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와 "여유"가 쉽게 공존할 수 있을까?
유튜브에 올라온 재테크 영상들을 보면 "투자를 하려면 종잣돈(시드머니)을 모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이때 종잣돈은 5천만 원, 1억 원 정도의 큰 금액이다.
종잣돈을 모으라는 것에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큰 금액의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근검절약하는 습관이 생긴다. 돈의 대한 내 태도가 바뀌는 거다. 두 번째는 수도권의 집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내 집 마련을 원한다면 목돈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의미 있게 큰 금액의 돈이어야 거기에서 오는 투자수익도 의미 있는 크기가 된다. 예를 들어, 5천만 원 주식투자를 해서 10% 배당금을 받는 것과, 5만 원 투자해 5천 원 배당금을 받는 것은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스스로의 힘으로 종잣돈을 모으는 노력을 응원하면서도, 나는 사람들이 그 종잣돈으로 주식투자를 처음으로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종잣돈은 내가 입고 싶은 거 안 입고 먹고 싶은 거 안 먹으면서 열심히 아끼고 노력해서 만든 돈이다. 따라서 나는 이 돈에 굉장히 감정적으로 투자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내 노력의 산물인 시드머니, 너무나도 소중한 돈이지 않는가?
이렇게 소중한 종잣돈 5천만 원을 주식에 투자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정해 보자. 실패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실패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주식투자를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한 푼 한 푼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돈을 잃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혹은 열심히 투자책을 읽고 장기적으로 우상향 한다는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샀다고 치자. 세상에나, 일주일 만에 주가가 10%가 빠졌다. 열심히 모은 5천만 원이 하루아침에 4천5백만 원이 되었다. 그다음 주에 또 빠져서 4천만 원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나라면 멘탈이 붕괴될 것이다. '몇 년간 어떻게 모은 돈인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주식투자는 여유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내 모든 노력을 다한 돈에 과연 얼마만큼의 여유가 있을까?
우리는 머리로는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 것을 안다. 여기서 장기투자라고 하면 적어도 5년 이상의 투자를 말한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부동산의 것보다 크고, 주식은 부동산보다 사고팔기가 쉽다. 핸드폰 앱을 켜고 버튼만 몇 번 누르면 된다. 부동산은 내가 실거주라도 할 수 있지, 주식은 눈에 보이지 않은 금융자산이다. 그래서 위에 같은 상황이 오면 사람들이 패닉을 해서 가지고 있는 주식을 파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패닉셀'이라고 한다.
투자 관련 모든 매체에서 사람들이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장기주식투자를 통해 복리의 마법을 누려라"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투자하면, 이자에 이자가 붙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 돈이 두배로 불어나는 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숫자로 복리효과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지 보여줘도, 내가 직접 내 돈을 투자해서 복리효과를 경험해 본 것만큼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딱 한 번만 "복리의 은혜"를 받으면, 그때부터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긴다. 하지만 이 은혜를 경험하려면 7-8년 정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미국 S&P500 ETF에 투자했을 경우, 역사적으로 이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 내 원금이 두 배로 불어난다.
복리의 체험은 작은 돈으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내가 그랬던 케이스다. 미국에서 첫 직장을 다닐 때, 월급의 일정 부분이 자동으로 퇴직연금펀드 (401K 플랜)에 들어가 주식에 투자되었다. 내 경우, 월급의 6%가 꾸준히 투자되었는데, 이 금액은 월급의 극히 일부라 소액 투자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퇴직연금펀드는 59.5세까지 인출할 수 없기 때문에, 20대 중반의 나는 주식가격이 올라가던 내려가던 관심이 없었다 (20대 청년에게 60대의 라이프는 머나먼 일이다). 어떻게 보면 여유 가득한 주식투자였던 셈이다. 첫 직장을 떠나고 한 7년 정도 지났을까, 문득 궁금해서 401K 플랜 잔액을 확인해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내버려 두었을 뿐인데, 잔액이 정확히 퇴사 시점의 두 배로 증가해 있었다. 이 경험이 바로 복리의 마법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내 20대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사람들이 완벽한 목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푼돈”이라 여겨지는 적은 돈부터 주식투자를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한테 받는 용돈의 5%나 첫 직장 월급의 5% 정도라도 꾸준히 오랜 기간 동안 투자하면 된다. 이처럼 적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은 멘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10만 원을 투자했을 때 주식시장이 20% 하락하면 8만 원이 된다. 2만 원의 비실현 손실이 아쉽긴 하지만, 1억 원이 8천만 원으로 줄어드는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다. 또한, 마음의 여유가 좀 있기 때문에 2만 원 떨어졌다고 패닉셀할 가능성도 낮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꾸준히 투자하며 복리의 마법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그때부터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해서 투자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게 시드머니를 준비하고 투자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푼돈도 투자 시작하기 충분한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