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웃어 보이세요 : 웃음 바이러스 전파
[어떻게 웃을까요.]
서양은 입 모양 :)
동양은 눈 모양 ^^
책을 읽다 새로운 것을 알았습니다.
서양과 동양 문화 간
사람의 표정을 인지하는 방법이 다르답니다.
서양권은 입을 보고, 동양권은 눈을 본답니다.
시선이 그리 가고 입 또는 눈을 통해
각 문화는 다르게 받아들인답니다.
이런 내용을 알고 나니
나는 어떻게 웃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작고 좌우로 길기만 한 내 눈이
제대로 웃고 있는지 신경이 쓰입니다.
인위적으로 웃어 보이며,
거울을 바라봅니다.
눈이 작은 터라 내 눈은 더 적어지지 않게
힘을 준 채 입으로 웃음을 표현합니다.
동양권에서 맞는 웃음이 아닌가요?
사람들이 내 웃음을 좋게 받아들일까요?
어떻게 하면 잘 웃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보면, 그 해맑은 웃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참 궁금하지요.
까르르하는 싱그러운 소리도 있지만,
아이의 눈과 입에서 드러나는 그 웃음.
흉내 내기도 어려운 순수한 웃음 말입니다.
아이에게 물어보아야겠습니다.
어떻게 그리 예쁘게도 웃는지.
배운 적도 없는데, 생각한 적도 없는데.
눈과 입 얼굴 전체와 소리까지
어떻게 완벽한 웃음을 내는지.
운전하다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아이는 말합니다.
"아빠, 그냥 웃으면 돼."
하하하, 호호호 아니면 헤헤헤로
그냥 웃으면 된답니다.
자동차 룸미러로 그런 아이를 봅니다.
그저 웃는 거라지만, 참으로 예쁜 미소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을까요?
룸미러에 비친 얼굴은 두 명을 담습니다.
내 얼굴과 나의 반을 닮은 아이.
거울에 비친 두 모습을 보니 알 것 같습니다.
나도 아이와 같은 웃음이 있었다는 걸요.
아이는 어릴 적 잊어버린
내 또 다른 얼굴입니다.
아이는 웃는 법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자신을 둘러싼 가족으로부터
각각의 표정을 보았고,
그렇게 웃음을 배웠습니다.
거울에 함께 담긴 나와 아이의 얼굴은
꼭 닮아 있습니다.
아이는 나를 보고, 나는 아이를 보고 웃습니다.
어떻게 웃는 것이 중요한가요?
무엇을 보고 웃는 것이 중요한가요?
아이가 우리에게 배운 웃음과
아이를 보며 짓고 있는 우리의 웃음은
동서양 문화를 넘어 이미 완벽한 웃음입니다.
잊어버린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거울을 바라보세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꼭 닮은 두 사람의
행복하고, 완벽한 웃음을요.
내가 모르는 나의 웃음을요.
[내가 먼저 웃어 보이세요 : 웃음 바이러스 전파]
아이는 웃는 법을 모른 채 태어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나 매 순간을 경험하며,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침대는 또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루 중 아이가 가장 많이 보는 것은 부모의 얼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의 표정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의 표정을 아이는 하루 중에 가장 많이 보고, 관찰합니다. 웃는 법을 모른 채 세상에 태어났지만, 단 며칠만 지나면 부모의 미소를 조금씩 따라 합니다.
그것을 알게 한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부모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며, 어떻게 하면 웃게 해 줄까 고민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를 웃기기 위해서는 시각적으로 우스꽝스러움을 보여야 합니다. 저는 평소에 피우지 않던 애교를 떨어봅니다. 혹은 나도 알지 못하는 외계어를 쓰면서 아이의 반응을 지켜봅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는 웃긴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관찰할 뿐입니다. 몇 번 시도해 보다 지칩니다. 포기할까 망설이는데,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아내가 재밌다는 듯 웃어 보입니다. 나 혼자 애쓰는 것 같아 원망의 눈빛을 보내는 그때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까르르"
웃긴 상황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단전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큰 웃음소리를 냅니다. 신기합니다. 무엇 때문에 아이가 힘차게 웃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의 웃음에 나 또한 기분이 좋아져,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아이가 또 웃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소리 내 웃어 봅니다. 아이 또한 더 큰 소리로 웃어 보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아내도 웃습니다. 누구의 웃음소리가 끊기려 하면, 다시 누군가의 웃음소리로 끊기지 않는 도돌이표가 됩니다.
잊었던 생각이 하나 떠 오릅니다. '웃음은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다.' 맞습니다. 누군가가 웃으면, 행복한 감정이 퍼져 그것에 도취된 듯 나 또한 웃음이 납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는 말 또는 상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이 미소를 짓고 있으면, 충분합니다. 아내가 먼저 웃었고, 그것이 아이를 웃게 한 것입니다. 아이는 웃겨서 웃은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는 아내를 따라 하였고, 그 결과 행복한 웃음이 나온 것입니다.
내 주위를 밝게 해 주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먼저 웃어 보이는 것. 바이러스의 시초가 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굳이 웃긴 이야기,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할 필요도 없습니다. 웃음이 많은 사람이 되어 주변 이들의 말을 듣고, 미소를 한가득 보이면 됩니다. 의식적인 표현이지만, 이 표현은 내 감정을 움직이게 합니다. 어느덧 가슴속에서 뜨거운 행복감이 작게 피어남을 느낍니다. 작은 미소로 시작했지만, 약간의 눈물이 나올 만큼 웃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표현이 내 감정을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웃음은 타인을 전염시키는 긍정적인 바이러스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행복하게 꽃 피우는 영양분이기도 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는 법 없듯, 즐거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부정적인 표현을 할 이도 없습니다.
하루가 고단하고, 힘드시죠?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길을 겪고 직장 일을 하고 난 뒤 다시금 맞는 육아와 집안일의 반복입니다. 직장을 가지 않는 가정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거나, 아이를 어린이집 또는 학교에 보낸 뒤 집안일을 또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표정은 무의식적으로 먹구름이 잔뜩 끼이기 마련입니다. 웃어 보려 해도 웃을 일이 없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고단한 얼굴이 드리워져 있으면, 나머지 한 사람에게도 우울함이 퍼져버립니다. 아이는 웃는 표정을 볼 순간이 없습니다. 모두가 웃음을 잃어가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 법을 잊어갑니다. 내 표정을 누군가 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입니다. 내 얼굴로 인해 가족들의 감정은 바뀔 수 있습니다. 매일이 피곤하고, 웃을 일 없다고 느끼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나뿐만 아니라 나의 배우자와 아이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요. 나 아니면 우리 가족이 웃을 일 없다 생각해 보세요. 의무적이지만 미소를 띄워 가족을 바라보면, 그들 덕분에 내 감정도 바뀔 수 있습니다. 감정이 먼저인지 웃음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두 가지 요소는 서로 얽혀서 선 순환을 할 테고, 무엇이 먼저였는지조차도 잊어버릴 겁니다. 거울을 바라보세요. 웃어 보세요. 당신의 모습 덕분에 모두가 행복함이 가득한 하루를 맞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수혜자는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마세요. 오늘도 밝은 웃음으로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