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언어, 소진된 감정, 그리고 말하지 않는 용기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들 속에서 살아간다. SNS의 실시간 알림, 뉴스의 속보, 댓글의 폭풍, 커뮤니티의 규탄. 누군가가 어떤 말을 했다는 것이 곧바로 윤리적 논쟁이 되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단죄로 이어진다. 이 세계에서 침묵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곧 입장 표명의 회피, 책임 회피, 방관의 언어로 간주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모든 침묵은 무책임한가? 모든 발언은 옳음의 증거인가? 말의 윤리가 무너진 시대, 우리는 되묻는다. 말해야만 윤리적인가?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윤리적일 수는 없는가?
말의 윤리, 혹은 언어의 폭력
현대 사회에서 윤리는 점점 더 ‘말의 형식’으로 축소되고 있다. 옳은 말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히, 얼마나 감정적으로 표현하느냐가 한 사람의 도덕성을 증명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건 잘못된 거야.’ ‘왜 아직 입장 안 밝혔어?’ ‘그 말투가 문제야.’ 우리는 누군가의 언어를 해체하고, 문장을 분석하며, 발언을 저장하고 공유한다.
이 모든 것이 윤리적 감각의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의 감시체제 속에서 강화되는 새로운 위계일 수는 없는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의 윤리 실천은 언어로 ‘증명하는’ 방식으로 기울어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인가, 아니면 정교하게 조율된 퍼포먼스인가? 우리는 점점 더 말에 지치고, 말 속에서 길을 잃는다. 말이 많아질수록 진실은 흐려지고, 말의 윤리는 수단이 아닌 전략이 된다.
침묵은 실패가 아니다
침묵은 흔히 두려움, 회피, 무능력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모든 침묵이 소극적인가?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말한다. “침묵은 고도의 선택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말하는 방식.” 침묵은 단지 ‘하지 않음’이 아니라, 어떤 말도 이 시대의 피로함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능동적 윤리일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말의 오염이 심각하다. 공감은 규범이 되고, 분노는 퍼포먼스가 되며, 사과는 전략이 되고, 연대는 해시태그가 된다. 이런 조건에서 진정한 윤리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다.
침묵은 포기나 중립이 아니라, 감정이 상품화되는 회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저항의 양식이다. 그것은 명확한 입장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입장 표명이 갖는 위선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비판적 몸짓이다.
침묵은 감정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감정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속성을 가지지만, 침묵은 감정을 해석하게 만든다. 수오지심이 사라진 시대, 감정은 윤리를 떠나 퍼포먼스가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해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이 윤리로 전화되기 위해선 ‘느낌’과 ‘표현’ 사이에 반드시 침묵의 간극이 필요하다.
그 침묵은 단지 말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고, 감정이 나에게 어떤 윤리적 함의를 가지는지를 스스로 묻는 시간이다. 그것은 지각의 윤리다. 공감하거나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 이전에 멈추고 응시하는 능력, 바로 그 간극이 사라졌기에 우리는 지금 윤리에 지쳐 있는 것이다.
침묵의 공동체: 말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
소비되는 공동체에서 우리는 관계의 언어를 인증하고, 감정의 언어를 아카이브하며, 연결의 언어를 기록하려 한다. 하지만 진짜 공동체는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침묵이 허용되는 관계 속에서만 진짜 감정이 발생한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뢰의 징후일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곁에 머물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은 언어가 감정보다 먼저 요구되지 않는 구조이며, 감정이 언어 없이도 전달될 수 있다는 윤리의 전조다.
감정의 쓰레기장에서 침묵은 어떻게 말하는가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드러내고 소통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드러나야만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침묵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인정하는 윤리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 입장을 표명할 수 없는 혼란, 해석조차 되지 않는 감정. 그런 감정이야말로 침묵의 공간 속에서 비로소 숨쉴 수 있다.
오늘날 인터넷은 감정의 쓰레기장이 되었고,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건, 말의 힘이 아니라 말 이전의 감각을 회복하는 능력, 말하지 않음으로써도 관계를 맺고, 말하지 않음으로써도 책임지는 태도다.
침묵은 윤리의 마지막 언어다
윤리는 더 이상 선을 규정하는 교과서적 도덕이 아니라, 감정과 언어, 관계 속에서 실천되는 감각이다. 그 감각은 반드시 말로 표현될 필요는 없다. 침묵은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높은 수준의 응시일 수 있다. 그것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감각하고, 말보다 더 적게 상처 입히며, 말보다 더 오래 책임지는 윤리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력함이 아니라 윤리적 자제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타인을 비추는 침묵의 거울이다.
지금 이 시대에 윤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말하는 용기를 갖는 것만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리의 피로가 극에 달한 이 시대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달할 수 있는 윤리의 형식은 어쩌면 침묵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말보다 더 윤리적인 응시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