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무엇을 느끼라고 말하는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직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감정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제 내가 머물렀던 뉴스, 무심코 눌렀던 좋아요, 영상 재생 시간, 댓글 반응—그 모든 데이터는 나보다 먼저 나의 감정을 예측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기도 전에, 나의 기분은 설계되어 있었다.
우리는 감정을 느낀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의 실상은, 감정을 ‘공급받고 있다’에 가깝다. 그것은 내면에서 솟구친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플랫폼이 기획하고 계산하여 던져주는 감정적 자극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트위터—이 모든 기술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감정을 유통하고 유도하는 구조다. 감정은 더 이상 고유한 체험이 아니라, 정렬되고 예측되는 상품이다.
이 감정 유통의 중심에는 알고리즘이 있다. 알고리즘은 중립적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클릭, 체류 시간, 이탈률, 검색어, 이모지 반응 등을 수집하여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감정 설계자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관심사’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심사를 자극하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과 방식까지 계산한다. 내가 불안을 느낄 만한 시간, 분노를 퍼뜨릴 수 있는 문장, 위로를 소비할 가능성이 높은 시간대까지.
이것은 문화의 흐름도 바꾼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고,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제목, 썸네일, 편집 방식에 따라 영상을 구성한다. 언론은 사실보다 정서에 집중한다. '정보의 밀도'가 아니라 '감정의 반응률'이 클릭 수를 결정한다. '당신도 화가 나야 합니다'라는 기사가 '사건 발생'보다 더 높은 노출을 받는다. 이로써 미디어는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감정의 설계자가 된다.
정치는 그 구조를 모를 리 없다. 현대 정치의 많은 국면은 감정의 동원 기술로 이루어진다. 혐오와 불안, 분노와 위협을 조장하는 정치 광고, 바이럴되는 짧은 클립 속 상대 진영의 자극적인 말, 소셜미디어 상의 감정적 구호들—모두가 알고리즘 친화적 감정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정당의 존재감은 정책이 아니라 감정의 파장에 의해 측정된다. 한 편의 연설은 설득이 아니라 감정의 점화 장치로 기능한다.
경제와 마케팅도 다르지 않다.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효용보다 감정이다. “이 물건을 가지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착각은 단지 브랜드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우리가 오래 머문 영상, 반복해 본 콘텐츠, 타인의 후기를 분석한 끝에 보여주는 ‘당신의 욕망’이다. 소비자는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느꼈다고 착각하게 된 감정을 사는 것이다.
기업은 감정 알고리즘을 ‘고객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한다. 감정을 수치화하고, 피드백 루프로 반영하며, 개인화된 감정 곡선을 따라 서비스를 최적화한다. 이때 감정은 상품의 외피가 아니라, 상품 그 자체가 된다. 사용자는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기 전에, 이미 감정화된 추천을 받는다. 플랫폼은 이렇게 감정의 생산자이자 소비자, 설계자이자 유통자가 된다.
이 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감정이 지나치게 자동화되었다는 데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기분의 방향을 결정당한다. 그 감정은 너무 자주 발생하고, 너무 빠르게 순환되며, 너무 다양해서, 더 이상 ‘내 것’일 수 없다. 감정은 이제 내면의 반응이 아니라, 외부의 명령이 되었다.
이 구조는 개인의 판단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감정이 판단을 대체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무엇이 옳은가’를 묻지 않고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에만 반응하게 된다. 사실보다 감정, 정보보다 감각, 분석보다 확신. “나는 화가 났다. 그러므로 이건 나쁘다.” 이런 판단은 사유의 중단이자, 윤리의 퇴화다. 감정이 생각의 자리를 점령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주체가 아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오늘날의 이념은 이데올로기적 강요가 아니라 정서적 선호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감정은 단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되고, 정당화의 도구가 된다. 감정은 사유의 기초가 아니라, 사유의 대체물이 되어간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곧 정당함을 의미하는 사회, 거기서 우리는 진짜 감정조차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감정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정작 감정이 무엇인지 성찰할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며, 반복과 패턴, 예측과 유도, 그리고 소비의 알고리즘 속에서 끊임없이 조직된다. 감정을 소비하고, 감정으로 반응하며, 감정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회. 그러나 그 감정은 누가 만든 것인가?
감정은 이제 철저히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기술적이고, 문화적인 대상이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당하고 있으며, 동시에 감정을 선택받는다. 그 통제와 선택 사이, 감정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사유는 여전히 가능하다. 그리고 그 사유는,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감정을 수행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아니면, 감정을 노동하지 않고도 인간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