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처음 만난 날 아빠의 자격은 0%였어.
너를 처음 만난 날 모두가 기쁨의 순간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 아빠는 사실 마냥 기쁘지 않았어.
사실 말이야. 아빠가 처음 느낀 감정은 소외감이었어.
예정일보다 하루 정도 빨리 엄마가 진통을 시작했고 일산 광고 촬영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엄마에게 카톡이 왔어 “나 애 낳으려 병원 감” 예나 지금이나 엄마는 참 시크해. 그게 엄마 매력이야.
그 카톡을 보고 함께 일하고 있던 모든 분들에게 급하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아빠는 병원으로 달려갔지. 속도위반에 4개나 걸리면서 죽어라 갔는데도 일산에서 강남까지는 2시간이나 걸렸어.
그렇게 병원으로 달려가 급하게 엄마를 찾았고 엄마 옆에 앉아서 널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진통을 시작하고 넌 태어날 때부터 효자답게 2~3시간 진통하고 나와버렸어.
지금 생각해도 기특해, 우리 아들
엄마가 간호사분들이랑 분만실로 들어가고 한 5분쯤 후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아빠는 사실 정신이 없어서 그 울음소리가 지오 울음소리인 줄도 잘 몰랐어. 사길 뭔가 감격스럽고 그런 기분보다는 뭔가 되게 정신없었어. 어쨌든 그렇게 옆에 계신 분들의 안내를 따라 널 만나러 분만실에 들어갔고 간호사분인지 의사분인지 (사실 너무 정신없어서 지금도 잘 기억 안 나) 아빠에게 가위를 쥐여주며 탯줄을 자르라고 하더라고 (그 당시에는 그게 유행이었거든. 아이 아빠가 탯줄을 자르는 게.)
그렇게 너랑 엄마가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데 아빠는 그 순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너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엄마인지 알 수 없었어. 그리고 아빠는 뭔지 모를 서운한 마음과 소외된 감정을 느꼈어. 아빠만 혼자인 것 같았거든.
그래서 뭔가 얄미운 감정을 느끼며 탯줄을 싹둑 잘라버렸지.
그리고 그다음 날 엄마와 지오가 있는 산후조리원으로 퇴근했는데 마침 그때가 지오가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었고 엄마도 지오도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잠들었더라고 그렇게 네 엄마 옆에 누워서 색색거리며 잠들어있는 널 보며 아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엄마는 10달 동안 널 품고 그 모든 순간을 너와 함께 하며 너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걸 주면서 이미 엄마의 모든 자격을 갖췄구나. 근데 아빠는 그 10달 동안 널 위해 뭘 했을까? 엄마 심부름 아주 조금 한 거 말고는 딱히 아빠가 한일이 하나도 없었어. 그럼 지금 이 순간 너에게 나는 무슨 존재일까. 옆방에 있는 아저씨와 아빠가 너에게 뭐가 다를까. 사실 아무것도 다르지 않겠다. 그렇다면 난 이제부터 아빠의 자격을 갖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할테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네 엄마를 따라잡겠다! 생각했어.
지오도 언젠가 아빠가 되는 그날이 올거야.
아빠라는건 엄마랑 달라. 자식이 태어난 순간 아빠가 되는 게 아니야.
자식이 태어나면 그때부터 아빠가 되기 위해
더 정확하게는 아빠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의 방식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해.
아빠가 실천으로 알려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