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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yss May 03. 2024

사소하고 시시한

2024.05

  내가 아주 좋아했던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에는 대강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나는 복숭아를 따는 데 소질이 있다나 봐. 누나는 빙수를 만드는 데 소질이 있다나 봐. 그런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재능이라 복잡한 심경이야.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에도 나는 거의 오열했던 기억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이 대사는 여전히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또 가까운 과거에는 이런 기분을 느끼기도 했었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떻게라도 그 사실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박과도 같은 기분. 나는 거북이를 좋아하니까 많은 거북이 인형을 모아야 한다는 식으로 발동되는 그런 강박들은 분명 나를 어느 정도 불편하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비로소 내가 정의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뭘 좋아해요? 취미가 뭐예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았을 게 분명할 정도의 과민한 고민에 빠지고 찝찝한 채로 대답을 내놓고는 했다. 저는 영화를 좋아해요. 독서도 좋아하고요. 커피도 좋아해요...... 그런데 나는 정말 그것들을 좋아하나? 얼마나 좋아하지? 남들보다 더? 이때 느꼈던 건 뭘까? 잘하는 게 없는 나, 여기서 좋아하는 것마저 없다면 정말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존재하는 증거는 단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런 불안감을 꾹꾹 누르며, 어떻게든 뭘 하려고 애써 왔던 시간들이 얕게나마 고여 있다. 그리고 나는 내 발치에 고인 흔적들을 보며 시시함과 수치심을 느낀다. 나는 고작 이런 사람이구나. 더 할 수 있을까? 성장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하면 할수록 그 필드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뭔가 시도하면 할수록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게만 느껴진다. 노력해서 얻고 싶은 건 막연한 돈이나 성공이 아니다. 노력해서, 조금 더 성실하게 임해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 당신은 이걸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이 분야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하는. 


 인정받고 싶다. 그것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 이런 마음은 요즘 시대에서는 충분히 미성숙한 욕구라고 치부된다. 아마 그래서 이 마음을 오랫동안 숨기려고 무표정을 흉내내며 살았나 보다. 하지만 모든 게 너무 시시하고, 내가 너무 지겹고, 숨쉬는 것조차 수치스러운 지금에서야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게 내 1순위가 되면 뭐 어떠냐고. 일종의 명예욕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나는 많이 노력하고 싶고, 그 과정 중에 희망을 잃지 않고 싶다. 수치심에 지고 싶지 않다. 시시한 대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다짐은 끝없이 이어진다.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무한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지만 무작정 나를 뜯어고치기에 지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는 생각을 바꿀 거다. 노력하는 거 힘든 것도 맞다. (사실 노력파도 아니고 약간 수능중독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노력 안 하면서 누워 있는 내가 너무 싫어서 결국 꼼지락대는 나니까. 그렇게 꼼지락댄 결과물은 언제나 너무 작고, 사소하고, 시시하지만. 복숭아를 좋아해서 먹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복숭아를 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잘 따는 사람이 있으면 좋고. 나와 세상의 관계도 그런 식일 거라고 대충 우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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