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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훈 Jul 04. 2024

몬드의 하늘 산책길

강아지가 하늘로 산책을 떠났다

  

 눈을 뜬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발뒤꿈치를 앞으로 밀면서 발끝을 몸 쪽으로 당김과 동시에 양팔을 머리 위로 쭉 뻗는다. 밤새 굳었던 몸이 펴지는 느낌이 좋다. 시원하다. 왼쪽 무릎을 세우고 오른쪽 다리로 걸어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몸통을 반대로 꼰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좀 기다리다가 브리지 자세를 하고 30을 센다. 이 동작은 일본의 요통 치료 전문가의 조언에 따른 요통 방지용 침대 스트레칭이다.      

내 움직임에 예민한 끈을 연결해 놓은 것처럼 ‘아으’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는 몬드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거실로 가는 내 뒤에서 아장아장 몬드가 따라와 열어 놓은 거실창을 넘어 배변 패드로 직행한다. 그 사이에 냉장고를 열어 강아지의 습식 먹이를 꺼내 물에 담근다. 냄새를 맡고, 몇 바퀴를 돌다가 뒷다리를 굽히고 왼 다리를 들어 오줌을 눈다. 다시 냄새를 확인한 후 주방을 향해 토끼처럼 나풀나풀 달려간다. 몸은 앞으로 가고 머리는 뒤로 돌린 채 나를 본다. 그녀의 꼬리가 하늘로 올라간다. ‘저 잘했죠? 어서 와서 간식 주세요.’ 참으로 생명을 가진 것들은 아름답다.


아내와 아침을 먹는데 제 밥통을 앞발로 긁어 신호를 보낸다. 잠시 우리를 쳐다본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자 또 긁는다. ‘배가 고파요 빨리 밥 줘요’ 물통에 새 물을 채운다. 해동된 사료 봉투를 가위로 자르는 동안 몬드의 그 큰 눈에 내 일거수일투족이 담긴다. 늘 놓던 자리에 제 밥통을 놓을 때까지 거실을 가로지르며 하염없이 빙빙 돈다. 맛있는 밥을 향한 세리머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아홉 바퀴. “어지러워 그만 돌고 밥 먹어라.” 이 하얀 솜뭉치 같은 생명의 활기가 볼 때마다 경이롭다. 하얀 쇠의 표면이 반짝이며 빛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먹었다. 건식 사료와 별도로 먹이는 이 음식을 이 아이는 이렇게 좋아한다. 이제 물을 마신다. 거실 턱을 넘어 베란다에 있는 배변 페드에 오른다. 몇 바퀴를 돌며 준비를 한 후 똥을 눈다. 이것으로 아침 식사 의식이 모두 끝났다.      


며칠째 밥을 먹지 않는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습식 사료뿐만 아니라, 달걀, 쇠고기, 닭고기, 북어 등 최애의 간식거리들도 어쩌다 조금 입에 넣을 뿐이다. 목욕을 시키는데 골반 뼈가 손에 잡힌다. 아들 방과 거실, 안방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누워 잘 뿐이다. 이걸 어쩌나. 말 못 하는 짐승이 얼마나 불편하기에 본능적인 식욕을 잃어버렸을까?

쇠 밥그릇이 발톱에 긁히는 소리를 들은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여전히 밥을 먹지 않는다, 어쩌다 아내와 아들이 이런저런 먹이를 구해서 조금씩 먹일 뿐이다. 산책길에서는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냄새 맡고, 마킹하고, 동네 강아지라도 만나면 몰티즈 특유의 성격으로 앙칼지게 덤비고 짖어대던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조금 걷다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본다. 먹지를 않았으니, 힘이 있을 리 없지.  ‘안아줘요’

    

