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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Sep 19. 2023

09. 아빠, 그네 더 높이 밀어줘

가끔은 행복한 비교가 필요해요.


[아빠, 그네 더 높이 밀어줘]


한참 날이 더워지는 한여름 밤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자기 전

아이와 함께 놀이터를 자주 갔습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네입니다.

멀리서 아무도 타지 않아

비어있는 그네를 보면,

누구보다 쏜살 같이 달려갑니다.


"아빠, 그네 사람 없어. 내 거야."


그 소리는 허공에 날리어지며,

아이는 어느새 내 곁이 아닌

주인 없는 그네에 주인이 되어주려

뛰어갑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아이의 등을

조금씩 밀어줍니다.

아이가 탄 그네는 반동을 하며,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합니다.


고요한 저녁 밤,

아이의 목소리가 높이 울려 퍼집니다.


"아빠, 더 높이! 높이!"


공중에서 발을 앞뒤로 펼치기를 반복하지만

자신의 마음에는 차지 않는가 봅니다.


저도 조금 더 있는 힘껏 밀어줍니다.

제 시선에서는 아이의 발이 어느덧

하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위험할 것 같아 조금씩 그 높이를 조절합니다.

아이는 어깨너머로 저를 올려다봅니다.


"아빠, 아니야. 더 높이! 더 세게!"


지금도 충분히 높이 올라가는

아이의 그네인데도,

아이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법이 없을까.'


저는 이윽고 아이를 세게 밀어주고는

비어 있는 옆에 그네에 잽싸게 앉습니다.

그러고는 엄청 용을 쓰는 모습을 지어봅니다.


"아빠,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안 되겠다.

네가 너무 높아서 따라잡지 못하겠어."


아이는 애쓰는 내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빠, 그것밖에 안돼?

더 높이 못 타?"


"응, 아빠는 이게 다야. 더 안 되겠어.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높이 올라갔어?"


아이는 그제야 배시시 웃습니다.

자신의 다리가 정말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듯

몸을 뒤로 한껏 젖혀 보이며,

큰 소리로 말합니다.


"아빠, 나 진짜 잘하지? 나 엄청 높지?"


아이의 그네는 점차 바닥을 향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여전히 하늘에 맞닿을 만큼 그네가 높이 있고,

아빠의 그네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 자리해 있기에

그 만족감은 더욱 높아집니다.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말합니다.

"내 그네가 하늘에 갈 것 같아."





[가끔은 행복한 비교가 필요해요.]


 이 경험을 한 후에 저는 아이에게 상대적인 비교를 가끔 심어 줍니다. 아이의 만족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그보다 못한 상대임을 자처해 기분을 만족시켜 주곤 합니다. 한 번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우리의 삶에 정답은 없지만, 행복한 삶을 살려면 비교에서 멀어지라 말합니다. 주위의 사람들과 비교에 빠지면, 우리는 스스로를 살펴보지 못하고, 나약한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것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비교를 통해 만족감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비교'라는 생각의 제대로 된 정의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아이는 비교를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고, 불행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성장과 우리의 성장을 위해 올바른 비교를 생각해 봅시다.


 비교의 어학적 의미는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고찰하는 일입니다. 둘 이상의 사물에 해당되는 것은 모두 비교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속성에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교에도 예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 간 비교를 할 때 어떠한 사람을 기준으로 어떤 면을 보는지에 따라 그 사람에게는 긍정적 비교가 될 수 있고, 부정적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비교에는 평가자의 의도가 포함됩니다. 그 의도에 따라 비교의 결과는 상반될 수 있기에 신중히 생각하고 얘기를 해야 합니다.


 의도가 섞인 비교 중, 우리는 어떠한 것을 택하고 있을까요? 아이가 성장할 때는 우리의 의도와 계획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가 아이를 위한 우리의 걱정이고, 염려이고, 가르침인데 아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끔 노선에서 이탈한 아이를 보면, 많이 답답하고 걱정이 됩니다. 호되게 야단을 치거나, 정신적인 교육을 통해 다시금 올바른 노선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싶어 집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우리는 비교를 합니다. '왜 다른 아이들은 문제가 없는데, 너는 문제가 있느냐.', '다른 아이들은 이만큼 성적이 나오는데, 너는 왜 성적이 이 모양이냐.'와 같이 물어도 그 답을 모르는 아이에게 우리는 부정적 비교를 서슴지 않으며 질문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비교일까요? 올바른 질문일까요? 아이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어 우리가 원하는 노선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까요?


 부정적인 비교는 아이를 사지로 내모는 악랄한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굳이 다른 이와의 비교를 통해 열등감을 한번 더 느끼게 하는 결과입니다. 그 열등감은 자존감의 하락을 가져옵니다. 자존감은 자신감마저 떨어트려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합니다. 이러한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부정적 비교를 해야 할까요? 정작 우리 아이를 위한 것일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을 겁니다. 아이의 열등감만 느끼게 하는 부정의 비교는 우리 부모의 화풀이 수단일 뿐입니다.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겠다는 핑계와 경각심을 느끼게 한다는 우리 스스로의 구차한 변명입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원하는 것은 모두가 같습니다. 아이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잘 성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비교만이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비교를 구체적으로 구분을 해봅니다. 두 가지의 비교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네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존재의 비교와 '네 노력의 과정은 어느 누구보다 빛나다'라는 행동의 비교입니다. 존재만으로 다른 이보다 고귀하다 생각하는 이들의 자존감은 높게 유지됩니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며, 내면의 대화를 하는데 스스럼이 없습니다. 이들은 고난이 있어도 자신을 믿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시련이 닥쳐도 그들은 스스로를 무너트리지 않습니다. 절망 속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그건 자신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고개 숙이지 않고, 자아의 믿음을 가진채 삶을 헤쳐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행동의 비교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마주합니다. 매 순간이 선택이며, 매 순간이 그에 대한 결과입니다. 행동이란, 어떠한 것을 선택해서 어떻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최선의 기준이 다르며, 노력의 정도가 다릅니다. 이때 우리는 아이가 가장 최상의 노력을 해내기를  바랍니다. 채찍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노력을 비하하고, 폄하하기보다는 상대적인 비교로 치켜세워 줍시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실패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그들의 노력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모자라거나 부족했더라도 다른 이들보다 잘한 것에는 상대 비교를 통해 칭찬을 해줘야 합니다. 결국, 무언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성공하는 법을 모르기에 끊임없이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법부터 습관으로 심어줘야 합니다. 행동하는 것에 부담이 덜해지면, 그다음 방법과 노력의 정도에 관해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고민하면 됩니다. 그렇게 올바른 성장을 통해 아이가 깨우쳐 나가면 됩니다.


 비교의 비는 견줄 비라는 한자어입니다. 우리가 비교를 아이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심어주려면 그 의미를 바꾸어 보면 됩니다. 저는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며 결심했습니다. '비애'라는 단어에 사용하는 슬플 비의 비교가 아닌, '비상'이라는 단어에 사용하는 날 비의 비교를 아이에게 해 줄 겁니다. 하늘에 닿을 수 있는 자존감과 행동, 노력을 해낼 수 있도록 아이를 날게 해 줄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비교를 통해 아이를 슬프게 할 건가요, 기쁘게 할 건가요. 기쁨으로 가득 찬 아이는 세상이 그들의 놀이터가 될 겁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놀이터를 아이와 함께 만들어 나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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