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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삭 Mar 04. 2024

우리는 존재보다
소유에 관심이 많다

「치와와」 (チワワちゃん)

INTRO


Music


우리는 존재보다
소유에 관심이 많다

  영화 「루시」 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배부름에 만족하지 못한 채 타인보다 더욱 큰 포만감을 느끼길 원합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 속에 가득 채울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평생 쫓아가지만 잡을 수 없는 막대한 부, 수술로 흉내 낼 수 없는 예쁘고 멋진 외모, 마음 깊은 곳부터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누군가.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죽을 만큼 고독해집니다. 또 사는 것에 건성이 됩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느끼고 가질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사는 것이 참 비참하고 모든 게 가증스럽기만 합니다.


  나한텐 모든 게 짓눌릴 만큼 무겁지만, 남이 보기엔 한없이 가볍습니다.


  잔혹한 뉴스가 보도되는 화면을 보고 있자면 문득 잊고 사는 삶의 가벼움에 탄식하고 그 괴리를 발판 삼아 우리는 나의 소유물들을 다시 점검합니다.


  악랄한 누군가에게 빼앗기진 않을지, 덧없는 죽음에 실어 모든 게 무無로 돌아가지는 않을지.


  참 무의미해 보이는 삶입니다.

  

  




2023년 대한민국에 출판한 단편집

「치와와」 (チワワちゃん)

・ 오카자키 쿄코 おかざき きょうこ 작품


  「헬터 스켈터」, 「리버스 엣지」 를 써낸 오카자키 쿄코의 단편집 「치와와」 입니다.


  비극적인 사건과 젊음의 광란. 무일푼으로 트럭에 짐처럼 실렸던 여름과 체육관의 땀냄새가 밴 미인대회.


  그리고 주변인 "치와와"의 끔찍한 죽음.


  여러 단편이 챕터처럼 엮인 본 작품에는 "치와와"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들에서 작가 특유의 문학적인 묘사들과 독특한 연출을 느껴볼 수 있는데요.


  이전 「리버스 엣지」 를 다룬 글에서 말씀드렸듯 오카자키 쿄코의 작품들은 비극과 불행을 부수고 분해해서 결국 그것들도 처음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독자에게 납득시키곤 합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건지, 본인의 삶에 매달린 무게가 얼마인지 망각한 채 자신만의 쾌락이나 생각을 따라 행동하죠.


  한 편 무의미하고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그들의 시간은 내 방황과 약간은 닮아있는 듯도 하기에, 흥미를 유발하는 것도 같습니다.


*작품 특성상 읽는 방향이 오른쪽에서 왼쪽입니다

  




I

페르소나와 얼굴가죽

극장형 도시 속 연기자



  단편  「치와와」 는 간호대 학생이었던 지와키 요시코가 살해당했음을 밝히며 시작합니다. 무너지는 꽃다운 청년의 부모와 애도의 몸짓들.


  마침 뉴스 보도를 보고 있던 미키는 사건의 피해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고 심지어 함께 어울리던 사이였는데요.



  본명 대신 치와와라는 이름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불렸던 그녀. 과거 나가이 요시유키를 중심으로 모인 영상제작 팀 멤버들은 치와와의 죽음을 접한 뒤 추억과 씁쓸함을 안고 모여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어릴 적 키가 너무 작았던 탓에 우유를 매일같이 들이켰지만 키 대신 가슴만 커졌다는 그녀, 치와와.


  진행자의 역할을 맡는 미키는 각 인물들이 기억하는, 종적을 감추기 전 떠돌이 생활을 했던 치와와의 모습들을 하나씩 조합해 나갑니다.


  재밌는 점은 치와와가 누군가에겐 알뜰한 살림꾼, 또 누군가에겐 성욕을 풀 수단으로, 혹은 절박한 사람으로 기억되었다는 것이죠.


  "큰 사람", "유명한 사람" 등으로 자신의 꿈을 소개하며 언제나 명랑함을 잃지 않았던 치와와는 얼핏 보면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온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간호대 학생에서 모델, AV 배우가 되었다가 비닐봉지에 아무렇게 담긴 시체가 되기까지 그녀는 어떤 삶을 지탱해 온 걸까요. 이제 물어볼 수도 없는 그녀는 어떤 순간에 연기를 했고 또 어떨 때 본모습으로 존재했을까요.


  가면, 페르소나가 많았다는 건 삶 속에서 대처해야 할 혼란이 다양했다는 뜻이겠죠.

청춘의 죽음을 평론하다

  사람의 가면은 나로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는 순간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해결을 바랄 뿐 해소하지 못했던 치와와의 의문들이 많죠.


  미키는 생각합니다.


대체 치와와가 원하는 게 뭐였을까?

  

  무엇을 위해 가면을 쓰고 발버둥을 치며 살았을까. 무대를 흔들기에 딱히 의미를 가지지 않는 듯 보이는 청년의 죽음.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작품은 하나의 인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멤버들도 ’ 우리가 치와와를 아주 잘 알지는 못했다 ‘며 내심 시인한 것처럼, 그럼에도 그녀를 애도하고 울고 웃으며 추억하는 것처럼.


