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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기 Apr 28. 2024

마인드헌터: 홀든 포드

열정이 있다면 밀고 나가야지 내가 궁금하다는데

# 본문은 작품에 대한 중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인드헌터(Mindhunter)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개의 시즌으로 제작되어 넷플릭스에 공개된 미국의 범죄 드라마이다. 존 더글러스의 범죄 기록서를 원작으로 하며, 팬으로서는 아쉽지만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가 인터뷰를 통해 시즌 3의 제작 예정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프로파일링에 흥미가 있다면 2개의 시즌을 꼭 시청하길 추천하는 바이다. 1970년대 미국 FBI 행동과학부에서 시작된 범죄심리, 프로파일링의 시초를 각색하여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N회차의 취향은 주로 가벼운 일상물 정도인데, 그런 의미에서 마인드헌터는 그 기준을 벗어난다. 긴장감이 감도는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구상과 범죄자들과의 면담 자체가 흥미롭기 때문에 자주 시청하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을 털어놓자면 시즌 3이 불발되었다는 기사에 슬픈 마음으로 근 몇 달 사이에는 다시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10번은 봤다. 심리학, 특히 범죄 심리학은 정말 흥미로운 학문이자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 누구나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봤을 법하다. 게다가 프로파일링 기법이 발전하게 된 역사를 알고 싶은데 지루한 방식으로 공부하고 싶지는 않다면, 그 분위기라도 느껴보고 싶다면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정말 잘 짜인 영화 같은 드라마이다.




(왼) 홀든 포드 | (오) 존 더글러스


주인공 홀든 포드는 FBI 소속 요원이며, 원작 도서의 저자 존 더글러스를 모델로 하는 캐릭터이다. 시즌 1을 기준으로 29살의 나이로 협상 전문 요원으로서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강의 현장에서 경찰 및 요원들이 실질적으로 인질 협상을 할 때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배우거나 찾기보다는 '빨리 대처하고, 이를 위해 범인을 총으로 쏴 제압한다'는, 당시에 만연했던 생각을 굽히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의문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홀든은 실질적으로 자신이 생각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작품에서 FBI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주류인 집단으로 묘사된다. 또, 다른 FBI 요원들은 인질 협상에 대해 총 쏘면 되니까,라는 식으로 큰 관심도 두지 않는다.


홀든은 관계자들이 총기에 의존하고 폭력적으로 사건을 끝내는 것에 훨씬 익숙하고, 그냥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또한, 범죄자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며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믿는 기존의 흐름을 거부한다. 홀든은 이러한 상황에 심리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며, "범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을 때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고, 모두에게 더 안전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며 의지를 갖고 범죄학 흐름에 대해 공부하는 한편, 빌 텐치를 찾아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둘이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공감


놀랍게도 홀든의 모든 행동은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 언뜻 공감 능력이 결여된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에 놀랍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홀든이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색하거나 서투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다가서기를 꺼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공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흉악 범죄자일지라도 말이다. 작중 여자친구인 데비와 영화를 보고 난 뒤 홀든이 어떤 장면에 대해 질문했을 때, 데비는 "그래, 넌 공감을 느끼는 거야. 그 사람에게."라고 답한 적 있다. 이때 홀든은 "공감."이라고 작게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공감이라는 키워드는 홀든 포드를 이해하기 위해 기본이 되는 단어이다.



호기심


홀든은 이처럼 궁금한 것이 있다면 끝까지 파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홀든이라는 캐릭터는 질문을 하는 데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살다 보면 상대를 봐가면서 질문을 해야 하는 타이밍도 많은데, 우리의 홀든은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탓에 그 타이밍을 재지 못하고 가끔 곤란한 일에 휘말린다.


작중 연인인 데비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질문을 듣다 보면 대체로 '연인에게 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질문이 아닐까..'싶다. 생각해 보자. FBI 요원으로 흉악 범죄자와 면담을 하고 온 남자친구가 그 범죄자와의 일화에서 자신이 생긴 궁금증을 만날 때마다 던진다면, 아마 처음에는 흥미로워도 이후에는 헤어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데비와 멀어진 하나의 포인트라고 생각하지만(결정적으로는 데비의 삶 자체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아서 멀어졌다), 반대로 이런 면이 데비와 만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참고로 데비 역시 설정상 히피 대학원생으로 매우 특이한 접근 방식과 대화법을 사용하는데, 홀든이 여기에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에 끝없는 질문 공세를 일삼았고, 연인이 되었다.


