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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기 Apr 14. 2024

00. 인간탐구라는 취미

내게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비슷할 수 있어도 사실 전부 다 다르다. 전부. 다.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넷플릭스 이용자로서 간혹 취향에 맞는 작품을 N회 돌려보는 악랄한 취미가 있다. 사실 좋아하는 작품이 많지 않지만 하나라도 있다면 최소 10회는 기본으로 정주행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게 나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예상치 못했을 나라는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인간에게는 많은 모습이 있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면에서 항상 같은 자아를 바탕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사회적 자아,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장면에 맞게 적당히 갈아 끼우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 가짓수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아무튼 인간은 다양한 일면을 간직하고 있어 단순히 A타입이다 B타입이다 나누기 매우 어렵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MBTI라는 것이 잘 맞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MBTI에 대한 이야기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성격이라는 것을 고작 16개로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사람이 그렇게 간단히 나뉘는 것이라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MBTI 유형만 알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다. 전혀 몰랐던 사람에 대한 기반 정도는 마련해 줄지도 모르겠다. 가령, 저 사람이 외향적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 저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환경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발산하고 빨아들일 수 있겠거니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다. 다만 외향적이라고 모두가 똑같은 수준으로 에너제틱하지 않다. 누군가는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하루는 필요하다거나, 이틀도 부족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은 모두 다르다. (나, ISTP! 너, ISTP? 우리 똑같다!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대체 왜 다를까?


우선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 다르다. 누군가는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이 애초에 낮은 상태로 이루어져서 태어났을 수 있다. 다른 누구는 매우 높게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환경에 대해서 극심한 불안을 느끼고 가능하면 익숙한 환경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자라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포함된 환경을 접한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사회적 장면, 그 안에 속한 우리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일으킨다. 쉽게 말해 "극단적 집순이/집돌이였던 내가 오늘은 하루 건너 사람을 만난다거나 매번 밖에 나가고 있고 그게 그리 싫지 않아 졌다!"라고 말해도, 충분히 이해할 법한 소리라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 익숙해졌고, 경험해 보니 나쁘지 않아서 계속 그렇게 생활한다거나, 낯선 환경이 원래는 많이 불안했지만 하도 자주 낯선 환경에 내던져지다 보니 이제 그닥.. 불안하지도 않고 별생각 없다, 의 상태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 사람을 한 번 보고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파악할 수 없다. 스스로도 의문 투성이인데 타인을 어떻게 그렇게 쉽고 빠르게 이해한단 말인가.




자, 여기 인간탐구에 미쳐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 그게 바로 나다.


작품을 보면 스토리를 물론 본다, 본다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이다. 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이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저 장면에서 왜 그렇게 행동했지? 왜 저따위일까? 등등 무의식적으로 이런 질문만 지속적으로 던지며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앞서 나는 좋아하는 작품이면 10+회 시청한다고 말했을 텐데, 이 경우에 캐릭터 분석만 N(주로 N>10) 번을 하는 셈이 된다.


웃기는 일이지만 누구나 이런 식으로 작품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중에 그건 과연 정말 나만의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친구가 특정 장면에서 나온 배경 세팅과 조명을 이야기할 때 나는 도무지 그런 장면이 어디에 나왔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런 디테일을 볼 수가 있지? 내가 질문했더니 친구는 되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인물에 집착하면서 작품을 볼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니까 나와 친구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서로 좋아하는 포인트가 다르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이쯤 되니 나는 나만의 취미와 관점을 작품으로 만들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연재 브런치북이라는 세팅이 마련되었으니 더는 미루지 않고 질러볼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대중적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또 내가 인간에 미쳐있는 내용을 담아봤자 누가 재밌게 읽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나의 취미를 글로 담는 것이니까 나만 끄덕이며 볼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아닐까. 따라서 결심했다. 인간탐구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이후부터는 내가 빠졌던 작품(영화, 드라마, 게임을 막론)과 그 안에 등장하는 한 명의 인물을 주제로 삼아 멋지게 말하면 평론, 귀엽게 말하면 캐릭터 분석, 더 깜찍하게 말하면 저 인간은 왜 저러는지를 글에 담아보려고 한다. 이야. 이렇게까지 했으니, 남은 날 동안 모쪼록 나 스스로가 글 작성에 게을러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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