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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기 Apr 21. 2024

브루클린 나인 나인: 제이크 페랄타

다이하드 보고 형사가 된 사람

# 본문은 작품에 대한 중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브루클린나인나인(Brooklyn Nine-Nine, 일명 브나나)은 미국 뉴욕 경찰들의 일상을 그린 코미디 시리즈이다. 2013년 9월 17일부터 2021년 9월 16일까지 총 8개의 시즌이 방영되었으며, 넷플릭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애정하는 작품일수록 시즌의 끝부분을 보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뭔가 친구들을 떠나보내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복합적으로 초반의 가볍고 일상물스럽고 향수가 느껴지는 그런 무드가 좋아서인지 주로 초반 시즌을 돌려보는 편이다. 스토리 게임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초반부만 닳을 정도로 다시 하는 습성이 있다.


브루클린나인나인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하고 많은 정주행의 역사 간 가장 많이 본 시즌은 아마 시즌 2, 3, 4, 5 정도이다. 역시나 마지막 시즌은 끝내지 못했고, 바로 그전 시즌인 7도 2번 정도만 봤던 것 같다. 그것도 누군가는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브루클린나인나인의 주인공인 제이크 페랄타는 정말 흥미로운 인간 군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너무 철없고 사건만 터뜨려서 보기 싫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재밌는 캐릭터에 매료되는 스타일인지라, 제이크의 존재 덕분에 브나나를 여러 번 봤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도 대부분 마음에 쏙 들었다. 로사와 캡틴 홀트가 특히 그렇다. 인간과 기계 그 언저리의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공감적 말하기를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장면들을 볼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그런 작품이다. 매우 추천한다. 특히 시즌 1을 지나면 당신 앞에 코미디 추리물 대잔치가 열린다.





제이크 페랄타, 몇 살일까? 아마 초반 시즌에서 30대 초중반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제이크가 형사가 된 연유는 보면서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이 일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멋지고 재밌고, 영화 다이하드 시리즈/존 맥클레인 광팬이기 때문에 저만큼 재밌는 삶을 살아야지라는 다짐에서부터 형사가 된 듯하다.


실제로 시즌 3에서 제이크가 본인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중, 어머니가 제이크가 형사가 된 이유는 '나를 잘 지켜주었고, 너무 잘하다 보니 사람들도 지켜주고 싶어서'가 아닐지 감동적인 추측을 하는 장면에서 "해석은 좋지만 다이하드 때문에 된 것"정도로 장난스럽게 답한 바 있다. 아마 작품 내 행보를 봤을 때 80%는 진실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직업 만족도가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아, 재미를 좇아 직업을 잘 선택한 것 같다. 축하드린다.




작품 내 제이크를 잘 설명하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Man Child


제이크는 시즌 1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매사 장난을 일삼으며 한 문장 한 문장에 농담을 섞어서 대화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별로 놀랍진 않지만 대상이 동료 형사들이 아니라 권위자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장님의 어머니(심지어 판사님)를 만났을 때도 한 문장마다 유머를 섞는 기행을 보여준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일관적일 수가 없다.


서장 홀트의 경우 이런 모습을 제이크를 처음 만났던 초반에는 매우 미성숙하고 언짢게 보는 듯 하지만(정상적인 인간/상사의 반응이다), 점차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중에는 이런 모습을 습득하여 본인도 제이크를 놀리거나 농담을 한다.


잠깐 생각해 보자. 일터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갑자기 크리스마스에 모두를 불러 모으더니 공기펌프로 부푸는 대형 고무 트리를 보여준다. 짜잔! 메리 크리스마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당신의 동료는 그 트리를 배치한 방의 크기도 고려하지 않고 방보다 크게 부풀어 오르는 마법의 트리를 빌려왔다. 다음 순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전원을 탁 켜버리는 당신의 직장 동료! 이후 몸을 짓누를 정도로 커진 괴물 트리 덕분에 모두가 벽에 딱 달라붙어 누가 전원 플러그 좀 뽑으라고 외쳐댄다.

매력적인 직장 동료, 당신은 이 사람의 존재 덕분에 매일 출근하고 싶을 것이다.


