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2」, ★★★☆
의인화된 감정들의 소나타, 그들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사는 라일리의 성장을 다뤘던 「인사이드 아웃」의 2편이 최근 개봉했습니다. 전작에서 상당한 작품성을 뽐냈던 명목을 이어 '2편의 징크스'를 극복한 작품이기도 한데요.
작품은 1편에서 몇 년이 지난 후, 라일리가 청소년이 된 시점을 배경으로 사춘기와 함께 새로 등장한 감정들과의 좌충우돌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도 '요즘은 애들 영화가 더 재밌다'는 평과 함께 즐거운 관람을 했습니다만 감독이 바뀐 탓인지 작품의 성격이 조금 더 코미디스럽게 변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럼에도 인간의 감정을 고찰해 표현해 낸 상상력, 시리즈 특유의 귀여움을 공감대로 바꾸어 새로운 요소인 인간의 자아와 불안감을 묘사해 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한 나약함, 열등감 등을 보여줍니다.
이는 변칙적이지 않지만 입체적이고, 평면적이지 않지만 일관적인 인간의 자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이어지죠.
라일리는 어느덧 13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화목한 집안과 여전히 재미있는 아이스하키. 심지어 둘도 없는 친구들인 그레이스와 브리도 라일리의 곁에 있어주었는데요.
하키를 열심히 해오던 라일리는 학교 경기에서 친구인 그레이스, 브리와 함께 환상의 궁합으로 활약해 내 고교 하키 팀의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이에 세 소녀는 우상들이 가득한 고교 하키 캠프에 초대받게 되는데요.
잘만 보이면 고등학교에서도 아이스하키를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라일리는 친구들과 곧장 캠프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캠프로 향하던 날 아침.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감정들이 깨어나게 되죠.
반항스러워지고, 즐기던 것들이 사뭇 따분해지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쓸데없는 걱정에 몸부림치는.
새로운 감정들의 이름은 불안, 부럽, 따분, 당황. 네 감정들은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대변하듯 기존 감정들(기쁨, 슬픔, 짜증, 소심, 분노)이 어른이 되어가는 라일리를 이끌어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결국 기존의 다섯 감정들은 라일리의 기존 자아와 함께 컨트롤타워에서 멀리 쫓겨나게 되는데요. 동시에 2편에서 새로 등장한 라일리의 '자아'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죠.
어떤 상황에서도 라일리가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자아. 다섯 감정은 불안이가 세우는 대비 계획을 막기 위해, 오래도록 촘촘해진 라일리의 자아를 되찾아 컨트롤 타워로 돌아가려 합니다.
한 편 자고 일어나니 별게 거슬리고 부끄럽고 지겨워진 라일리. 친구들과 고등학교조차 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캠프로 향하는 라일리의 머릿속 조타기는 불안이가 휘어잡게 됩니다.
불안이는 이번 작품의 골칫덩이입니다.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여러 의미로 대비를 준비하는 감정. 그렇지만 라일리의 조심성은 이미 소심이가 담당했었는데요. 그렇다면 불안이는 무엇을 걱정하는 걸까요?
소심이는 보이는 걸 걱정하지만 난 보이지 않는 걸 걱정해.
먼 미래의 일 같은 거 말이야.
간혹 잠에 들려고 침대에 누우면, 5년 혹은 10년 뒤의 내 삶을 생각하다 잠을 달아나게 한 적 있으신가요? 내일 학교나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다가, 혹은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민망한 실수에 매달려 얼굴을 찌푸리고 속앓이를 해본 적 있나요?
물론 불안이는 영화 내내 발암캐릭터로 활약을 떨쳤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불안이가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이는 프로세스는 굉장히 익숙하거든요.
무엇이든 간에 애매한 것은 불안의 여지를 남깁니다. 그렇기에 불안한 사람에게 모든 것은 확실해야만 합니다. 낮에 나한테 쌀쌀했던 직장 동료의 속마음, 5년 뒤의 내 지위와 재산 등 당장 알 수 없거나 죽어도 알 수 없는 문제들을 우리는 확실하게 하기 위해 몸부림치곤 합니다.
