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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Oct 12. 2023

14. 아이의 아기상어 대일밴드

우리의 상처는 어떻게 기억할까요?


[아이의 아기상어 대일밴드]


회사에 출근해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갑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납니다.

눈썹쯤에 아이의 아기상어 대일밴드가 

붙여져 있습니다.

손으로 쓱 만져보고는

떨어지지 않게 꾹 누르고

화장실을 나갑니다.

사무실 자리로 돌아가는 내내

계속 웃음이 납니다.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출근하려 준비하는 소리를 듣고,

아이는 일찍 잠에서 깼습니다.

잠투정을 하는 아이를 달래고는

회사에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합니다.

아이는 내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더니,

엊그제 난 상처를 살펴봅니다.

자신의 소중한 밴드 통을 뒤적이며,

내 상처를 덮어줄 것을 고릅니다.

파란색의 아기상어 캐릭터를 찾아내

상처가 나을 거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붙여줍니다.


아이는 내게 상처가 날 때마다

밴드를 붙여주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젠 나을 거야. 괜찮아.

내가 호 해줄게. 걱정 마."

그럴 때마다 참 기특하고,

고마웠습니다.

이제 상처쯤은 알아서 낫겠거니 하고

약조차 바르지 않은 나입니다.

그러나 딸아이는 언제나 내 상처를 

치료해 주고, 낫게 해 주었습니다.


문득, 의문 하나가 듭니다.

아이는 단 한 번도 내게 

왜 다쳤냐고 묻지를 않습니다.

그저 밴드를 가져와 

가장 예쁜 것으로 붙여주고는

나을 거니 괜찮다는 말만 합니다.

다른 말에는 "왜?"라는 말을 잘하면서

내 상처에는 그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매매번 아이의 상처를 보면

왜 다쳤는지를 묻고,

조심하라는 얘기만 하는

나와 비교가 되었습니다.


가만 보니 내 몸에 있는

상처와 흉터들은

각기 다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다쳤던 상처,

다 큰 성인이 되어

칠칠치 못해 다친 상처들.


그러나 아이가 어루만져 준 곳은

아이의 손길과

다양한 밴드들로 기억합니다.

그곳은 내 몸을 할퀸 상처보다는

아이의 마음으로 덮인

사랑의 자국으로 보입니다.


반성합니다.

아이의 상처를 보며,

그 이유를 묻던 나는

생각이 참 짧았습니다.

아이처럼 그저 치료해 주고, 

나을 거라 말하며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 될 것을.

그러면 아이도 기억하겠지요?

이래서 다쳤던 곳이 아니라

아빠가 어떤 눈빛으로

치료해 줬던 곳으로요.


외부의 상처처럼

마음의 상처도 그럴 것입니다.

아픔의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저 괜찮을 거라고 안아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면

그만일 겁니다.


정말이지, 

나는 그 밴드를 집에 올 때까지

붙이고 있었습니다.

땀 때문에 떨어지려 하면,

다시 거울을 보며

꼭꼭 붙여놓았습니다.

동료들의 농담 섞인 조롱도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꼭 붙이고 있으면,

정말 다 나을 것 같았습니다.


나도 아이가 좋아하는 밴드를

준비해야겠습니다.

깊은 상처라도 그곳을 보고는

피식 웃도록 말입니다.




[우리의 상처는 어떻게 기억할까요?]


 자라온 세월과 비례해 수많은 상처가 남습니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서툴렀습니다. 걷는 것조차 그랬습니다. 걷기 위해 수천번을 넘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가볍게 다치기도 하고, 깊은 찰과상을 입기도 합니다. 걷고 난 뒤에는 어떤가요? 뛰어다니기입니다. 내 두 발이 차례차례 움직이며, 지면의 반력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느 정도 속도가 붙은 다음에는 주체하지 못합니다. 다음에 디딜 내 발을 옮기는 것보다 관성의 속도가 빨라 앞으로 고꾸라집니다. 걷는 것, 뛰는 것 이 모든 게 시간이 흐르며 익숙해집니다. 그런다고 다치지 않을까요? 이제는 익숙함에서 오는 미숙함이 발생합니다. 사소한 것에도 쉽게 다칩니다. 한낱 종이이지만, 날카로운 면에 베이기도 합니다. 물건을 옮기다 아래의 문턱을 인지하지 못해, 발가락을 찧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익숙하지 못해, 익숙하기 때문에 갖은 상처를 몸에 지니게 됩니다.


