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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영 May 29. 2024

Tension

“선생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치료를 받으러 나오는 것도 너무 지쳤어요. 솔직히 저는 제가 숨을 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저에게 뭔가를 하라고 해요. 치료를 받아라, 또는 치료를 그만 받아라. 언제까지 그럴 거냐. 운동을 해봐라. 종교를 믿어봐라. 이런 말들이 저를 더욱 심연으로 빠트려요. 저는 존재 자체로는 무가치한 인간일까요? 왜 다들 제가 살아있다는, 이 순간에 살아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는 걸까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요즘은 선생님이 좀 미워요. 저는 여전히 암흑 속을 걷고 있어요.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스스로 세운 벽인 것 같아요. 제가 이 모든 치료 과정에서 회의감이 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말로 어떻게 설명하지. 어쨌든 좋은 의미의 벽은 아니에요. 근데 그 벽을 없애고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면 제가 낫는 건가 싶고, 애초에 낫는다는 개념도 잘 모르겠고, 이쯤 되니까 치료를 왜 받고 있나 싶고. 문제가 뭔지 정의를 잘 못하겠어요. 맨 처음에 정신과 갔을 때는 불면증, 불안, 이런 게 주요 증상이었잖아요. 근데 요즘에는 그런것보다는 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들, 그거는 어떻게 약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 제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에요. 내가 뭘 해도 나아지지 않는구나 싶었어요. 예를 들어 책을 내는 것도 되게 희망적인 거잖아요. 근데 전혀 우울증에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이것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아니구나.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하고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그 문제가 뭔지도 모르겠어서 진짜 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밉다고, 약을 줄여달라고 했다.


“그래도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증상이 이렇게 좀 좋아지려면 사실은, 그러니까 우리가 상담한 내용을 봤을 때 지금 굉장히 혼란스럽고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고 지금 뭘 원하는 건지, 그걸 원하는 게 선생님인지 나인지, 엄마인지 교수님인지 모르겠고, 교수님이 또 뭔가 기대하는 모습이 있는 것 같고 나는 그게 막상 싫고 그런 것 같아요. 기대가 내가 투영하는 건지 타인이 투영하는 건지 그걸 원하는 건지 원치 않는 건지 애매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사실 치료가 resolution되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그건 자기도 느낄 거예요. 그 상태에서 중단하면 사실 더 악화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우리 정신치료는 이제 막 시작했잖아요. 외래에서 정신치료로 넘어오면서 사실은 저도 이렇게 느낌의 차이가 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왜냐면 우리 외래 볼 때도 길게 얘기하고 매주 정기적으로 만났잖아요. 지난 시간의 텐션도 그렇고 그게 온전히 소화가 돼서 제가 딱 말로 전달할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의 변화한 치료 세팅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거든요. 아직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시기에 약을 중단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변화가 생겼을 때 정신 치료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최근에 약을 과량복용 할만큼 안 좋았는데 끊는다? 의학적으로 맞는 practice는 아니죠. 언젠가 감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거에는 동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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