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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피아 Nov 30. 2024

무지출 챌린지, 과연 진짜 무지출일까?

과거의 내가 이미 돈을 썼거나 미래의 내가 돈을 쓸 예정이거나

올라가는 물가 때문에 '무지출 챌린지'를 하며 며칠, 혹은 몇 주간 0원을 쓴 경험을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영상들을 심심치 않게 봤다. '챌린지'라는 단어는 사람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다. 특히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챌린지를 성공한 모습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무지출 챌린지는 단기간 능력을 키워 지금보다 두세 배 더 버는 것이 아니라, 영상 속 사람들처럼 돈을 쓰지 않고 생활해 보는 것이다. 이건 한 번쯤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플렉스를 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것보다는 공격적인 절약이 자산 관리에 훨씬 도움이 된다. 


하지만 조금 삐딱하게 이 챌린지를 바라보자면,


오늘의 내가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내가 이미 돈을 썼거나 미래의 내가 돈을 쓸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식비를 예를 들자면, 내 입에 들어가는 모든 식재료들을 직접 키우지 않는 이상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 몇몇 영상을 봐도 이미 냉동실에 있는 식재료들을 이용해서 끼니를 해결하기 때문에 무지출인 거다. 과거에 필요이상으로 많은 장을 본 나의 흔적을 오늘의 내가 없애는 것이다.


이는 지난 일주일간 과식해서 며칠 절식하며 디톡스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쉬지 않고 과식하는 것보다 백배 낫지만, 애초부터 과식을 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데 집중해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에세이 '퇴사하겠습니다'를 쓴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는 전기없이 사는 미니멀리스트이다. 집에 전기가 없기 때문에 냉장고가 없고,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매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서 그날의 식사를 만들어야 한다. 매일 돈을 써서 장을 봐야 하니, 무지출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실천하는 삶의 방식은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무지출 생활에 가깝게 느껴진다. 작은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살며 전기와 가스를 쓰지 않고, 서랍장 하나에 들어갈 만큼의 옷만 소유한 채, 하루에 필요한 만큼의 식료품을 매일 구입하는 그녀의 일상은 최소한의 소비로 삶을 꾸려나가는 극단적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 라이프 스타일을 진심으로 즐기며 유지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살다 보니 과소비라는 개념 자체가 생길 틈이 없다. 이런 삶이야말로 진정한 무지출 챌린지의 성공 사례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무지출'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원래 소비를 즐기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것도 타고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오랜 기간 소비 욕구를 억누르다 보상 심리로 인해 요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오늘 얼마를 썼지?"에 매달리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방향성을 정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비 방식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회사에 점심을 싸 가지고 가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서 이것저것 살림을 쉽게 해 보는 것을 시도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브런치에 '살림학개론'이라는 연재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비가 줄어들었다.


이 글에서 이나가키 작가를 예로 들었지만, 나는 그녀의 생활방식을 시도해 볼 생각조차 안 한다. 난 전기가 좋다! 그래서 앞으로도 무지출 챌린지는 내 인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될 듯하다. 


나에게는 소득의 50%는 저축하고 나머지 50%를 지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돈 관리다. 그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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