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이 스스로의 색을 규정한다 : 색을 찾는 방법
[아이의 색]
차를 타고 가는데 뒷좌석에서
아이와 아내가 나누는 얘기가 들려옵니다.
"엄마, 나 까매?"
"아냐, 까맣지 않아. 까만 건 검은색인데,
음... 이거. 이게 검은색이야. 그렇지?
그런데 넌 보자. 검은색이야? 아니지?
그러니 넌 까맣지 않아."
이 얘기를 듣고 있으며,
룸 미러로 아이를 잠시 바라봅니다.
순간 아이의 모습이 하늘로 흩날리더니
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부터는 아이에게 하는 말의 형식으로
글을 표현해 봅니다.
아빠는 운동을 좋아해서 온종일 밖에 있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피부가 까맸어.
좋아하는 걸 했을 때의 기쁨이 컸던 나이였기에
피부색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어.
그러다 외모에 관심이 가는 나이가 되면서,
거울 속의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어.
새까만 얼굴에 하얀 부분이라고 찾아보니,
찢어진 눈매 안의 작은 눈과
큼지막한 치아뿐이더구나.
그때부터 난 거울을 보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았어.
학창 시절, 사춘기를 지나며
어느새 내 피부색은 콤플레스로 자리 잡았어.
어른들은 남자다움이 느껴진다며
장점이라 말했지만,
내게는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어.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피부색이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그런 때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이제 아빠가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줄게.
일반적인 삶을 살기에는
피부색도 외모도 사실 중요하지 않아.
그걸 깨닫는데 아빠는 오래 걸렸어.
유독 내 콤플렉스라 생각해서
그 안에 더 갇혀 있었나 봐.
중요한 건 피부색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자체의 색인데 말이지.
사람의 색은 겉으로 보이는 피부색이 아니야.
너의 생각과 행동, 마음이
너를 표현하는 색이야.
어떠한 색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네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들여다봐야 해.
때로는 붉은색으로, 때로는 하얀색으로.
네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마음껏 표현해 볼 수 있단다.
아빠도 이렇게 생각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
그래서 네게 생각을 강요하진 못해.
너도 살다 보면,
아빠처럼 깨닫는 날이 올 거야.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너의 생각대로 이리저리 고민해 보면 돼.
분명 피부색이 많이 신경 쓰일 거야.
선크림도 바르고,
어른이 되면 화장도 신경 쓰겠지.
오랜 시간 관심을 두고 신경을 쓰다 보면,
그 속에서 너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너의 색은 피부색이 아님을 다시 얘기해.
외모로 평가받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너의 존재는 그 누구도 평가할 수 없어.
겉으로 보이는 것만 바라보는 이는
결국, 너의 모든 것을 보게 되면,
너의 색을 정의할 수 없을 거야.
너는 하나의 색이 아닌
네가 가진 다양한 것으로
나타나는 다채로움이니까.
너도 커 가면서 너 자신을 알게 될 거야.
무엇이 너인지, 너를 표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네가 가진 것들을 알수록
어떠한 색인지 보일 거야.
아빠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 생각해.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 중에
아름이 알음, 앎에서 나왔다는 것처럼.
시간은 걸리겠지만,
하나씩 네 안의 것들을 찾아보길 바랄게.
[자신만이 스스로의 색을 규정한다 : 색을 찾는 방법]
우리의 주변에는 수많은 표지판과 간판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간판,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목마다 친절히 안내해 주는 표지판.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타인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 원하는 곳을 검색해서 찾아가지면, 그전에는 이들의 도움 없이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검색하는 데까지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의 시선만 슬며시 사로잡고는,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운전을 하며 가다 보면, 순간적인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표지판이 친절히 방향을 알려줍니다. 디지털화된 세상 속까지 이들의 존재감은 뻗쳐, 현재에도 자신이 도태될 일은 없음을 떳떳이 말하고 있습니다.
