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byss Jun 21. 2024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 2014)



들어가기


6월인데도 벌써 날씨가 무덥고, 여름이 아니라는 말도 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여름을 싫어했는데, 일단은 너무 덥기도 하고...... 또 왠지 저는 여름이 오면 무력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저는 또 이 무기력을 이길 수 있을 만한, 적어도 조금은 힘이 되는 영화를 고르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글인데 어째서인지 매번 저에게 필요한 글을 쓰게 되네요.


어쨌든 고심 끝에 선정한 이번 주의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입니다. 원제는 Deux jours, une nuit으로 번역하자면 1박 2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간을 의미하는 건 같지만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의역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어 제목은 CGV 아트하우스에서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고, 내일과 내 일을 동시에 표현하는 제목이라고 합니다. 제목만 확인해서는 여전히 조금 알쏭달쏭한데, 이렇게 보니 내일과 내 일이 거의 같은 단어라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아래에서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의 줄거리를 통해 제목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있는 산드라는, 회사 측에서 산드라를 제외한 직원들 16명에게 산드라의 복직과 1000유로의 보너스를 두고 투표를 받았고, 투표 결과 과반수가 보너스를 선택했기에 산드라는 복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산드라와 절친했던 동료는 회사 측을 설득해 월요일에 재투표를 실시할 수 있게 되고,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찾아가 산드라의 복직에 투표해 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즉 원제의 1박 2일은, 산드라가 자신의 일을 되찾도록 노력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의 감독은 벨기에 출신의 유명 감독, 다르덴 형제입니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이 함께 다르덴 형제라고 불립니다. 형제가 같이 계속해서 작업하는 게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영화계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코엔 형제)부터, 최근에는 조슈아 사프디와 베니 사프디(사프디 형제)도 있네요. 이렇게 모아두고 보니 모두 색이 확실한 것 또한 신기합니다.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작업해야 개성적인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다르덴 형제를 포함해 언급된 형제 감독들은 모두 '개성적'이라고 하면 빠지지 않을 감독들이니까요. 아마도 영화가 혼자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예술인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 감독들의 개성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다르덴 형제의 개성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역시 '인간'일 것 같습니다. 혹은 노동과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스타일로 말하자면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주로 제작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나는 작품으로는 <로제타>와 <아들>, <로냐의 침묵> 등이 있습니다. 한국에 최초로 개봉된 다르덴 형제의 영화인 <아들>의 경우,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을 마주치게 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런 상황 설정만 보아도 다르덴 형제가 어떤 윤리적 고민, 딜레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면서도 그 딜레마 자체를 흥미롭게 묘사하기보다 갈등하는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고 결코 인물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좋아합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도 그런 작품이에요.


<내일을 위한 시간>은 각본과 제작 모두 다르덴 형제가 담당했고, 촬영은 <로제타>, <로냐의 침묵>등의 촬영을 담당했던 알랭 마르코엔이 맡았다고 합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또한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다르덴 형제의 영화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덧붙여 촬영적인 면에서도, 다르덴 형제 특유의 개성이 드러나는데요. 인물의 내면처럼 미세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다르덴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정된 시점의 카메라보다 사람이 직접 들고 있는 듯한 흔들리는 카메라를 선호해서, 다르덴 영화에 더 빠져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연 배우는 우리나라에서도 정말 유명한 마리옹 코티아르입니다.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배우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데요, 일단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그의 영화는 <인셉션>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디카프리오의 아내 역으로 나와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도 역시 우울증에 괴로워하면서도 나를 복직할 수 있게 투표해 달라고 동료들을 설득하러 다니는 산드라 역할을, 가라앉으면서도 동시에 신경질적인 그녀의 모습을 통해 정말 그 인물처럼 소화해 냅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앞서 설명했듯 분명 여러 질문을 던지는 문제입니다. 나라면 보너스 대신 복직하는 동료를 위해 투표할 수 있을까?부터, 내가 저렇게 부당하게 해고되었다면 산드라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애초에 저 해고는 부당한 것인가? 아픈 사람을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맞는 것일까?와 같은 질문까지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여러 질문들이 가능한 것은 다르덴 형제가 꾸준히 노동과 인권에 대하여 작업해 오며 다각적인 각본 집필을 시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본을 충실하고 효과적으로 연출해내기도 했고요.


 


나가며



 영화 내내 이어지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산드라는 동료들을 설득하러 방방곳곳을 헤맵니다. 이 시도 자체가 힘겨운 일이기도 하고, 산드라는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답변은 가끔 산드라에게 비수를 꽂기도 합니다. 그래도 산드라는 포기하지 않고 부재중인 한 사람을 제외한 사람을 만나 전화로든, 대면으로든 의견을 전달합니다. 의견 전달이라기보다는 설득에 가깝고, 설득이라기보다는 부탁에 가까운 말을요. 이 과정에 깊게 빠져들어 몰두하니, 자신이 살기 위해 고통을 참고 괴로운 부탁을 하는 산드라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산드라는 실제로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어 합니다. 살려고 하는 일인데 그게 너무 괴로우니까요. 산드라가 괴로운 이유는 누군가 잘못했기 때문일까요? 회사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부당하게 산드라를 해고했다고 단정짓기도 모호하고, 산드라 대신 보너스를 선택한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냉정하게 보지 않아도, 보너스를 선택한 사람들이 더 평균적인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드라의 고통은 꼭 누군가의 잘못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도 있습니다. 이유 없는 고통도 있습니다. 쉽게 비유하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처럼요. 


 최근에 저는 이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코가 깨졌다고, 동네방네 코가 너무 아프다고 소리치면서 살 거냐고. 내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 아픈 건 억울하다고 매일 방에 박혀서 울 거냐고. 사실은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상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울고 약을 먹고 악을 쓰면서도 한낮에 돌아다니는 산드라의 몸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고 괴로워도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하고(부탁하고),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