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보고 지나쳐 덮으셨나요
사각예술은 각종 영화, 만화, 음악 등을 리뷰하고 해석하며 덧붙이는 매거진입니다. 업로드 주기는 비정기적이며 현재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운영 중에 있습니다 :)
모든 작품은 스포일러를 동반할 수 있으며 들러주신 노고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작가의 말’, ‘머리말’, ‘~을 마치며’ 등 매체를 막론하고 많은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에 몇 마디를 첨언하곤 합니다. 자식새끼 결혼시킬 때 뭐라도 더 쥐여서 보내고 싶은 심정일까요.
필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독자나 관객들은 보통 귀찮아서 넘기거나, 본편의 여운에 젖어 지나치고는 합니다만 간혹 호기심에 펼쳐보면 그들의 독특한 문장이나 생각, 예상치 못한 위로, 작품의 이해를 돕는 해설을 얻어 가기도 합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선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가장 추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
세상은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발달과 발달의 끝은 퇴화와 소거다
모든 도덕주의자들이 견해를 같이하듯 만성적인 자책감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혹시 무슨 나쁜 행위를 저질렀다면, 잘못을 뉘우치며 그것을 시정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도록 스스로 다짐해야 옳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잘못에 두고두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 오물 속에서 뒹구는 것이 몸을 깨끗이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다.
엄마가 되어선 안 되는 여자와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딸
이 영화는 사실 '수신음'이 아닐까.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어긋났던 건 결국 외롭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발신만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누구 한 명이 전화 걸기를 멈추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곧 벨이 울리고 우리는 통화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평탄한 전쟁터에서 분투하는 비극들을 보라
그런 이런 곳에서 만난다. 사고처럼 만난다. 우발적인 사고처럼, 길을 잃어버린 아이들. 이미 전부 다 가졌고, 그 덕에 무언가를 얻기는 포기해야 하는 아이들.
무력한 왕자와 공주. 깊이가 사라진 평평한 무대 배경 같은 전쟁터. 그들은 특정한 드라마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짧은 영원을 배회할 뿐이다.
지옥이리라 싶던 소년은 타이머가 울리자
다 익은 채 오븐 밖으로 나온다
또 한 발짝 정도 세상이 달라진 이제는, 소설에 나타나는 여러 혐오와 분노 유발 요소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새로운 젊은 세대의 반발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떤 소설은 생물과 같아, 독자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변화합니다. 어떤 소설은 화석과 같아, 고생대의 잔혹한 기후와 척박한 환경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사기꾼이자 구원자, 어린아이이자 어머니,
추격이자 사랑.
숙희가 할 만한 대사를 짓다가 내 입으로 '아가씨'하고 처음 불러봤을 때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그것으로 제목을 삼자고 외쳤다. 그 순간 나는 이 이야기가 내 것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 순간 영국 소설 「핑거스미스」는 한국 영화 「아가씨」가 되었다. 현대에 와서 아저씨들이 앞장서 오염시킨 그 명사에 본래의 아름다움을 돌려주리라. 그 한 가지 생각에만 골똘했다.
아이의 감정은 아몬드 같다.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작고 연약하게 퍽퍽한.
매일매일 아이들이 태어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누군가는 군림하고 명령하면서도 속이 비틀린 사람이 된다.
드물지만 주어진 조건을 딛고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좀 식상한 결론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