장난이고, 일단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방어기제로는 부적절한 유머를 사용하거나 애매하게 회피한다. 일단 다 괜찮다고 답하고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더 큰 사고를 칠 때도 있다. 이런 미성숙한 모습 덕분에 다 큰 애, Man child라는 단어로 제이크 페랄타라는 캐릭터를 이해했을 때 자연스럽게 아..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트리 사건의 주인공인 제이크는 일을 벌여놓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대체로 계획이 없고,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도 약한 데다가 공감도 잘해서 뭔가 상대에게 좋은 일을 해주려고는 한다. 그렇지만 가끔 그 좋은 일이라는 것이 특히 초반 에피소드에서는 제이크 자기가 좋은 일인 경우가 많다.


상사이자 친구인 테리와의 에피소드에서 특히 이런 면이 부각되는데, 육아 등 여러 일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은 테리에게 휴가를 주자는 좋은 취지랍시고 그를 어딘가 이상하고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숲 속의 작은 오두막에 데려간 적이 있다. 함께 놀러 가자는 말에 테리는 그냥 웃긴 스포츠 bloopers(NG 영상들)나 보면서 쉬겠다고 말했으나 제이크는 "Fun 테리는 다 어디 갔냐"며 유유자적한 휴양지(살인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외딴, 물도 없는 음침한 오두막)에서 찰스와 셋이 남자들만의 휴식 시간을 보내자는 식으로 테리를 설득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이미 상대가 정말 좋아할 법한 일을 해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반대로 이런 제이크가 시즌이 지날수록 얼마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지, 어떻게 성장하는지가 내가 생각한 드라마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위와 같이 제이크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일을 그르치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음에도, 결국 이를 보상할 만한 해결책을 찾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무마해 내는 노력을 하고 또 성공하기 때문에 제이크가 나올 때마다 눈을 질끈 감지 않고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다.





진솔한 감정이 어려워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반동형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텐데, 그게 반동형성이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면 오히려 놀리거나 장난을 거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그것도 반동형성이다. 즉, 반동형성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해서 내가 느끼는 바와 반대로 상대를 대하는 방어기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했냐면, 제이크가 반동형성을 가끔 보여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기보다 유치한 내기를 계속 걸어서 플러팅 아닌 플러팅을 지속적으로 하는 바로 그 모습을 열심히 보여주는 바람에 찰스나 로사가 번갈아가며 "너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며 지적해주기도 한다.


한편 찰스는 제이크를 매우 잘 받아주고 심지어는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제이크가 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좋게 봐준다) 제이크와 쿵짝이 잘 맞는다. 제이크는 찰스와 함께 제3의 인물을 구상하고 마치 그 인물이 된 양 연기하면서 추리하는 역할놀이를 정말 좋아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것인지 그 방법이 효과적인 추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찰스가 가정을 꾸리고 자신과 일심동체였던 과거처럼 협업하지 못하자 그 변화에 매우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이때도 서운하다고는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방법으로 투덜거린다.


질투라는 감정도 있는 그대로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방어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 특히 약혼자가 된 에이미와 에이미의 우상인 멜빈(퍼즐 마스터)과 함께 협업하여 사건을 해결하게 됐을 때 질투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 행동하면서도 에이미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다.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망설이는데, 이후 회차에서는 쉽게 말하지만 시즌 3의 13화까지만 해도 에이미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장난식으로 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종합해 봤을 때, 제이크가 감정에 대한 표현이나 수용에 서투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활 상식?


제이크는 본인보다 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나 앞에서는 다소 톤다운 되는 경향이 있다. 지나와 제이크는 소꿉친구라는 배경을 공유하고 있어서 더욱 새로운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지나가 위험한 행동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해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쇼핑몰에 무장 강도가 있는 상황에서 겁을 먹지 않고 헤어스프레이와 라이터가 있으면 불로 태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이를 말리기 위해 지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때(Gina no!)가 있다.


물론 지나는 사회적 상호작용 면에서 정말 독특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자주 한다만, 실질적으로 경제관념과 상식은 평균 이상으로 잘 탑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보다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홀트 서장이 지나의 역량을 믿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지나라는 사람이 유능한 비서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런데 제이크는 최고의 형사일지는 몰라도 금전감각을 비롯한 생활습관 면에서 심하다 싶을 만큼 상식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시즌 1의 18화에서 제이크는 파산할 뻔한 적이 있는데, 사는 꼴을 보면 가관이다. 우편물을 욕조에 전부 모아두거나 6대의 안마의자를 사놓는 등 "너 정말 어쩌려고 이러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시즌 초반에서 이미 30대이다. 이후 여러 시즌 뒤 에이미와 누구의 집에서 살 지 결정하자고 내기를 하는 장면에서 "내 집에는 단 하나의 수건이 있는데, 그 수건은 이사 올 때부터 집에 있었던 수건"이라며 모두가 기절초풍할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제이크의 위생관념과 경제관념이 최악 중의 최악이기 때문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계획에 강박적으로 몰두하고,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는 면모가 있는 에이미와 만나게 된 것은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계획과 극단적 계획, 비체계와 극단적 체계.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왼쪽부터 홀트(당시 서장), 제이크(당시 형사), 에이미(당시 형사)


Daddy Issue!