결국 데비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홀든이었고, 작중 FBI 행동과학부의 개편 흐름을 주도한 것도 홀든의 불도저 같은 면모 때문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질문하러 여기저기 쏘다니고, 정보를 얻고 싶을 때 맥주 마시자고 처음 보는 요원들에게 부탁하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알게 될 때까지 질문하는 바람에 사람들을 간혹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다. 즉, 이러한 호기심과 탐구심은 홀든이 당시 FBI의 수사 체계 상 한계를 체감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만든 중요한 특성으로 작용했다.




홀든과 데비(데버라의 애칭)


사회적 의사소통 기술


작품을 보면 쉽게 느낄 수 있지만, 홀든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지켜보고 있다면 입이 바짝 바르는 어색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우선 표정 변화부터 매우 적고, 정서 표현이 한정적이다. 다만 사회적 의사소통 기술은 부족해도 사회적 상호작용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홀든은 사람을 오히려 좋아한다. 나아가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례로, 홀든은 빗을 들고 다니고 정장에 흠이 생기면 매우 싫어하며 꼭 맞는 슈트를 항상 차려입고 다닌다. 이런 모습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오히려 지적을 받을 때도 있을 정도인데(여자친구인 데비가 그랬다), 어쩌면 자신이 정한 규칙에 대한 집착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작품 속에서 그런 면모보다는 사람들에 대한 흥미를 기반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 더 부각되기 때문에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이 비치는 모습을 중시한다고 해석하는 편이 적절해 보인다.


29세에 FBI 요원으로 강사 일을 하고 있다니, 높은 지능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경험이 적어 갈등이 생기면 당황하고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하다. 빌 텐치와 같이 사회적 상황에 익숙하고 갈등 해소를 위한 여러 기술을 갖춘 사람이라면 문제가 생겨도 이를 건설적으로 돌아보고, 원인을 파악한 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렇지만 홀든의 경우 관계적인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파악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의기소침해지거나, 관계 맺기 자체와 그 안에서 기능하는 방법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범죄자들과 면담 속에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정보를 취득하는 데 있어서는 강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흉악 범죄자들에게 보여줄 만한 감정적 동요가 애초에 적기 때문이다. 아마 이 캐릭터가 사회적 대처 전략이나 유연성을 높인다면 FBI 기관의 상관을 비롯해 빌 텐치 등 중요한 타인과의 갈등이 극 중에서만큼 많이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연인인 데비와는 아예 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홀든의 이러한 특성을 자폐스펙트럼장애(ASD)의 징후로 볼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눈 맞춤을 못한다거나, 이외 두드러지는 사회적 기술의 문제가 관찰되지는 않는다. 추측하건대 어머니가 매우 허용적이었을 수도 있고, 늘 아버지가 세트로 맞춰준 슈트만 입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약간 통제적인 면모가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본인이 나서서 무언가를 하거나 기준을 세워서 조직적으로 일을 관리하는 경험이 적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적 상황에서: 빌과 홀든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것은 홀든 포드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빌 텐치와 매우 대조되는 지점이다. 빌 텐치는 모두의 신임을 받고, 책임감 있는 어른 캐릭터로서 홀든의 말을 수용하지만 그 의견과 현실 사이를 조율하며 공식적인 업무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빌은 사람들과의 소통에 매우 능숙해서,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던 홀든과 상관과의 조우 속에서까지도 갈등을 해소해 주었다.


