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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Sep 04. 2024

16."너는 나의 햇살이야."

ㅡ피터르 데 호흐, <아기 요람 옆에서 보디스를 묶고 있는 여인>

“세원아 , 이건 뭐야?”

“응, 그건 공룡이야.”

“그럼 이 옆에 있는 것들은 뭐야? 공룡이 갖고 노는 공이야?”

“어... 그건 공룡 동생들이야. 지금은 알에서 살고 있어. 쫌 있으면 알에서 나와서 공룡이랑 놀아줄 거야.”

“와, 그런데 동생이 이렇게 많아? 열 개도 넘겠네…”

“응. 난 동생이 많이 많이 있으면 좋겠어.” 


세원이는 동네 친구인 정호 엄마에게 그림을 배우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정호 집에 가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일은 다섯 살 세원이에게는 새롭고 신나는 놀이었다. 나 또한 정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뿌듯한  양육 품앗이를 했다.

정호네 집에 다녀온 세원이는 오늘 그린 그림을 펼쳐 놓으며 한껏 자랑을 했다. 애리조나의 뜨거운 햇빛을 잔뜩 받고 온 아이. 곧 이어질 엄마의 칭찬을 기대하는 눈이 그날따라 햇살만치 똘똘했다.



"언니, 내 이름은 예원이야"

세원이는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눈만 뜨면 함께 노는  나정이도, 이레도 다 동생이 있는데, 혼자만 동생이 없다며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노래처럼 하곤 했다.

그 노래는  얼마 되지 않아 하늘까지 닿았다. 남편이 학업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귀국을 했다. 감사하게도 곧  임용이 되었다. 남편 내조와 육아로 잠시 내려놓았던 대학원 과정을 다시 준비했다. 두 학기만 더 하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작조차 힘들었다. 덜컥 둘째가 생긴 것이다. 


출산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날, 남편과 나는 세원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사서 예쁘게 포장했다. 작은 카드도 준비했다. 그리고 장난처럼 키득거리며 왼손으로 편지를 썼다. 


"언니, 내 이름은 예원이야.(성별을 알고 있었기에 둘째 이름을 미리 지어 두었다.) 

언니 동생이 되어서 무지 기뻐. 내가 빨리 무럭무럭 자라서 언니랑 신나게 놀아줄게. 앞으로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우주에 버려진 듯한 일곱 살짜리의 소외감

산통이 시작되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장난감을 세원이 책상에 놓아두고 병원으로 향했다. 선물은 엄마아빠의 사랑을 이제는 동생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세원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준비한 ‘뇌물’이었다. 

세원이는 기다렸던 동생이 선물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와 주었다며 기뻐했다. 


친정에서 한 달 산후조리를 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셋째 고모 집에서 살고 있던 세원이도  데려와 우리 네 식구는 함께 살게 되었다.  아름답고 뻔한 동화의  결말같이 행복하게 영원히 살 것만 같았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다. 


세원이가 밤마다 이부자리에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떼어낸 후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몇 번은 피곤했었나 그냥 넘어갔지만 매일 밤 반복되는 실수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입학을 해야 할 텐데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여섯 살 터울이어서 동생 스트레스 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나이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나 보다. 더 품어주고 살펴보아야 했는데, 부족하고 못난 엄마는 아이를 다그치기에 바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세원이의 실수는 질투나 동생에 대한 미움에서 온 것은 아니었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소외였다. 온 관심과 사랑을 잃어버린, 우주에 홀로 존재하고 있는 듯한 외로움과 불안함을 겨우 일곱 살 나이에 알아버린 것이다. 

피터르 데 호흐. <아기 요람 옆에서 보디스를 묶고 있는 여인>. 1660~1663. 92x100cm. 캔버스에 유채. 베를린 국립 회화관 




네덜란드 그림에서 만난 내 아이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들은 미술사에서 새로운 영역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이전의 주제가 되었던 신화나 서사적 영웅, 성경의 내용에서 벗어나 소박한 서민의 생활을 회화 속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스냅사진처럼 소소한 일상의 정경을 묘사한 (일종의) 풍속화를 우리는 ‘네덜란드 장르화’라고 부른다. 


피터르 데 호흐(Pierter De Hooch, 1629-1684)도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학문과 예술이 만개한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보낸 화가였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얀 베르메르(Jan Vermeer, 1632~ 1675)와 함께 ‘델프트 화가 조합’에서 활동한 피터르 데 호흐는 소시민 가정의 일상적인 풍경을 소박하고 따뜻하게 그렸다. 

초창기엔 선술집 풍경 등 다소 풍자가 섞인 세속적이면서도 다양한 삶의 모습을 묘사했지만, 결혼(25세, 1654년) 후에는 가정생활의 평범하고 따뜻한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그림에서 특별함이나 화려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보여주는 은은하게 빛이 들어오는 실내의 풍경은  우리가 경험하고 꿈꾸었던 일상과 많이 닮아 있다. 


젖먹이와 어린아이를 돌보는 젊은 여인의 한때를  포착한  <아기 요람 옆에서 보디스(여성의 상의)를 묶고 있는 여인 Woman Lacing Her Bodice Beside a Cradle>에서 그는 일상적인 가정생활을 숭고하게 묘사해 놓았다.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림이다. 하지만 내 눈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안쓰럽고 가여워서 가슴 한켠이 짠해진다. 아이의 ‘소외’가 보이기 때문이다. 


따사로운 눈빛이 고프지만 꾹 참고 있는 

그림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그림의 왼쪽부터 찬찬히 살펴본다. 연극의 무대 장치 같은 그림 왼편 끝에는 아기 요람이 놓여 있다. 관람자들에게 요람 속 아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요람 곁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이 빨간 보디스의 끈을 여미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 막 수유를 마친 모양이다. 아기의 엄마인 듯하다. 여인의 표정에서  ‘모성과 돌봄’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아기 엄마의 옆에는 충직과 순종을 상징하는 강아지가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화가는 젖먹이를 보살피는 행위가 여성이 지켜야 할 의무이자 미덕임을 강아지라는 상징물로 강조하는 것 같다. 


