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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Sep 13. 2023

Nuun

멘토이자 친구

 “송, 한국에서 내 친구가 델리에 가는데, 너희 집에서 며칠만 재워줄 수 있을까?”


처음 바퀴벌레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방 두 개에 화장실 두 개, 운동장 같은 거실을 가졌다는 장점이 있는 우리 집이었다. 월 30만 원가량이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집 규모를 조금이라도 내리면 치안이 불안한 동네에 위치해 있거나 관리가 되지 않은 집들뿐이었다. 나는 잠깐씩 장기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숙을 운영하거나 셰어하우스로 내어 주기도 하며 비싼 렌트비를 메꿔 나갔다. 친한 지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들어줄 상황에 친히 전화해 부탁까지 하시니 당연히 오케이다.




오랜만의 한국인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방을 정돈하고 장을 봤다. 조금 후 우리 집으로 들어오시는데 행색이 한국말 잘하는 남미의 향기(?)가 난다. 앞의 머리는 커트머리인데 뒤에 꽁지머리가 허리춤까지 족히 내려오는 길이이다. 또 커트머리의 부분 부분은 파랑과 보라색으로 물이 들어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또 하나 있다. 이 분 뒤에 똑같은 머리스타일의 꼬마애가 따라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 제 딸이에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짧은 인사를 마치고 긴 비행으로 피곤할 언니와 따님을 위해 된장국을 끓이고 미리 해 두었던 밥을 퍼서 덜어놓고는 누룽지도 한 사발 끓여 냈다. 


“와, 델리에서 첫 끼가 누룽지? 감동인데.”


두 분 다 요리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리액션을 아끼지 않으시며 맛있게도 드신다.  


“눈이라고 불러. 나이는 묻지 말고.”

"저는 수카!"


어린아이에 대한 편견이 눈 언니를 만나고 무너진 것 같다. 딸 수카는 사교성이 좋고 웃음이 많음과 동시에 7살짜리의 매너라고 볼 수 없는 예의 바름이 있었다. 언니는 수카의 교육 장소를 유치원이 아닌 세계 곳곳으로 정하여 여러 나라와 사람들을 경험시키고 함께 즐겁게 노는 중이라고 했다. 실제로 수카는 3개 국어를 할 줄 알았다. 언니는 간호 장교 출신이다. 말투나 행동에 군인과 같은 절도가 있고 딸을 교육함에 있어서도 나름의 철학이 보였다. 친구처럼 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가도 훈육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군더더기 없는 말과 행동으로 바로 잡아 주곤 했다. 또 이들은 대화가 많은 모녀였다. 여행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여러 가지 돌발 상황과 난관들에 대해 공유하는 추억이 있고 서로 의지하며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싸우기도 한다고 했다.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은 언니의 태도가 전혀 7살짜리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 같지 않고 친구나 직장 동료를 대하는 듯했다. 수카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알고 사람과 동물을 아끼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나중에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언니처럼 주체적으로 멋지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는 3일 뒤 다람살라로 떠난다. 이미 인도는 여러 번 왔었고 다람살라에 친구들이 많아서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수카가 맥그로드 간지의 TCV 학교에 입학하여 좀 오래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그곳에 지인을 통하여 집도 1년 계약을 마쳤단다. 우리는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 하면 믿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다. 자유롭지만 나름의 철학을 가진 언니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참 잘 맞았고 곧 언니를 따라 맥그로드에 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맥그로드에는 벌써 내가 좋아하는 JJI CAFE 식구들과 티셰, 눈언니까지 가야 할 이유가 차고 넘쳐 난다. 

     

3일 뒤 예상대로 나는 언니의 딸 수카의 손을 잡고 다람살라행 버스에 타 있다. 


언니와 함께 할 여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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