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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Sep 22. 2023

10. 무서움을 날리자. "GO AWAY."

불안과 두려움을 다루는 법.


[무서움을 날리자. "GO AWAY."]


아이가 영상물을 한창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고민을 합니다.

계속 보여줘도 될지,

반강제적으로 시청을 멈추게 할지.


어른인 우리도 그 중독성을

바로 끊어내기란 힘이 듭니다.

우리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타협점을 찾아 나섭니다.


영상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듭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시각과 청각적 효과에 매료됩니다.


그 부분이 아이에게 위험합니다.

아이는 영상을 보는 동안은

입을 벌린 채,

동공마저 풀린 것 같은 눈빛으로

의미 없이 화면을 응시합니다.


저도 한번 빠져들면,

내 생각을 찾아 제어하기가 힘든데

아이에게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맞습니다. 모든 걸 인정합니다.

보여줘야 하고,

보는 동안에는 아이의 넋이 나갈 겁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유익한 경험으로

남겨주고 싶습니다.


우리 부부의 고민 끝의 결과는

영어 영상입니다.

영어로 된 영국 만화.

시각적 효과에 빠져 화면을 응시하지만,

그래도 청각적으로는 영어가 들릴 겁니다.

그 부분에 우리 부부는

스스로만 느끼는 작은 위안점을 찾았습니다.


시간을 정해놓는 기준도 만들었습니다.

마냥 틀 수 없으니,

아이와도 합의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마냥 떼를 쓸 줄 알았는데

기특하게도 알람이 울리면,

더 이상 보기를 포기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상과의 타협

그리고 아이와의 타협을 마친 뒤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어느 날, 밤이 되어 산책을 나갔습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이라

가로등 조명으로는

거리를 환하게 밝히지 못합니다.


그러다 조명이 채 들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순간 무서웠나 봅니다.

순간 용기 있고, 우렁찬 목소리가

밤하늘을 울리게 합니다.

"GO AWAY."


너무나 자신 있게 외친 그 한마디.

게다가 영어입니다.

너무 놀란 저는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뭐라고 한 거야, 방금?"


"나 무서워서 소리친 거야."

"GO AWAY라고 했어 아빠."


우리 아이가 천재임을 깨닫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저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립니다.

아이는 저의 흐뭇한 웃음에 기분이 좋았는지

배시시 웃으며 영상에서 배웠다 말합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보며

대견스러워 한참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정신이 들어 궁금한 점을 물어봅니다.

"왜 GO AWAY라고 한 거야?"


"나 무서워서. '귀신, 도깨비 저리 가' 했어."


"그랬구나, 그렇게 얘기하면 어때?"


"안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 이제.

나 씩씩해. 아빠도 해봐.

'무서운 거 저리 가' 해봐."


아이는 무서운 어둠 속에서

스스로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자신 내면의 무서움을 쫓아내게 했습니다.


아이 말대로 무서움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그 공포심을

떨쳐내고 있었습니다.


바로 GO AWAY라는 외침으로 말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다루는 법]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대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두 가지의 공통적인 속성은 '어두움'입니다. 깜깜하고,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 두 감정은 서로 연계되어 있어 독자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어두움의 공통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안이 시작되면 두려움이 이끌려 오고, 두려움이 시작되면 불안함이 내 감정을 또 뒤덮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떠한 상황에서 고난에 직면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평소 기분 좋은 삶일 때는 좋은 감정만이 가득합니다. '즐거움, 기쁨'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면서까지 평범한 일상 속 소소함을 즐깁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갑작스레 우리를 덮쳐 버리기에 정확한 판단을 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고요한 평화가 깨질 줄 예상조차 못했기에 우리는 당황을 합니다. 대처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어두운 감정에 지배되어 일상의 균형은 점차 무너져 갑니다. 짧은 시간 일어나는 일이라고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짧은 시간, 즉 감정을 뒤덮는 순간을 포착해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그런 상황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여 구분해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게 세 가지의 관점에서 어두운 감정의 씨앗이 싹틉니다. 첫째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것, 둘째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알 수 없는 내일과 미래입니다. 어둠, 동굴, 깊은 바다와 같이 우리가 마주하고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눈을 크게 떠 보지만, 그 곁에는 한 줌의 빛도 없습니다. 단 하나의 색, 어둠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칠흑 같은 깜장의 색이 그 속을 채우고, 주변마저 검정으로 물들입니다. 우리 앞에 분명 존재하지만, 정확한 형체가 보이지 않기에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이 싹틉니다.


 두 번째는 사람의 내면입니다. 이는 속에 숨겨진 마음이라 보고 싶어도 쉽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상대에게 다가가도 보이는 건 상대의 외형일 뿐, 속 마음은 알 길이 없습니다. 표정으로 또는 말투로 그 사람의 기분과 생각을 알고 싶지만, 상대가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결국, 미궁에 빠질 뿐입니다. 이는 상대뿐만 아니라 내게도 똑같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기분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이는 상대의 마음을 보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저 감정에 지배당한 채 어떠한 모습의 감정 형태인지 들여다보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이 곧 드리워집니다.