  어쩌면 작가는 “현대인의 페르소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틀고 우리의 본모습 - 페르소나의 관계가 역전된 게 아니냐고 묻는 듯합니다.


  우리의 진짜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보이는 여러 모습이 아닌 각자의 간절한 진심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방황으로부터 벗어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복을 쟁취하는 것.


  치와와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고 문전박대와 품을 번갈아 경험하며 도시에서 자신만의 진심, 혼란을 다듬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단 하나의 페르소나를 연기한 청년이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똑같은 가면을 쓰고 사는데 매 순간 바뀌는 가면 속 표정에나 신경 쓰는 건 지루하고, 타인의 가면이 얼마나 단단히 붙어있는지에는 집중하지 않으니.





II

필사적인 삶

의미를 찾다



  수록된 단편 중 「올해의 소녀」라는 작품에 인상적인 문장이 있습니다.

그렇지? 분명 다들 지루한 거야.
무언가에 푹 빠지고 싶어서 필사적이잖아.
다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잖아.
그렇지? 그렇지 않아?


  이는 하나조노 여고에서 연례행사로 행해지는 "올해의 소녀"라는 일종의 미인대회를 빗댄 문장인데요. 


  우연찮게 교내 최고의 인기녀가 되며 올해의 소녀 유력 후보가 되었지만 그런 거엔 딱히 관심 없는, 야마다라는 소녀가 등장하며 사람들의 지루함을 대변함과 동시에 


  고교생을 상대로 행해지는 미인대회를 소재로 차용함으로써 인과가 명확하지 않은 맹목적인 사랑을, 결국 공허함을 메우고자 휘발되는 것들을 표현합니다.


  사랑과 평가는 비슷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있던 것을 기반으로 쏟아내기 때문이죠.


  나 자신, 내가 하는 일, 내 주변인을 사랑해야만 삶의 공허를 달랠 수 있는 우리는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공백을 만날 때 가장 활발하게 평가를 하고 사랑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단순한 치기 어림이 아닌 탄생과 죽음, 청춘의 전반에 걸친 이 무의미함과 허무함을 메우지 못해 허덕이기도 합니다.


이럴 거면 왜 살아야 하지? 죽으면 다 끝인데.
내가 하는 고민도 결국 아무런 의미 없는 거 아닌가?
아무 의미 없는 건데 나는 왜 두렵고 고통받지?


시시포스의 형벌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일화는 이런 인간의 부조리한 삶을 잘 대변하는 이야기인데요. 


  신의 형벌로 커다란 바위를 뾰족한 산의 정상으로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 그는 정상까지 바위를 힘겹게 밀어도 곧 반대쪽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밀어야 하는, 반복적이고 영원하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벌을 받습니다.


  분명 나는 힘겨운 바위를 밀듯 고통에 허덕이고 살지만,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하는(절대적인 죽음) 지금의 삶. 이 허무함에 벗어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은 슬픔에 빠지거나 탈선을 하는데요.


  유일한 방법은 그 일련의 시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시지프스는 필사적으로 바위를 사랑했어야 합니다. 삶의 의미는 인과가 아닌 "죽지 않은" 존재 자체에 있고, 죽을 때 빈손으로 가는 우리는 소유로 주어지는 보상에 기댈 수 없으니까요.



  단편 「치와와」는 엔딩에 이르러 치와와와 교류했던 멤버들이 그녀가 시체로 발견된 바다로 온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래 영상 제작을 좋아했던 나가이는 멤버 한 명 한 명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는데요.


  각자가 담담하게 그녀와의 관계를 진술하며 한 컷, 한 컷 넘어가는 모습. 그들의 모습은 건조하지만 필사적입니다. 어째서, 왜 보다는 공백을 달래기 위해 이름을 지어주는 셈입니다.


  치와와에 대한 애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녀와의 관계에서 얻은 소유가 무의미해졌기에 치와와는 술과 카메라와 사랑과 약으로, 염세와 방황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뭐든지 사랑했었던 거라고 정리하죠. 


  멤버들의 추억과 회상과 증오와 입맞춤과 그녀의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 


  마지막에 미키는 바다에 꽃과 와인을 던지며 나가이에게 묻습니다. "차라리 이런 걸 비디오로 찍는 건?"


  나가이의 대답은 이야기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으며 매듭을 끝마칩니다. 


그건 좀 과해.




  앞서 말씀드렸듯 이 단편집에는 잠시 지나간 여름 속 춘몽을 그린 「여름의 기억」이나 도시 속 두 소녀의 "굶주림"을 노래한 뮤지컬 형태의 「초콜릿 마블」등 작가의 연출 감각과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문장이 눈에 띄는 훌륭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얼핏 청춘에 대한 냉소가 자주 엿보이는 그녀의 작품들은 마치 그림자놀이로 방황을 표현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남들이 방황을 표현하려 손가락을 비틀고 꺾을 때 아예 전등을 꺼버리는 감각입니다. 눈앞이 새카매져서 잠시 들리고 만져지는 것에 민감해지는,


  다른 말로 무력감이 극대화되는 느낌. 그럼에도 방황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갖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고, 또 누구에게나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카자키 쿄코의 단편집 「치와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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