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따위는 모르겠는데, 넌 알아?
뇌: 어.. 지금 탭이 너무 많이 열려있는데, 몇 개 닫을게!
우리: 어?
뇌: (가장 중요한 탭을 닫아버리며) 됐다!
우리: 아니 왜 그걸 닫아
우리 뇌가 생각하는 중요성이란 우리가 정의 내리는 중요성과는 다르다. 물론 얼마 남지 않은 시험 준비나 프로젝트 마감 기한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안다. 그렇지만 집중이 안 되는 이유는, 우리 뇌가 받아들이기에 지금 당장 우선순위로 둘만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사냥을 당하고 있나? 아니다.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자극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내게 즉각적인 만족감과 보상을 주는 눈앞의 바로 이 자극이다. 뇌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삶이 굴러가지 않는다. 우리 뇌의 '중요성'과 우리 자신의 정의하는 '중요성'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뇌를 재조정해야 한다.
대화형 미디어 중에서도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에 익숙해진 나머지 고립된 상태를 꺼리고,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무언가를 놓치진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전에 소개된 Fear of missing out이라는 단어처럼 혼자 있는 시간과 고독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는 이 때문에 우울해하고, 불안해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누군가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 언젠가는 불쾌한 고독감과 외로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째선지 우리는 다른 그 모든 것을 연습해도 그 연습만은 상당히 게을리한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 뇌가 그 시간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이전과 달리 우리에게 허락된 사유의 시간이란 많지가 않다. 사유가 곧 시간 낭비라고 여겨지기도 쉽다. 평균 수명을 고려해 약 80세에 우리의 삶이 끝장난다면, 아니 어떤 모종의 이유로 우리의 삶이 내일 종결된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후회가 없을까.
80세에 나의 뇌가 회고할 수 있을 만큼의 인지능력을 건사하고 있다면, 나는 뭘 떠올릴까? 내 인생을 잘 살아왔구나, 참 그럼직한 인생이었구나 만족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그때에 만족할 만한 삶을 살기 위해 매일을 절실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내가 뭔가를 함으로써 느끼는 소소한 충족감도 중요하다. 그게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일지라도 우리는 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남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주는 충족감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그게 내 삶의 전반을 좌우하게 되었을 때 문제가 될 뿐이다. 나아가 그 대부분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닐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연결되어있지 않으면 느끼는 불안감이 커서 그만둘 수가 없을 때 멈춤 버튼을 누를 필요가 있다.
Joy of missing out(; JOMO)이라는 단어가 있다. FOMO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이나 특정 사건에서 빠지길 두려워하는 현상이라면, JOMO는 일부러 정보나 이벤트, 경험으로부터 배제되어 얻는 기쁨이나 만족감을 말한다. FOMO는 주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이나 특별한 순간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발생한다. 때로는 무리하게 그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거나 그 순간에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그러지 못하면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을 경험하게 된다. 그도 그럴게 원하지 않는 순간에 무리해서 함께해 봤자 공허할 뿐이다.
반면에 JOMO는 스스로의 생활과 선택을 존중하고 현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심리적 안정감과 관계가 있다. FOMO가 일으키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우리의 적응을 해친다면, JOMO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현재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행복감을 가져올 수 있다. SNS를 지속적으로 체크해도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일상과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에너지도 마찬가지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한 일상을 일정 순간에서 배제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게 된다면 정작 원하고 해야만 하는 일에 할애할 시간이 줄어들고 만다. 그럼 나라는 존재는 점차 희미해지고, 특별한 시간을 남과 함께 보낸 것으로부터 내가 정의된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분명 사회적 동물이지만, 나라는 개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내가 누군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하면 혼란스러워지기 십상이다.
JOMO가 중요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주목할 가치가 있는 일을 스스로 숙고하고 나를 중심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그 결정의 책임도 내게 있다. 내게 주어진 많은 선택지 중에서 정말 원하는 것을 골랐다. 내 가치관과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활동으로 내 삶을 채운다. 우리 뇌가 정의하는 중요성과 내가 판단한 중요성이 점차 합의점을 찾아간다. 그 간극을 좁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의 균형이 점차 회복된다.
하루의 시작은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폰을 두고 나오면 그날 하루는 끝장이니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
위의 문장에 얼마나 동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고요할 적에, 얼마나 아득한가요?
이미 고요가 전혀 부재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소아과 전문의 협의인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 AAP)에 따르면, 만 2세 이하의 아동은 스크린 시간을 최대한 피해야 하며, 만 2-5세의 아동은 하루에 1시간 이내의 교육적 프로그램만 시청하는 것이 좋다고 권장합니다. 만 2세 이하라니, 문득 놀라울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영유아와 유아기 아동들이 이런 권장 사항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Common Sense Media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만 8-12세의 아동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4시간 반 동안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했습니다. 중,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만 13-18세의 청소년들은 학업 목적 이용을 제외하고서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7시간 동안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PIMU는 매우 어릴 적부터 시작해 연령대가 증가함에 따라 심화될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세계적으로 고요함은 점차 사라져 가, 이제는 자취를 찾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 삶을 삶 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저는 너무 흐릿해진 그 기억을 붙잡고, 그 경험이 흐릿해져서 사라져 버리는 때가 두려워 마침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기분이 싫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하는 것은 없이 항상 삶과,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그러다 PIMU라는 개념을 접하고 현상을 재정의한 뒤, 어렴풋이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현재의 상태를 조명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글을 쓰기 전과 후에 제가 사는 삶의 형태는 솔직히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복잡하고 제 바람과는 달리 흘러가는 시간이 많습니다. 뇌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또 현재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으로 개인이 바꿀 수 있는 일상의 요소를 찾아 해결방법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개인의 변화로만 이 세계적인 현상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가능한 것은, 이 거시적인 고요함의 상실을 우리 나름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개인이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중심으로 고려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삶의 끝자락에 접어들어 편안한 의자에 앉아 희미하게 비추는 햇빛에 눈을 감고 내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축복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때 나는 내 삶의 무슨 요소가, 내가 한 무슨 선택이 나의 삶을 만족스럽게 만들었다고 회고할 수 있을까? 고요할 적의 사유는 어땠지?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고 싶어 지셨다면, 저는 그것으로 한 발 나아갔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JO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