작중에서 둘의 차이를 보여주는 도구 중 하나가 담배라고 생각한다. 빌은 항상 담배를 달고 있고, 홀든과 처음 만났을 때 담배를 권하는데 홀든은 "담배를 전혀 피지 않는다"라고 답하며 멀뚱히 바라보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후로도 범죄자 면담을 위해 대기할 때나, 먼 길을 이동할 때 빌은 항상 담배를 피우고 홀든은 가만히 옆에 있는 경우가 많다. 담배는 연령 제한이 있는 어른들의 귀속품이고, 사회적 경험이 많고 그 상황에 익숙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보니 둘 사이의 대비를 나타내는 도구로 활용된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보았다. 또한, 빌은 지고 있지만 홀든에게는 없는 가장의 무게로도 볼 수 있다.


홀든은 "데비는 난생처음 사귄 여자친구"라고 말했고, 이에 빌은 "낸시는 난생처음 결혼한 여자"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도 빌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답변을 듣자마자 홀든은 입을 다문다. 둘이 팀으로 하는 일은 리스크가 크고 워라밸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다 보니 빌이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데 극심한 어려움과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와중에 홀든이 벌인 일에 빌이 끼어들어서 뒤처리하는 역할이다 보니 종종 빌이 직격으로 던지는 말에 홀든이 멋쩍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둘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 역시 홀든이 빌의 무게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본능에 근거해 자꾸만 일을 크게 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홀든 덕분에 많은 발견이 이루어졌으나, 빌 텐치의 역할이 없었다면 그 부서와 프로젝트조차도 시작될 수 없었으므로 빌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






오만


홀든 포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주 큰 캐릭터이다. 물론 능력이 있기 때문이고,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만큼 타인의 능력 또는 경력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의도된 바는 아닐지라도 타인의 배경에 관심이 부족한 그런 모습들이 홀든을 더 오만하게 비치도록 만든다. 마찬가지로 작중 프로파일링의 이론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이제 자신이 범죄자들의 행동양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자만한 바 있다. 독단적으로 에드먼드 켐퍼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등 오만에 기인한 행동 끝에 결국 켐퍼와의 대면 상황에서 극심한 두려움을 경험하고 공황을 겪게 된다.


먼젓번에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빌은 홀든의 이런 면에 지속적으로 충고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전문가인 청중을 대상으로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는 삼가라"거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청중의 배경 정도는 파악하고 말하라"거나. 범죄자들과의 면담을 시작하고서는 "에드먼드 캠퍼를 비롯한 사이코패스들이 너를 조종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라"는 등, 사실에 근거한 피 같은 조언들을 많이 했다.  홀든은 이러한 충고에 동의는 하되 자신의 행동을 전면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촉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메인 스토리를 구성하기도 한다.




당시 어쩌면 가장 보수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FBI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물불 가리지 않고 최초의 사이코패스 심층면담 인터뷰를 통해 그들을 연구하자는 미친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와서는 승인도 받지 않고 에드먼드 켐퍼부터 몇 번이고 만나러 갔을 뿐 아니라, 파트너인 빌까지 끌어들이는 홀든 포드. 감히 무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소 근신 처분, 최대 제명될 뻔 한 위기가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엔 이걸 해보자며 열의에 불타는 홀든을 보며 빌이 "저 미친 표정(crazy looking)"을 볼 때마다 두려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부서가 설립되었을 때 담당자가 싫어하다 보니 비밀로, 게다가 지하에서 연구를 하라고 팀원들을 거의 유배 보내다시피 하는데, 빌이 "저는 43살인데요" 라며 누가 봐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음에도 홀든은 "우리 이제 정식 부서됐다 OK!" 하고는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홀든의 미성숙함과 무모할 정도의 도전정신이 그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물론... 이런 면모가 있기에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음에 틀림이 없지만, 가까이에서 저런 팀원을 매일 데리고 살며 같이 일을 해야 한다면 명이 짧아질 것만 같다.


작품이 재미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가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범죄심리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면담 과정에서 흉악 범죄자를 연기한 배우들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특히나 홀든 포드라는 캐릭터는 주인공이자 사람을 좋아하지만 자주 수용받지는 못하는 능력 있고도 미성숙한 요원(인물이 복잡해서 수식어가 길어진다)으로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잘 만든 작품 마인드헌터, 아직 안 봤다면 부디 시청해 주시길. 그 뒤에 이 글을 다시 찾아주었으면 하고 작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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