불안이의 계획 역시 이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끝없는 몸부림입니다.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떠올리며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그 얇디얇은 계획들이 무너지는 것에 또 불안해하는.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프로세스가 참 짜증 나면서도 기시감이 들었는데요.
작 중 라일리는 실제로 불안의 영향으로 인해 그간 라일리가 지켜왔던 자아, 스스로가 좋은 사람임을 믿고 있는 확신을 저버리고 여러 문제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오로지 수년 뒤 고교생 하키 선수로서의 삶만을 생각하며 캠프에서 친구들을 등지고 고등학생 선배에게 붙거나 오로지 득점을 위한 독단 행동을 하는 등 관객으로서 절대 문제가 해결될 리 없는 행동을 일삼게 되죠.
불안이 점점 잠식해 버린 라일리의 자아는 결국 '난 너무 부족해'라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내며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건가 봐. 기쁨을 점점 느끼지 않게 되는 거야.
- 불안이를 막을 수 없는 기쁨이의 체념
소용돌이 같은 불안과 대비되는 단단한 자아는 우리를 지탱합니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자아란 스스로에 대한 신념을 의미하는데요.
자신이 선한 사람임을 믿고 있던 라일리가 불안에 의해 자아가 약해지자 갑작스러운 상황들에 휘둘려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처럼요.
교훈을 얻었던 것은 기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짜 맞춘 듯 컨트롤타워로 돌아가려는 계획들이 번번이 실패하자 좌절하며 '어른이 되는 건 이런 건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기쁨 대신 책임져야 할 것들만이 남은, 불안이 가득한 어른이라는 존재.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기쁨이는 엔딩에 이르러 라일리를 기절 직전까지 몰고 가며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던 불안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라일리를 위해' 자신이 예전에 버려두었던 라일리의 나쁜 기억들을 보면서요.
우리가 라일리가 누군지 정할 수는 없어.
인간의 자아는 나이를 먹으며 점점 견고해집니다. 건강한 방향이든 아니든, 이는 살아가며 생겨난 수많은 자아의 줄기들이 뭉쳐져 벌어지는 일인데요.
라일리의 성장 역시 궤를 같이합니다. 스스로의 부족함, 믿음, 분노, 슬픔 등 수많은 자아가 뭉쳐져 상황에 휘둘리는 감정이 아닌 상황을 감당해 내는 자아를 탄생시킵니다. 앞서 말했듯 변칙적이지 않지만 입체적이고, 평면적이지 않지만 일관적인 자아의 중요함이죠.
어떤 순간에도 그저 받아들이며 버텨낼 뿐, 이렇게 한 차례 성장한 라일리는 끝내 불안이 일으켰던 공황을 이겨냅니다. 친구들과 관계도 회복한 채 한층 더 어른스러워진 존재로 성장하며.
「인사이드 아웃 2」는 앞서 말했듯 작품의 연출 방향성이 조금 바뀐 작품입니다. 전작의 '빙봉'처럼 눈물샘을 자극하는 캐릭터는 없지만 역시 이번에도 독특한 상상력과 연출로 웃음을 자아내는데요.
PS2 시절 그래픽의 게임 캐릭터라던지, 시크한 프랑스 억양을 풍기는 따분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게 해 잠을 설치게 만드는 '루머 제작소' 등 서사적으로는 다소 작위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다채로운 연출만큼은 픽사의 실력을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대게 삶을 유연하게 사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날카로운 칼보다는 부드러운 모래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요. 한 줌의 모래도 알갱이 하나하나를 보면 단단한 바위와도 같습니다. 그들은 부러지기보다는 그저 흐르다 무겁게 쌓여 버텨내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인사이드 아웃 2」는 몸만 자란 몇몇 사람들에게 말하는 듯합니다. 부러지는 삶보다 쌓여가는 삶을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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