아들이 구해온 노견 보양용 국물이 있는 사료를 쇠그릇에 붓고, 닭고기를 아주 잘게 부순 다음 함께 섞는다. 부디 이거라도 먹길 바라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우리의 인생을 닮았다. 우리 삶의 궤적이 많은 바람과 또 많은 실망의 연속이지 않았던가. 냄새 한번 슬쩍 맡았을 뿐 입에도 대지 않는다. 속상하다.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 아내가 아이를 잡고 나는 작은 숟가락에 사료를 담았다. 그리고 입을 강제로 벌리고 입 안에 밥을 넣었다,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하던 녀석은 혀를 움직여 모두 뱉어낸다. 다시 시도한다. 밥을 입안 깊이 넣는 동시에 아이의 입을 오므리고 손가락 링을 만들어 잡고 있자 비로소 꿈틀대던 아이의 목에서 ‘꼴딱’ 소리가 난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빗소리처럼 들린다. 그래. 그렇게 삼키는 거야. 그렇게 먹어야 하는 거야. 식탁 아래와 의자 위에 사료가 흩어져 어지럽다. 기름기가 가득한 음식이 떨어진 자리가 끈적이지만, 청소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끝내 밥을 먹였다는 것에 안도한다. 수유 후 아기를 트림시키듯이 몸을 길게 들고 배를 쓰다듬어 줬다. 아침 밤을 먹고 토한 어느 날이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힘이 들었던지 몬드는 꼬리를 내리고 아들 방에 있는 제집으로 간다. 턱을 괴고 특유의 동그랗게 만 자세로 앉는다. 한동안 관찰한다. 토하지 않음에 안도한다.     


아침에 내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강아지가 누워있다. 몬드를 깨워 거실로 향한다. 어제 먹인 밥을 거실에 토해 놓은 것을 보자 손이 떨린다. 소변을 뉘고 아내가 갓 삶은 닭가슴살을 줘 봤지만 먹지를 않는다. 강제로 먹인다. ‘먹어라. 그래야 나와 더 살 수 있어. 제발 삼키고 토하지 말아라’ 이제 곧 기력을 되찾을 거라고 희망한다.     


그렇게 음식을 거부하여 강제로 먹이고 토하길 3주 만에 몬드는 하늘로 산책을 떠났다. 수의사가 제안하여 수액을 처음 맞은 날은 하루 종일 병원에 있다가 만난 내가 반가운지 동물병원에서 나오자 앞서 걸으며 두 발을 모아 깡충깡충 뛰다가, 내가 오나 뒤돌아 보고, 그러다 힘이 드는지 안아달라 고개를 돌린다. 두 번째 수액을 맞은 날은 아내가 안고 집에 왔다. 비가 내린 탓도 있지만 걸어서 집에 올 정도가 못되었단다. 그날 나는 숲 해설사 동기들과 노을공원의 모감주나무를 보며 감탄하고, 치맥을 먹으며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밤에 몬드의 발작이 시작되었다.      

아들의 심상치 않은 전화를 받으며 집에 도착했을 때는 눈도 뜨지 못하는 몬드에게 아내와 아들의 눈이 붙잡혀 있었다, 나는 몬드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빗을 들어 털을 빗기 시작하였다. 빗고 또 빗었다. 가는 길에 누군가를 만나면 이 작은 아이를 이뻐해 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털을 빗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오전에 아프다고 가냘프게 ‘깽깽’ 짖다가, 고요히 잠을 자듯 누워있다.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면서 앞발을 앞으로 쭉 뻗더니 온몸이 잠잠해졌다. 숨이 멈췄다. 어머니의 임종이 겹쳐 보였다. 눈을 뜨고 있는  몬드의 얼굴을 보며 ‘아직 살아 있어’하며 아내가 울먹인다. 눈을 감겨주는 데 아이의 얼굴이 아주 편안해 보였다. 그러길 바라는 내 희망이었다.     


사람은 죽기 전에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자손에게 가하여 온갖 정을 다 떼고 간다는데 나의 강아지는 힘이 없어 자는 것 외에 14년을 함께한 그 질긴 정을 정리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내 삶의 한 굽이에

능소화

춘몽 같은 그녀의 온 삶이 겹쳐 있다.

이제함께할 수 없는 그 시간   

  

네가 꾼 나의 꿈같은 한때를

마음에서 놓아야 한다.     


아파트 마당에 핀 능소화,

붉은 꽃이 나처럼 위태롭다.    

 

먼 길 가는 동안

내가 좋아했다는 것을

그녀도 알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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