표지판과 간판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도로 위의 표지판은 녹색의 배경에 하얀색 글씨로 쓰여 있습니다. 멀리서도 그 배경 위에 쓰인 글씨는 알아보기 쉽습니다. 비가 오거나, 어두워지거나 등의 주변 환경이 달라짐에도 그들의 역할과 기능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지판이 어느 곳이나 어떠한 환경에서 거나 그 역할과 기능을 해내는지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 녹색 배경 위에 하얀색 글씨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색과 알려주는 글자의 색이 다르니, 또렷이 보입니다. 생각을 달리 해 봅니다. 녹색 배경에 녹색 글씨라면 어떠할까요? 우리는 그 표지판이 자신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음에 모두가 끄덕일 겁니다. 자신이 색을 가진 들, 녹색 배경의 녹색 글씨라면 무쓸모의 표지판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색을 고민할 때, 배경이 되는 세상의 색도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떠한 색일까요? 아이의 부모가 되기 전에는 명확한 꿈도 있고, 오늘을 살기 위한 분명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성향의 차이로 드러내는 정도가 달랐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분명한 우리의 색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흰색이던, 노랑이던, 검정이던 상관없이 진정한 '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다 보면 우리 자신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오늘 중 '나'로 살았던 시간은 있었을까?', '모든 걸 놓고, 잠깐이라도 내 이름 석자로 살아보고 싶다.' 이러한 소망만 가끔 떠오를 뿐, 잃어버린 나를 당연하듯 받아들입니다.
이제 우리도 자신의 색을 찾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결혼과 상관없이, 육아와 상관없이 말이죠. 상황이 어떻게 달라진들 우리의 색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바쁘고, 치열한 하루에서도 '나'를 위한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쪼갤 수 없는 시간이라 하지만,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는 노력도 할 수 있습니다.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시간은 큰 제약이 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시간이 아닙니다. 세상의 색을 알고, 그 속에서 내 색을 찾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합니다.
세상의 색이 노랑이라면 어떨까요? 나는 노란색의 글자가 되어보지만, 노랑의 배경 안에 흡수되어 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색을 바꿔본들, 주변이 변하며 세상의 색도 다시 바뀝니다. 나는 파랑으로 바뀌어 보지만, 세상이 또 파랑으로 바뀌면 우리는 제자리걸음 속에 또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나를 찾는 과정, 내 존재감을 드러내는 과정은 세상의 색을 먼저 찾아보는 것입니다. 물론,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갇혀, 혹은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자신만 들여다보는 일은 헛수고일 때가 많습니다. 나 이전에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존재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이 모여 세상의 색을 구성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들을 따르면, 내가 묻히는 길이니 그들의 색을 살피며 조금은 다른 나만의 색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주위를 먼저 둘러보고, 내가 구성된 작은 관계를 살펴보면서 자아를 찾아내 실현시켜야 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 혹은 세상 속 나의 정체성이 표지판과 같습니다. 세상의 배경 속에 우리라는 글자가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먼저 본다면, 나의 색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 고민은 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모습을 갖추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연습이 몸에 익혀지면, 우리는 또 다르게 표지판을 구성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주변의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겁니다. 세상의 색을 확인하고, 내 색을 고민해서 찾아냈다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녹색의 세상 속 나는 흰색 글자가 되고, 파랑과 빨강의 친구들을 찾아내 더욱 화려한 표지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겹치지 않는 색이 되고, 함께 할 다른 색의 사람도 곁에 두는 겁니다. 그리고 그 표지판은 어느 것 보다 더 눈에 띄게 되고, 훨씬 쓸모 있는 안내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며, 나를 드러내는 방법이고,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힘든 순간이 있어도 자신을 놓치지 마세요. 단지 세상의 색과 같아져 그 속에 잠시 흡수된 것뿐입니다. 내가 사라졌다고 고개 숙여 절망하지 마세요. 세상의 색이 달라지거나, 내가 다른 색을 찾아내면 그만입니다. 결코, 나의 쓸모가 사라졌다고 비난하거나 좌절하지 마세요.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육아를 하며 잠시 놓쳤던 자신의 색을 찾아낼 때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만의 세상사는 법을 생각해 보시고, 정의를 한번 내려 보세요. 삶 속에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여러분께 위로 한 줌 내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