높이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실내를 따뜻하게 밝혀준다. 섬세하고도 미묘한 빛의 표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랑과 따뜻함이 존재하는 가정임을 느끼게 한다.

침대를 뒤로 하고 요람과 엄마가 앉아 있는 바닥은 검정과 흰색의 대리석 바닥이다. 얼마 전,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집에서 보았던 대리석 바닥과 꼭 같다. 그러고 보니 베르메르의 그림에서도 보인다. 당시 실내의 바닥재는 이렇게 생긴 대리석 디자인이 유행이었나 보다.

그림의 오른쪽 바닥은 요람과 아기의 엄마가 있는 곳과 색과 디자인이 사뭇 다르다. 오렌지색 바닥, 그곳에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문을 향해 서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에 서 있는 듯한 모습. 엄마가 동생에게 보여주는 햇살처럼 따사로운 눈빛이 고프지만 꾹 참고 등 돌리고 있는 듯한 아이. 아이의 뒷모습에 그늘이 가득하다. 그 그늘에 드리워진 소외감이 진하다. 내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순간 뭉클해졌다. 


'불량엄마'의  변명

동생처럼 이뻐해 달라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떼라도 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그나마 덜 미안했을 텐데...

그저 속 깊고 대견한 딸이었다. 그야말로 ‘어른 아이’ 같았다. 표현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했던 내 딸. 키울 때는 살피지 못하고 지나고 보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  속이 아리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만 하고 있기에는 아이들은 너무도 빨리 자랐다. 잘했다고 더 안아주고, 입 맞추어주지 못한 시간들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이제 다 커버린 아이들은 가끔 으르렁대며 싸우지만 고맙게도 서로를 끔찍이도 위한다. 어떤 때는 둘이 꿍짝이 잘 맞아  엄마를 ‘소외’시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비록 아이 마음을 몰라주었던 '불량엄마'였지만 그래도 할 말은 있다고 뻔뻔하게 이야기해 본다. 그날 엄마의 칭찬을 기대했던 다섯 살 세원이의 눈망울을 하고서...

"그래도 네가 그렸던 공룡 알만큼 동생을 낳아주지 않은 거, 그건 정말 감사할 일이지?"




<함께 듣는 곡>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 Stevie Wonder 작사. 작곡 


당신은 내 인생의 햇살이어요.

그것이 내가 항상 당신 곁에 있는 이유랍니다.

당신은 나의 소중한 사람이에요.

영원히  당신은 내 마음 안에 있답니다.

지금이 사랑의 시작인 것 같아요

비록 내가 당신을 백만 년 동안 사랑해 왔지만요.

우리가 헤어진다고 생각만 해도

난 내 눈물에 익사할 정도로 슬퍼집니다. 

당신은 내 인생의 햇살이어요.

그것이 내가 항상 당신 곁에 있는 이유랍니다.



어렸을 적, 엄마는 잠자리에서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습니다.

그 노래는 1940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주지사이자,  컨츄리 가수인 지미 데이비스(Jimmie Davis 1899~2000)가 작곡한 <You are my sunshine >이라는 노래였지요.

엄마는 장조인 노래를 단조마냥 참 청승맞게도 불렀습니다. 잠이 들랑 말랑 한 나에게 주문처럼, 잊지 않고 꼭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괴한 잔혹 동화의 마지막문장 같은 그런 이야기였어요.

“너는 엄마처럼 살면 안 돼. 꼭 성공해서 엄마의 복수를 대신해 주어야 해.”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살면서 억울하고 분했던 일이 참 많으셨나 봅니다. 저는 복수가 싫어 엄마가 인정하는 성공을 하지 않았습니다(못한 게 아니라...). 


피터르 데 호흐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 )의 노래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자장가로 불러주셨던 노래와  제목이 닮은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라는 곡입니다. 제목은 '이 노래가 그 노랜가?’ 할 정도로 어슷비슷하지만 가사의 내용은 너무도 다릅니다.

스티비 원더는 1973년에 발표한 이 노래에서 누군가에게  "당신은 내 삶의 햇살이며 또한 내 눈동자가 같은 사람이기에 내 마음에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그는 햇살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도 말이죠.

누구에게 이리도 따스한 연가를 바쳤을까요?

제 생각엔 <Isn’t She Lovely?>라는 노래 때문인지 연인보다는 딸에게 들려주는 노래인 듯합니다(아닐 수도 있고요). 


이 땅에서 발 딛고 사는 모든 생명체는 햇빛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모든 관심과 사랑을 쏟아지는 햇살처럼 받아왔던 아이는 동생이라는 연적을 만나 햇빛을 못 보게 된 식물처럼 삐쩍 말라갑니다. 그래서 이전에 무제한으로 받아왔던 따뜻한 온기를 찾아 본능적으로 햇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늘 속에서 햇빛을 향해 서 있던 그림 속 아이처럼요. 그 아이가 남의 아이 같지 않습니다. 꼭 내 아이인 듯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아이를 찾아갑니다. 그늘 속에 있던 그 아이를 꼭 안아주며 이 노래의 가사를 낮은 목소리로, 그리고 천천히 속삭입니다. 

'너는 나의 햇살이야.’

아이를 안아주고 돌아오는 내 마음속엔 햇살이 가득합니다. 그 햇살은 영원히 지지 않을 듯합니다.


https://youtu.be/SbenaOqv4yQ?si=x3pF9_Z2GdCLwr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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