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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기 May 05. 2024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맥스 콜필드

나비효과란 바로 이런 것이다

# 본문은 작품에 대한 중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는 돈노드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하고, 스퀘어 에닉스에서 배급한 어드벤처 게임으로 2014년 8월 에피소드 1을 첫 출시하며 총 5개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다. 게임은 3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며, 주인공 맥스 콜필드의 입장에서 여러 선택지를 고르고 이에 따른 스토리를 경험하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미국 오리건 주 안의 가상의 마을 아카디아 만을 배경으로 하며, 주인공 맥스는 소꿉친구였던 클로이 프라이스가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장면을 목격한 뒤 어째서인지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이 능력을 통해 클로이를 구할 수 있었던 맥스는 사진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니기 시작한 블랙웰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며, 종종 시간도 돌리면서 주로 클로이와 함께 클로이의 소중한 친구였던 레이첼 실종 사건의 진상을 해결하고자 한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스토리 중심 게임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저격한 작품으로, 가끔 내게 일말의 감성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 찾는 게임이다. 출시 당시 선택지 게임을 처음 경험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나비효과와 그 자유도에 푹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픽이 특이하고 게임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점, 주인공의 성격이 잔잔하면서도 성장 서사가 두드러지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지금 플레이한다면 어색한 대사는 많겠지만 한글 패치도 잘 되어있고, 이미 몇 년이 흐른 게임이지만 어째서인지 2022년에 리마스터 버전이 출시되었으므로 시간이 된다면 꼭 플레이 해보길 추천하는 바이다.





사회적 민감성, 우유부단함


작품 초반 맥스를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상은 단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며 사회적 민감성이 높고 소심한 십 대 소녀구나, 정도였다. 바로 이런 캐릭터가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얻게 되어 많은 경험을 통해 결단력 있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감동적인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맥스는 홀로 아카디아 만에서 살고 있긴 하나 부모님과 주고받는 문자를 봤을 때 관계가 아주 좋아 보인다. 엄마가 선물해 주신 화분을 기숙사 방에 두고 키우는 중이며, 방을 찾다 보면 부모님과 찍은 사진이나 부모님께 받은 선물도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부모님으로부터 감정에 대한 수용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로도 맥스는 정서적으로 변동이 적고 안정적이다. 덧붙여 타고나길 사회적 민감성이 높고 공감을 잘하며 타인의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너무 조심스러운 나머지 도리어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맥스는 갑작스러운 이사가 결정되었을 때 당시 힘든 일이 겹쳐 괴로워하던 클로이에게 연락하지 못했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커져 아예 만남을 회피하게 되는 등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클로이에게 자신이 가장 필요했을 때 진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고, 이로 인해 괴로워할 것을 알았지만 그 무게를 직면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행인지 클로이는 매우 쿨한 성격이라 힘든 과거를 보냈어도 맥스를 만난 뒤의 즐거움과 안도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극적으로 재결합(?)을 한 두 소녀는 이후 계속해서 붙어 다닌다. 





상냥함, 친절함


맥스는 최근에 학교에 오게 된지라 좀 어색해하고, 스스로도 자신을 괴짜(geek) 소녀라고 부를 만큼 사진에만 흠뻑 빠져있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계속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사진을 찍고, 어색하긴 해도 또래들과 대화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만 발을 넓히길 좋아하는 사교적인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소 어색해하긴 해도, 맥스는 사람과 사물, 자연에 대한 흥미가 많아 사진 찍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사진을 찍어서 남길 정도의 의미를 찾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친절하고 기본이 상냥하다. 남에게 심한 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는 데이빗(학교 경비원이자 클로이의 양아버지)이나 빅토리아, 심지어 네이선에게도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킨다. 계속해서 클로이와 갈등을 빚고 '감시'에 미쳐있는 데이빗과 크게 언쟁을 할 때는 "난 당신의 서비스를 존중하지만 당신은 누구도 존중하지 않아요(I do respect your service, but you don't respect anybody)."라고 질책하는 정도에 그쳤다. 물론 네이선이 동급생 케이트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주도한 정황을 파악하고는 적대시한다. 이는 맥스가 케이트를 비롯한 약자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메인이 아닌 사소한 등장인물들에게도 말을 걸어보면 그간 자주 대화를 나눠보았다는 듯한 뉘앙스로 대화를 진행한다. 이런 점에서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보면 일단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앞서 또래들에게 일련의 사건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케이트를 대할 때면 말투와 태도부터 달라진다. 차분하고 상냥하게 케이트에게 “안녕 케이트(Hey Kate),” 하고 말을 거는 것이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이른바 케이트 전용 맥스식 첫인사이다. 게임 내 첫 수업이 끝난 뒤 시종일관 빅토리아와 무리로부터 괴롭힘 당한 케이트에게 먼저 말을 걸어 차를 마시자고 하거나, 케이트 방 문 앞에 쓰여있는 인격모독적인 낙서를 지워주기도 하고, 문자메시지 기록을 살펴보면 만나서 놀자는 이야기도 종종 했음을 알 수 있다. 




발더스 게이트 3 세계관에 있었다면 로그: 클래스 도둑이었을 클로이가 자물쇠를 따는 모습이다.


