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의 제2의 도시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은 크게 서부산과 동부산으로 나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서부산에 위치한 사하구에 거주했다. 지금에서야 서부산에 명지와 같은 신도시가 생기고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발전이 된 곳도 더러 있지만, 여전히 부산에서 좋은 입지라고 불리는 곳은 대부분 동부산에 몰려있다. "느그서장 남천동 살제 으잉?" 영화 대사로 유명해진 과거에 부촌이었던 남천동도 동부산에 있고, 지금 부산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해운대 역시 동부산에 위치한다. 그리고 나는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기 전까지 부산의 다른 지역은 거의 가보지 못한 채로, 사하구에서 나고 자랐다. 간혹 영화를 보러 자갈치 시장이 위치한 남포동 BIFF광장에 가는 것이 학창 시절의 나에겐 그나마 몇 안 되는 나들이었다.
그렇게 내가 살았던 부산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충청권으로 와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대학 입학을 하고 나서 정말 깜짝 놀랐다. 동부산에서 대학생활을 할 기회를 걷어차고 내 발로 찾아간 대학이 이런 깡촌에 있을 줄이야. 기차를 타고 천안에 내린 후 버스를 타고 50분은 가야 나오는 곳이었는데 버스 타고 가는 길에 논과 밭, 그리고 경운기도 보았다. 정말이지 그걸 처음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대학생활을 헤쳐나갔다. 자연경관이 매우 수려하고 날씨가 지랄 맞은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도 마쳤다. 나는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를 경험했지만 23살까지도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은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지금 생각해 보면 번아웃이었다.) 저 멀리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로 떠났다.
진정한 호주를 느끼려면 시골로 가야 했겠지만, 나는 호주의 제2의 도시 멜버른을 택했다. 그리고 CBD(Central Business District)에서 사는 걸 고수했다. 12년 전에도 아파트의 방 하나를 친구와 나눠 쓰는데도 주당 15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비용을 지불하며 살았지만, 난 멜버른의 CBD에서 지내는 게 퍽 마음에 들었다. 낮에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고 어지간한 문화생활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서 다 해결할 수 있었으며, 밤에는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 한적하고 조용했다. 나는 24년 인생동안 먼 이국 땅에서 살아 보고서야 제대로 된 대도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낸 10개월을 통해, 내가 생각보다 대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에 귀국하면서, 나는 크게 2가지 이유로 무조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로 다짐했다. 우선 부모님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남부지방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조건에 부합하는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고, 테헤란로에 본사가 있었던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해서 쭈욱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는 본사가 잠실로 이전했다.)
2014년 2월 입사를 했고, 3월에 성수동에 자취방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자취방에 전입신고를 하게 됨으로써, 나는 법적으로 서울 시민이 되었고 서울시민으로써의 첫 생활을 성수동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성수동은 오래된 주택 한두 곳이 카페로 변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그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다.(이곳은 추후 그 유명한 서울숲 카페거리가 되었다) 나는 서울숲 맞은편 2호선 뚝섬역 쪽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사무실이 위치한 잠실까지 출근하기에 위치가 너무 좋았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회사 선배덕에 취미를 즐기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내 다리가 엔진이 되어 속도를 즐길 수 있는 "로드 자전거"였다. 나는 서울숲을 가로질러 한강에 손쉽게 진입할 수 있었으며 퇴근후에 그리고 주말에 한강을 타고 돌아다니며 서울 곳곳을 방문해 볼 수 있었다. 한강을 순환하면서 곳곳을 다녔던 덕분에 내 머리에는 2호선 라인에 해당되는 서울 지도가 어느정도 그려질 수 있었다. 그리고 뚝섬역 도보 3분 거리에 살았기에 지하철 2,3정거장 거리에 CGV가 두 군데나 있었다. 강변 CGV와 왕십리 CGV였는데 가끔 영화관에서 심야영화를 관람한 후에 새벽에 집까지 걸어가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았다. 또한 먹고 싶은게 있으면 도보를 통해 어지간한건 다 해결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서울생활을 시작한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난 서울에 빠르게 스며들었고, 어느새 서울 예찬론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직장생활이 딱 만 1년이 되었을 때, 난 갑작스럽게 거제도 파견을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