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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래랑 Sep 16. 2023

<피아노라는 아름다운 것>

중 EP. 6 <철없던 나의 첫 번째 도전>


  내가 연습 도중 목이 마른 탓에 나긋나긋 걸어가던 찰나, 물을 마시다 콩쿠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몰라 레슨 하는 선생님께 다가가 물었다. 나도 콩쿠르에 참여하느냐고, 원장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끄덕임을 보곤 얼마나 기뻤던지, 기뻤던 이유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추측하기론 마음이 설레었다던가, 아니면 대회를 나간다는 것 자체가 기뻤을지도. 하지만 지금으로선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고 해야 한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하니, 좀 막막하기도 싶다. 아무튼 그래서 그땐 하루종일 날뛰었다. 하지만 막상 피아노 앞에 앉으니 첫 발을 어떻게 디뎌야 할지 조금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잠시 있다 바람처럼 사라지고, 나는 뭘 어쩌랴?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피아노 앞에 손을 가져다 댔다.


글 공모전을 나가려면 글이 있어야 하듯, 피아노 콩쿠르를 나가려면 곡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콩쿠르 곡의 올바른 선택 기준이 뭔지 몰랐던 나는 선생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을 믿은 건 나의 큰 실수였다. 소나티네가 심사곡으론 매우 까다롭다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쿨라우 소나티네에 도전해 버렸다. 질리지 않아야 하고 되도록 많이 치지 않은 곡을 택하는 것이 좋다 생각한다. 내가 모두 입상을 한 곡들은 잘 알려지지 않지만 재미있게 치기 좋은 곡이었기에 연습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콩쿠르를 나갈 때에는 이런 특징의 곡을 추천한다. 하지만 독자들이 몸소 느끼며 배우는 것이 더 좋으니 콩쿠르를 많이 나가보기를.


쿨라우 소나티네는 어느 정도 쉽고 전에 레슨을 받았었던 곡이었기에 진도를 다시 나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스케일 연습이 제일 큰 난관이었지 별다른 건 별로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레슨을 받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기에 쉽게 질릴만했다. 그렇게 부분, 전체 연습만 간단히 한채 쓸데없는 기대를 마음에 담고 대회장을 나섰다.


내 생각과 달리 콩쿠르는 무대 리허설이 없었다. 공연장의 백스테이지 입구로 들어가면 공연 준비 담당 선생님께서 허벅지에 내 이름, 학원명이 적힌 종이를 핀으로 달아주셨다. 내 순서는 늦게 온 탓에 뒤로 밀려버린 지라 그 사이 연습도 안 하고 막 사귄 친구랑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내 차례는 2번째가 되었다. 의자가 옮겨질수록 심장이 벌렁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친구는 그런 내가 너무 우스웠는지 킥킥대며 나를 놀렸다. 그렇게 담당 선생님의 간결한 응원 메시지와 함께 공연을 나섰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우선 해야 할 것이 의자를 내가 맞는 대로 조정한 뒤 시작해야 할 것을 너무 긴장한 탓에 아무것도 준비 못한 채 시작했다. 그렇게 엉망진창 공연을 끝낸 뒤에 1시간을 넘게 기다리니 비로소 결과가 나왔다. 1, 2, 3등만 번호가 적혀있었는데, 내 기대와 달리 나의 번호는 없었다. 나는 순간 울고 싶어 졌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연습을 게을리해놓고선 처참한 대회 결과에 울어버린다면 내가 무엇이 되겠는가.


실은 아직 그 생각을 하면 설움이 받쳐오지만 그 기억으로 인해 지금은 콩쿠르라 하면 연습만 3~4시간 하는 내가 되었다. 절대 그런 상황이 되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연습하고, 침대에 누워 기댈 때마다 나를 항시 돌아본다. 그래서 콩쿠르 때문에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생각을 하면 손에 힘이 실리는 것 같다. 내 손이 저절로 그런 처참한 대회 결과는 용납할 수 없다고, 소리친다. 그래서 항상 머리와 손은 생각한다. 곡에 어떤 숨결을 불어넣어야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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