 마지막으로는 세상이 가진 속성인, 시간입니다.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갑니다. 세상에 가만히 있는 모든 것들을 뒤로 흘려보내어 순간의 지금은 순식간에 과거로 흘러갑니다. 우리는 지금을 잘 보내기 위해 앞을 쳐다봅니다. 다가올 미래를 앞서 알아야 대비를 하며, 지금을 더 가치 있게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가 올 내일을 생각한들, 그것이 보일까요. 어떠한 형태로 오는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 모두 보이지가 않습니다.


 각기 다른 형태이지만, 모두 눈으로 보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둠이 사라지고, 사라진 공간에 빛으로 채워진다면, 불안과 두려움은 걷힐까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으로 서서히 보인다면, 우리는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지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형태만 보인다면, 가능할 일입니다. 어둠 속에 숨겨진 선명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빛과 같은 도구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도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둠과 동굴 그리고 깊은 바다를 보려면 빛을 비추는 손전등만 있으면 됩니다. 그곳을 덮고 있는 것은 단지 어둠일 뿐입니다. 아이가 느꼈던 것처럼 귀신이나 도깨비와 같은 존재 때문이 아닙니다. 빛으로만 밝혀준다면, 그곳은 더 이상의 암흑이 아니기에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은 쉽게 사라집니다.


 이보다 조금 더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 밝히기입니다. 손전등과 같이 빛을 비추는 도구는 이때 무용지물입니다. 마음속에 숨겨진 감정과 생각을 꺼내보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소통과 자신과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열어보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두 사람 간에 있는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하고, 수많은 벽을 무너트려야 진실된 소통이 가능합니다.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배려가 담긴 의사소통이 필요하며, 상대를 위한 마음가짐을 내재화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떨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다른 인물로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하나의 감정이 들면, 우리는 그 감정 속에 갇힙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자신을 조금이나마 객관화를 시켜 거리를 둘 수 있어야 내 감정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다음은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를 생각하여 계획도 세울 수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사람의 마음을 밝힐 불은 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마음에 빛은 사랑이 담긴 소통으로 밝혀나가고, 자신의 내면에 빛은 스스로를 객관화시킨 성숙한 자아를 통해 밝혀 나가야 합니다.


 마지막은 미래에 대한 어둠 밝히기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으로 가져올 수도,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한 공부를 통해 예측 확률을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이 말에 부정할 수는 없지만, 온갖 과학 기술과 장비가 있는 일기예보에서도 알아맞히기를 번번이 실패합니다. 오죽하면 기상청 체육대회에 비가 온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함을 우리는 인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면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날씨로 계속 비유를 들어봅니다. 마른하늘에 언제든 비가 내릴 수 있고, 따스한 날 저녁에 갑자기 추워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산을 미리 챙기거나, 두꺼운 옷을 항상 지참하고 다니는 걸까요? 저는 그것 또한 예측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측이 아닌 대응을 해야 합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비가 내린다면, 우리가 할 대응 방법은 비를 맞거나 비를 피하려 실내에 들어가거나 근처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는 겁니다. 비를 그대로 맞는 것은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재빠르게 실내로 들어가거나 우산을 사는 방법뿐입니다. 비가 그치기를 계속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결국에 우산을 사기로 합니다. 이때 대부분 우산을 사며,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미리 예측하지 못해 필요 없는 돈을 소비한다고 마음 아파하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비 오는 것을 예상해 미리 우산을 챙기지 못했는지에 대한 생각에 갇혀 버립니다. 이런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마음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산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음에 감사하며, 우산을 살 곳이 근처에 있음을 감사하는 겁니다. 유연한 마음은 불확실한 예측에 신경 쓰지 않고, 대응 가능한 도구가 있음에 감사해하는 겁니다. 이러한 마음먹기가 쉽지 않겠지만, 인생은 수많은 변수로 가득합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에도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데, 오지 않은 미래는 어떨까요? 맞히려는 시도가 아닌,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 어떠한 상황이든 대응할 수 있는 편이 대응 확률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요?


 아직도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할 겁니다.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다만, 그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이가 용기를 내어 본인이 그 장소를 피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으로 두려움을 떨쳐낸 것처럼 우리도 그런 방법을 천천히 익혀가면 됩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관성이 있기에 한 순간에 바꾸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이제는 나 혼자의 감정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이가 앞으로 느낄 다양한 불안과 두려움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해결할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에게 그 방법을 알려줄 수 없습니다. 어둠에 갇힌 그 마음을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가 가진 빛을 밝힐 수 있도록 해봅시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어둠에 오래 있다 보면 그 어둠 속에서도 결국 볼 수 있음이 우리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크나큰 도전으로 느끼지만, 계속된 노력을 하다 보면 곧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익혀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변하는 여러분께 응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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