 상처는 몸 밖으로만 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 상처는 마음에 생긴다는 것을 더 경험합니다. 상처 보존의 법칙일까요? 외부의 상처는 줄어들지만, 내면의 아픔이 커져갑니다. 즐거운 놀이터라 생각했던 세상은 온통 내 마음을 공격하는 전쟁터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향해 공격한 적은 없지만, 세상은 다른 사람을 이용해 내게 공격을 해 옵니다. 오늘 하루 무사히 넘어가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불현듯 마음을 찔러 옵니다. 이는 외부의 상처와 다릅니다. 익숙함과 능숙함과는 다릅니다. 적응할만하면, 그것보다 조금 더 아픈 공격이 들어옵니다. 견딜만하면, 그것보다 조금 더 날카로운 공격이 들어옵니다. 마음의 상처는 낫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미처 회복하지 못한 채 그 공격을 계속 받아내느라 힘이 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바라보느라, 우리는 점점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면역력이 생기는 것보다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집니다. 


 몸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합니다. 피부가 찢어진 사이로 피가 납니다. 그 피에는 여러 세포들이 모여듭니다. 더 이상 출혈을 막아주는 세포와 손상된 곳을 채워 새로운 조직으로 만들어 주는 세포가 있습니다. 적절한 응급처지만 하더라도 세포들 덕에 며칠만 있으면, 새 피부로 상처는 덮입니다. 의식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면 됩니다. 처음에는 상처 부위가 따갑고, 쓰라리지만 이내 통증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다 그 부위가 조금 간지럽다 싶어 살펴보면, 딱지가 져 있습니다. 이러면 거의 다 되었습니다. 딱지까지 벗겨지고 나면 새 살이 보입니다. 비로소 완벽히 나았습니다.


 내면의 상처는 이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기억이 희미해집니다. 다행입니다. 그렇게 큰 내면의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상처는 추억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아픔도 있습니다. 이 때는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공포심이기도 하고, 특정한 무언가를 영원히 하지 못하는 두려움이기도 한 트라우마입니다. 이는 시간에 의존해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상처를 덮기 위해 의도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과거를 들여다보아서 그때의 아픔과 고통을 직면해야 합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 아픔을 마주하고, 자신에게서 치료할 또 다른 요소가 있는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쉽게 끝이 나는 치료 과정이 아니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 긴 여정의 시작입니다.


 결국, 상처는 흉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흉과 내면에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 그 모든 것이 흉입니다. 흉을 보면, 다친 기억이 떠오릅니다. 인생을 살면서 상처가 두려운 이유는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상처도 흉터가 지면, 볼 때마다 다친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결국, 지워지지 않는 상처는 언젠가는 또 다른 형태로 내게 상기시켜 줍니다. 아이가 제게 했던 것이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제가 다쳤던 곳을 거울에서 찾아내면, 어떻게 다쳤는지는 잘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그저 아이가 제게 했던 행동과 마음만이 생각납니다. 거울에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며, 흉터를 어루만집니다. 다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흉터는 다쳤을 때 보살핌을 받은 따뜻한 사랑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가을 날씨에 쌀쌀한 긴 맨투맨 티 하나를 펼쳤습니다. 입어 보려 앞과 뒤의 방향을 살펴봅니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만화 캐릭터가 보입니다. 등 한 복판에 캐릭터 모양으로 수가 놓여있습니다. 예전에 무엇을 하다가 찢어진 옷입니다. 찢어져 입지 못하겠다 생각했지만, 엄마가 그 옷을 세탁소에 맡겨 찢어진 자리에 수 하나를 놓아 왔습니다. 저는 그 옷이 어떻게 찢어진 것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지만, 아름답게 놓인 수를 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띄워 봅니다. 우리의 상처는 이렇게 뒤덮여야 합니다. 아이의 아기상어 밴드처럼, 맨투맨 티의 수 놓인 만화 캐릭터처럼 말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내외적 상처를 입습니다. 그때마다 다친 기억에 사로잡힌다면, 밝은 내일을 더 만들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매 순간이 아픔이고, 슬픔일 겁니다. 다친 행동에 후회하고, 나를 다치게 했던 누군가를 계속 원망만 할 겁니다. 우리가 다치는 것과 나아가는 과정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상처의 속성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 지난 상처를 통해 치료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씻고 소독하여 새 살이 돋아나게 노력하세요. 그 노력이 어려울 때는 아름다운 기억 하나를 덧 대어 보세요. 내 상처도, 타인의 상처도 같은 방식으로 어루어 만지세요. 그러면 우리는 과거에 발목 잡혀 있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수많은 상처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요?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그 답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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