득 스친 생각이 있었다.


    '가사 + 육아. 9 + 9 = 18. 아이가 태어나면 18 대 2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건 난도가 높은데?'


    문과 남자의 무례한 셈법이다. 오만한 바보가 도출한 어리석은 결론이다. '육아'라는 장르에 대해서 아빠가 엄마를 앞지를 생각을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비웃음이 난다.

    이런 걱정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결혼하기 전까지 '가사'라는 장르에 손을 담가 본 적도 없는 내가 빠르게 치고 나가 결국 9 대 1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육아'라는 장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비웃음을 넘어 안타깝기도 하구나, 아빠라는 생물이여.


    정보의 격차가 아찔하다.

    엄마는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육아의 기초 교육을 받는다. 이 정도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영어의 알파벳 수준이다. 격차가 크게 벌어진 가장 큰 요소는 '맘카페'라는 존재다. 맘카페란 곳은 어떠한 곳인가. 각종 육아 정보와 질문과 경험과 광고까지 육아에 필요한 필수 가입 공간이다. 그곳에서 알게 된 소모임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그냥 보고 있기만 해도 각종 육아 정보가 오토매틱으로 배송된다.

    "목욕을 시켜줄 때 말을 걸어주면 좋데"

    "이 브랜드 분유가 점도가 높아서......"

    "이 시기에는 상체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수많은 기저귀, 분유 브랜드와 저렴한 구매처. 아기 목욕 방법. 각종 약에 대한 정보. 어린이집. 성장 발육의 단계. 그 밖에 수많은 정보와 잡담. 아내는 수많은 엄마들의 경험과 노력과 불만(?)을 간접 경험할 수 있고,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다. 파파카페, 아빠카페, 대디카페. 난 이런 곳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잘 모르는 아빠는 잘 아는 엄마의 지휘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스킬이 다르다.

    아내는 약속으로 외출하고, 아이와 내가 둘이서만 지내는 날이었다. 이유식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외출복을 입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달리다가 왔다. 나는 나 자신의 육아 효용성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한마디 하기 전까지는.

    "이게 뭐야? 옷 입힐 줄 몰라?"

    몰라. 뭐. 어쩌라고.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입어온 모든 옷은 단추가 앞에 있었단 말이야.

    색상 문제도 있다. 옷장에 있는 나의 옷은 흰색, 검은색, 회색이다. 가끔 색 있는 옷이라면 네이비다. 그에 비해서 아이 옷은 빨주노초파남보 7 색상이 부족하다. 나의 패션 스킬은 검은 바지에는 검은 양말이 끝이다.

    이 사건 이후로 아이 옷을 입히면서 앞 뒤도 신경 쓰고, 컬러감도 신경 쓰지만, 인간이라는 종족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결국 아내가 옷을 선별하여 침상 위에 디스플레이하는 프로세스로 마무리되었다.


    같이 있는 시간의 차이가 격의 차이

    아내는 육아휴직으로 하루종일 아이와 같이 있는다. 나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온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나의 붕어빵을 안아보려 다가가지만, 안 와. 무언가를 흔들고 소리 내고 춤추고 노래 불러도, 안 온다. 이 검정 아저씨가 누구인지 검색하기 위해 이제 막 시작한 메모리에서 한참 탐색기를 돌려야 한다. 얼굴과 본체는 엄마를 향해 있는 채로 검은색 눈동자만 아빠를 향한다. 표정을 보지 않아도 경계심이 느껴지는 눈동자다. 아, 무정하구나. 이럴 땐 얌전히 육아라는 경기에서 볼보이를 하고 있어야 한다.


    가사 9에 육아 9는 더해지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10 대 10이라는 스코어로 동률이 되었다. 난이도와 중요도에 따라서 가산점을 더하자면, 10 대 40 정도 되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까지 합치면 더 나올지 모른다. 

    이대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두 손에 딸의 대소변을 묻히지 않으면, 저 밖에 지나다니는 타인보다 조금 가까운 존재밖에 될 수 없다. 그건 내가 싫다.

    내 비록 육아로 아내를 이길 수는 없어도, 다른 아빠들을 이겨 보겠노라. 다른 엄마들이 보기에 '자네, 육아 좀 하는군?'이라는 소리를 들어보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수세미에 세제를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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