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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준수 May 08. 2024

먼저, 시력부터 확인하라

뜻밖의 아주 작은 것이 실마리 일 수 있다

1. 아이가 7세때의 일이다. 지하철로 놀이동산 가는 중 아이에게 물었다. 

“다음 역이 어디지?” “…….”  

당시 아이는 한글을 막 깨우친 때였는데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지하철 벽에 붙어 있는 좀 더 큰 글씨를 물어보았는데 그것도 읽지 못했다. 순간… 생각이 멈춰져 버렸다. 아이의 시력이 많이 나빠진 것이다. 아니, 이렇게 되도록 아빠가 몰랐다니……마음이 먹먹해졌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는데 차마 그렇게 말도 못했다. 


아이가 내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나의 감정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적절한 표현도 떠오르지 않았다. 얼얼함을 안고 놀다가 다녀와서 안경을 맞추었다. 


(대학생때 라식수술을 해주었는데 아내와 함께 가서 기다려주었고, 안경없이 밝은 세상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 이전 기억과 오버랩 되어 더 기뻤다. 그때의 미안함을 의술의 도움으로 해결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고 못다한 숙제를 한 느낌이었다.)


2. 그런데 돌아보니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종로학원에서 재수를 했는데 어두운 불 빛 밑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후반기 들어서면서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사는데 불편함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그 상태로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공부에 흥미를 많이 느끼지 못해서 나는 주로 맨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시력이 나빠져서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3주가 훌쩍 지나갔다. 특히 로직을 봐야 하는 경제 수학 시간이 불편했고,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지나다 보니 그 과목에 흥미가 더 없어졌다. 나중에 이것을 커버하느라 군 전역 후 3학년이 되어서 고생했다. 


그때 내가 해야 하는 처방은 간단했다. 앞자리에 앉든지 안경을 일찍 맞추는 것이었다. 그랬으면 고생도 덜하고 학업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학점 후회는 없으나 시간과 기회를 놓친 그 부분을 반성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나의 행동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그게 당시의 나였다. 


3. 이전에 회사에서 경력 디자이너들이 힘들어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디자인 사항을 시스템에 입력하는 일이었다. 신입 사원부터 익숙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니지만, 그런 일이 생소한 외부 경력 디자이너들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치 초보자가 된 것처럼 일에 자신감을 잃게 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 


회사로 볼 때도 좋은 디자이너 뽑아 놓고 진짜 얻어낼 것을 얻지 못했다. 그것을 해결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였다. 우리가 처음에 간단한 엑셀이나 PPT작성법을 모르면 당황하는 것과 비슷하다. 


4. 살다 보면 아주 작은 것 하나가 큰 일을 어렵게 하거나 망치는 것들이 있다. 

자녀가 학습을 어려워한다면 먼저 아이의 시력부터 확인하라는 말이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신입 사원이나 경력 입사자가 적응에 힘들어 한다면 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시스템이나 관계, 혹은 소통 방식 중 아주 간단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아주 사소한 일이란 없다. 아니, 처음부터 엄청 큰 문제는 눈에 보이기에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산보다 물집으로 인해 등산에 실패한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작은 문제라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상대 입장에서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이 동료나 리더의 할 일이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부지런함, 즉, 부하의 어려움을 살피는 생각과 행동의 부지런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과 함께 하는 가족, 동료 할 것 없이 혹시 시력이 나쁜 것은 아닌지 와 같은 작은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없다. 사소한 것이 결정적 차이를 가져온다. 


(사소하지만 가장 크게 해결한 사례는 CT촬영할 때 “숨을 멈추세요” 라는 한문장이다. 촬영 때 사람이 움직여서 정확도가 떨어졌는데 해결 방법은 숨을 멈추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한 혁신에 가까운 비결이다)


적용질문

1. 당신이나 혹은 당신과 함께 하는 주변 사람 중에 아주 사소한 것을 모르거나 하지 않아서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것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무엇인가?

2. 내 주변에서 사소한 것으로 인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시스템화 하거나 살펴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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