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만들어낸 평범한 시스템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나는 앉아 있었습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앉아 있어도 천천히 움직여주는 컨베이어 벨트 덕분에 나는 세상에 잘 적응해 나가는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어디쯤 온 걸 까요?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모르겠습니다. 차량 조수석에 앉은 채 실려오다 보면 방향 감각을 상실하는 것처럼, 나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삶이 그러했습니다. 세상의 평균쯤 위치한 성적으로 그저 그렇게 살았습니다. 뒤쳐지거나 바닥에 있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컨베이어 벨트 위의 나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뚫어져라 보았고, 수시로 아이를 유심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별다를 것을 찾을 수 없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 쑥 성장하기 바빴습니다. 아이를 보아도 별다를 것이 없었고, 천진난만한 웃음이 나를 그저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소소한 기쁨이 유지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이상했습니다. 아이를 보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알 수 없는 침울한 감정에 의아한 하루였습니다. 유독 그날 아이의 눈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내 기분을 불편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내가 매일 아이를 보는 것처럼 '아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에 의미 있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훗날 아이가 나를 바라볼 눈빛이 그려졌습니다. '아, 아이를 보면 내가 보이는 게 아니라 아이의 눈을 통해 비치는 내가 그려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상상해 봅니다. 커버린 아이의 눈에 담긴 내 모습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나이 들어 버린 내 겉모습이 아니라 지금에 멈춰진 생각 없는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생각을 갖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세상을 사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텅 빈 머릿속에 다양한 불안의 감정이 채워졌습니다. 이뤄 말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두 침침한 스산한 기운이 나를 뒤덮었습니다. 나는 벗어나야 했습니다. 생각을 가지기 위한 방법을 알아야 했고,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는 걱정 따위 없습니다. 스스로의 성장에 확신과 믿음을 갖고, 커나가는 듯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자랄지, 어떠한 모습으로 커갈지에 대한 두려움은 없고 오로지 의지만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공주님이 될 거야. 음. 아냐, 언니가 될 거야."
"진짜? 공주님 아니면 언니가 될 거야?"
"응. 될 거야. 근데 난 지금도 공주님인데?"
"아하. 그렇구나. 지금도 공주님이지. 그럼 언니는?"
"공주님이고, 언닌데? 나 언니야. 아빠는?"
아이의 대답이 제게 무한한 생각을 가져옵니다. 생각이 없었던 내게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 힌트를 주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이의 질문에 무엇이라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물었던 질문이 제게 되돌아온 그날, 본격적인 저의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현실적인 고민을 해왔습니다. '될까?'보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는 답을 위한 수많은 제약과 한계를 찾았습니다. 무턱대고 도전했다가는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수많은 가능보다는 하지 못할 타당한 현실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잃을 것이 두려워서 어느 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내는 아이를 스승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성장의 속도는 그 어느 누구보다 빠릅니다. 아이는 비결을 내게 알려주지 못하기에, 제가 관찰해 그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성장하는 저의 성장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기간은 1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수많은 배움을 아이에게서 얻었고, 아이와 함께 실천해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배움과 과정의 생각을 기록까지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생각이 아닌 글로 기록하는 것이기에 저의 생각과 행동은 더욱 의지를 갖게 합니다. 조금씩 바뀌는 것이 느껴집니다. 예전과 다르게 수많은 시도와 도전을 서스름 없이 합니다. 그 결과 브런치 스토리라는 공간에서 글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급격한 변화와 성장을 이루었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제 자신이 자랑스럽고, 가장 사랑스러운 때입니다. 매일이 피곤하지만, 피곤함을 넘은 매일의 성취감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아이 덕분입니다. 지금도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준 아이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떠한 모습이 되겠다는 건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매번 변화와 성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현실의 잣대를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힘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을 원하든 간에, 상상하는 모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힘들고 반복되는 육아 전쟁이지만, 이 전쟁터는 그리 험난한 곳이 아닙니다. 어쩌면, 아이를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되는 그때의 내 삶이 더 냉혹한 전쟁터일 겁니다. 육아를 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세요. 그러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준비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힘든 시간을 버텨가며, 함께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 갑시다. 내 성장이 곧 아이의 성장입니다. 오늘도 한 뼘 키가 자란 아이를 보며, 뿌듯해합니다. '나도 저만큼이나 자랐겠네.' 여러분들의 변화와 성장을 응원합니다. 나도 해내고 있는 만큼 여러분들이 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생각여행자 올림.
[에필로그]
우리도 아이였던 때가 있습니다. 급격한 성장을 매일 아무렇지 않게 밥 먹듯이 해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가요? 기억나시나요? 아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저렇게 자랐구나.' 키와 생각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며 우리도 부모님의 기쁨이자 자랑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며 신기해했던 감정을 예전 우리가 부모님께 선물해 주었습니다.
새로움을 배우며 커가지만, 크면서 잊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했던 기억입니다. 어느새 옛 기억이 돼버린 그 시절의 우리 모습은 점차 흐릿해져 갑니다. 스스로 익혀 낸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험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갑니다. 그 속에 다행히 우리의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를 보며 우리의 옛 성장 방법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덮여 있던 과거의 모습을 하나씩 찾아보며, 아이의 성장과 우리의 성장을 함께 바라봐 보세요. 아이는 우리의 옛 모습입니다. 나의 옛 거울을 들여다보듯, 지나쳐 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기억이 날 겁니다.
제 글이 여러분께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만은 말씀드리고 싶어요. 삶은 다양한 고난과 역경이 함께 합니다. 그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내가 결정합니다. 식물이 자라듯 자양분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태풍 속에서 뿌리가 뜯겨 나갈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힘든 시간을 딛고 일어서면, 더욱 강건한 뿌리의 힘으로 우리를 지탱할 겁니다. 육아라는 어렵고 힘든 시간 속에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간으로 바꾸어 보시길 꼭 말씀드려 봅니다.
에필로그 포함하여 총 16편의 글을 읽어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하루도 빛이 나길, 여러분의 추억이 반짝거리길바라보며, 함께 즐거운 육아 해 봅시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께 이 글을 바치며 힘내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