제이크는 항상 자신의 성장기 시절 아버지의 부재와 그것이 미친 영향에 대해 입이 닳도록 말해 왔기 때문에, "말은 안 했지만 저도 부모님과 문제가 있었던 적이 있다"는 류의 발언에 홀트가 당연하다는 듯 "그래, 자네 아버지 말이지. 맨날 말하지 않나."라고 답한 적 있다.


제이크의 아버지, 페랄타 기장은 정말 한숨을 자아내는 캐릭터이다. 어느 정도냐면 '철이 없었죠 미성숙한 제가' 시절의 초반 시즌 제이크와 함께 있어도 그의 아버지가 독보적으로 철이 없다. 바람을 일삼아 제이크의 어머니와 잦은 트러블을 빚다가 결국 집을 나가 이혼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아버지의 존재는 제이크라는 사람의 성격을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홀트 서장은 같은 권위자, 손윗사람이면서도 자신의 아버지와는 상극이기 때문에 제이크에게 새로운 롤 모델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제이크가 대놓고 말한 적이 있는데, 홀트가 "I'm proud of you."라며 네가 자랑스럽다고 인정해 줄 때 눈물이 차오를 만큼 감동받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실수로 홀트 서장을 'yes, dad(알겠어요 아빠)'라고 불렀다가 서 전체로부터 놀림받았는데, 뒤로 갈수록 당연하게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도 보여준다. 홀트 역시 'son'이라며 뒤로 갈수록 아들 취급을 한다.


처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를 만나게 된 제이크는 초반에는 페랄타 기장, 친부의 말에 휘둘리며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는 일념 하에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 연락하지 말라'며 먼저 건강하게 관계를 끊어버리는 결정도 내리게 된다. 자녀의 입장에서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은 부모님이 나를 지속적으로 힘들게 했으니 건강하게 멀리한다는 결정은 어떤 시점에서도 내리기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등장인물 모두가 제이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지만, 그중에서도 홀트의 존재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쯤이면 내가 인물탐구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째서인지 글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모두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을 테니 이쯤 줄이고자 한다.


몇 가지만 추가하자면, 제이크는 정말 ADHD 징후의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에 끝도 없이 집중하다가도 지루한 일은 한시도 견디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형사라는 직업을 참 잘 찾았다고 다시 한번 축하해 줄 수 있다. 제이크는 추리, 사건의 해결, 범인 잡기! 등 일련의 업무를 정말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다. 어려운 사건을 맡아도 푸는 재미가 있다며 스케일이 큰 사건일수록 진심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데스크 잡(desk job)에 특화되어 있는 스컬리와 히치콕과는 구분된다.


제이크는 안정보다는 자극을 추구하고, 가능하면 본인이 처한 환경을 재미있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창의적인 사람이다. 한 가지 기법만을 적용해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그때마다 떠오른 인사이트를 놓치지 않으며 직관으로 시작해 이를 증거로 이어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간다. 승부욕도 강해서 핼러윈 내기, 지미젭 게임 등을 가장 먼저 기획하고 온갖 자원을 활용해 이기려고 노력한다. 모두 제이크가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라 미래 어느 시점의 자신을 계획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처한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 간혹 이런 면이 충동성과 만나 위험한 사건에 뛰어든다든가 하는 에피소드로 이어질 때가 있지만, 대체로는 높은 삶의 만족도에 기여하고 있는 것 같다.


제이크 페랄타라는 캐릭터는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으면서도, 아끼는 사람들에게 항상 진심을 다하기 때문에 애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본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유머와 재미가 내 인생의 주된 키워드이기 때문에 이런 인물이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제이크와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거나 주변에 이런 인물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왔길래 그렇게 컸을지 (좋은 의미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애정하는 브루클린 나인 나인의 제이크 페랄타는 그 세계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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