정의감(간혹 오지랖)


물론 맥스는 게임 초반부에 대체로 조용하고, 소심하며, 남들을 신경 쓰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그보다도 정의감이 강하고 공감을 잘하는 성격이라 케이트에 대한 조롱적 발언에는 항시 매우 단호하게 일침 한다. 덧붙여 케이트가 네이선에 대한 의심을 표명했을 때, 클로이가 네이선과의 일화를 말해주었을 때는 주저 없이 분노한다.


학교에는 소용돌이 클럽(vortex club)이라는 학교에서의 지위가 높은 소위 잘 노는 친구들이 속한 모임이 있는데 얘네가 파티도 자주 개최할뿐더러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따라서 작품 속 맥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클럽을 비판하는 입장이며, 어쩔 수 없이 파티에 참여하게 되지만 클럽에 들어오라는 제안은 누가 묻든 가차 없이 거절한다. 아마 이 클럽 구성원, 그중에서도 중심축으로 보이는 빅토리아 체이스와 네이선 프레스콧이라는 캐릭터가 돈은 많은데 남은 괴롭히고, 마약도 하는 데다가, 여러모로 권력을 남용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인 듯하다. 맥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클로이에 대한 의리와 맥스가 항상 가지고 있는 호기심, 가장 크게는 정의감을 기반으로 여기저기를 드나들며 사건의 진상에 점차 가까워진다. 그 과정에서 네이선을 비롯한 위험한 사람들과 자주 대면하게 되는데, 무서울 법 하지만 맥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만용일 때도 있다. 특히나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지나치게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 때면 정의감이라기보다 오지랖에 가까워질 때도 많다. 관여해서는 안될 일에까지 관여하려는 모습도 가끔 보여준다. 그렇지만 누구나 시행착오는 있는 법이고, 장점과 단점은 공존한다. 중요한 점은 정의감이 맥스라는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를 저지하는 기제로 사용된다는 부분이다. 


교장실을 점거한 뒤 충격적인 사건의 실마리를 알게 된 맥스


이처럼 정의감이 매우 강해서 단짝이었던 클로이에게 몇 년 간 연락도 피하고 어려운 상황을 대면하길 회피했던 우유부단한 측면을 끝에는 극복하게 된다. 맥스는 계속 선택을 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택의 나비효과를 수용해야만 한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어도 결과를 돌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도 소꿉친구와의 직면을 피해왔다거나 사진작가가 되기 위한 첫 문관과도 같은 사진 대회에 출품하지 않는 등의 회피를 더는 할 수 없게 된다. 





완벽주의


덧붙이자면, 맥스는 사진에 한하여 완벽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유명 사진작가이자 강사인 제퍼슨의 언행으로 미루어 보아 맥스가 자신의 작품을 출품만 했다면 무조건 1위로 수상했을 터인데, 그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책하며 작품 초반에 화장실에서 아예 찢어버렸을 정도이다. 거의 뭐 도자기 깨부수는 장인과도 같다. 


클로이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이 취미를 지금까지 이어온 맥스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응원하는 친구로, 둘이 시간을 보내 맥스의 내면이 단단해지고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는 역량이 생겼을 때 과거로 회귀하여 결국 사진을 처음으로 제출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맥스는 수상을 했고, LA 사진전에서 데뷔를 하게 된다. 이 과정 자체가 맥스의 내면적 성장을 보여준다. 이후 다시 시간을 돌려 사진을 제출하지 않는 과거를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맥스의 결단이자 선택으로,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평가 민감성 또는 자신감 부족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죄송하지만 이쯤 오면 이 책은 정말이지 자기만족이다. 이번에는 거의 맥스 콜필드라는 캐릭터에 대한 팬심만이 담긴 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잠이 부족한 상태로 한층 더 신이 나있다.


맥스는 외유내강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초반 부에서는 본인의 중심이 잘 잡혀있지 않아 타인이 원하는 답을 돌려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다양한 경험을 거쳐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최선의 답’을 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말에서 다른 그 어떤 선택지보다도 소중하게 여겼던 클로이의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맥스의 입장에서 게임이 너무 잔혹하게 느껴졌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겨 에피소드 5회를 지나도록 한 친구를 살리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살릴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니 말도 안 된다. 보통 저렇게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맥스 입장에서 시간을 뛰어넘으며 겪은 일회를 아무리 피력한들 사실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선택지를 고르며 플레이 한 시간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 타임라인이 죄다 무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래서 여운이 남았다. 클로이를 희생하지 않는 선택 역시 맥스의 몫이라는 점과, 마을의 주요 사건 하나를 해결해 다음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은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아니라면 얻을 수 없는 결과였다. 맥스더러 이 사건을 클로이와 함께 풀어내길 바라는 레이첼의 염원이 이룬 기적이라고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또, 직면하기 두려워 피해왔던 클로이와 돈독한 시간을 보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맥스가 내적으로 매우 성장했다는 것 또한 얻은 점이다.


글로써 담으려니 게임 캐릭터와 함께 성장한 나의 지난 시간이 느껴져 웅장해지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여러분, 어색한 대화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면 이 작품을 다시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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