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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핑크 Sep 26. 2023

9월엔 무화과를 먹어야지


 출산 후 잠시 입원실에 있을 때였다.


 "무화과를 좀 사 왔어요."


선물로 건넨 박스에는 비교적 생소한 모양새의 과일이 담겨있었다.

무화과라고...?


어릴 적 할머니가 말린 무화과를 준 기억이 났다. 말린 무화과는 장난감 유리구슬 정도의 크기였고 반을 똑 쪼개면 꾸덕꾸덕한 잼 속에 많은 씨앗이 박혀있는 모습이었다. 겉껍질의 바삭함을 깨고 씨앗을 톡톡 터트리며 젤리 같은 식감으로 씹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가 받은 무화과는 어디선가 갓 따온 것으로 말렸을 때의 모습과는 크기 면에서 큰 차이가 났다. 촉촉한 과일인 상태를 보며 거꾸로, 말린 무화과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래서 이런 모양이었군-' 하는 이해를 하는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게 무화과라는 과일은 이름의 익숙함을 제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만남이 시작되었다.


마치, 오랜 기간 얼굴도 모른 채 메시지로 대화를 나눠서 그의 이름과 사생활은 익숙해졌지만, 막상 얼굴을 맞닥뜨렸을 때, 익숙한듯하면서도 생소한 그 느낌. 그런 만남을 갖게 된 과일이 나에게는 무화과인 셈이다.


무화과가 그 당시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부드러운 식감이 한몫을 했다. 출산 후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멀쩡하던 이도 약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 조리원을 예약하고 선물로 준 잇몸 칫솔을 보며,


  "도대체 이런 건 왜 주는 걸까? 쓸데없이.."


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출산 후 얼마 후에 이 칫솔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를 보호하며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몇 가지 없는데 무화과를 씹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이 과일을 선물해 준 사람은 '산모의 몸 상태를 이해하고 구매한 배려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과장된 해석을 이어갈 정도였다.


그로 인해 무화과의 느낌과 기억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갑자기 소중해진 무화과는 어느새 두 알 정도가 남았고 조금 아껴두었다가 기분이 좋을 때 마지막을 즐겁게 해치웠다.


무화과를 생각하면 항상 이 기억이 떠올라

매년 9월에는

아이의 생일을 자축하듯 무화과를 산다.


남편은 내가 무척이나 무화과를 좋아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떤 과일에 대한 기억이 이토록 강렬하고 깊게 남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9월은 꼭 무화과가 먹고 싶어 진다.


무화과 좋아해?


몇 주 전, 친구로부터 무화과를 좋아하냐는 질문과 함께 한 박스를 선물로 받았다. 마트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조금 더 작은 사이즈로 큰 박스에 한 아름 무화과가 담겨있었다. 한눈에 봐도 근처 마트의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 난 거야?"


혹시나 근처에 새로 과일가게가 생겼나 해서 물어보았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멀리 목포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무화과는 영암이 유명한데 목포가 그 근처라 시장에 들러, 마트에서 보는 비교적 큰 모양이 아닌 재래종을 골라 구입을 하셨단다. 재래종은 마트의 것보다는 작은 크기였는데,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작지만 더 달콤한 맛이 난다고 했다.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며칠 뒤 메신저에서 무화과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릴 때부터 생 무화과를 먹고 자랐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생 무화과를 본 기억도, 먹어본 적도 없지만, 목포에서 자란 그녀는 무화과는 어릴 적부터 자주 먹던 추억의 과일이라는 것이다.


그녀에게 무화과는 어릴 적 추억의 과일이고,

나에겐 30년 만에 먹어본 생소한 과일이라는 상반된 꼬리표가 달렸다.


그동안 존재도 알 수 없었던 과일이 이 나라 저 아래에서는 흔한 과일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그렇다면 무화과가 서울로 올라오기까지 약 30년이 걸렸다는 것일까?  


마트에 즐비하게 놓여있는 무화과를 보면 참으로 반갑다.

두 손에 여유가 닿을 때면 그날의 기억을 떠올라 무화과 한 박스를 사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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