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의 감정 윤리와 존재의 위기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그럴 듯해 보였다’. 얼굴이 조금 음침했고, SNS 프로필은 닫혀 있었으며, 몇 개월 전 누군가와 다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증거들은 불완전했고, 그를 특정할 수 없었지만, 집단은 그를 선택했다. 좋아요와 리트윗은 하루 만에 만 단위를 넘었고, 그의 가족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퍼졌다. 그리고 그는, 디지털의 저편으로 밀려났다.
인터넷이라는 바다는 고요한 수면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언제든 한 사람의 숨통을 조여오는 태풍을 품고 있다. 그 태풍은 분노, 불안, 환멸, 자존감의 상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왜곡된 정의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사건을 지켜보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가 망가지기를 기대하는 존재가 되었다.
분노의 소비사회: 감정의 상품화
20세기 후반, 들뢰즈와 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욕망은 억압된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욕망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조작되고 유통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인터넷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타인의 실패나 추락을 바라는 욕망은 원초적 분노의 표출이기보다는, 끊임없이 추천되고, 강화되고, 소비되는 구조 속에서 길들여진 감정이다.
분노는 이제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빠른 클릭을 유도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누군가 '망가졌다'는 소식은 곧바로 바이럴되고, 그에 달린 악성 댓글은 누군가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정서적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분노는 일시적인 위안을 제공하지만, 집단적으로는 윤리적 파국의 반복을 낳는다. 분노가 콘텐츠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다.
왜 누군가는 누군가의 추락을 바라는가
인터넷이라는 무대 위에서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감정은 두 가지다: 상대적 박탈감과 존재 불안. 우리는 '누군가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같음'을 너무 자주 보고, 동시에 '나는 그에 비해 아무것도 아님'을 느낀다. 이 감정은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그 혐오는 외부로 투사된다.
한 사람의 몰락은 이 투사의 충동을 만족시킨다. 그의 추락은 나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끌어올리는 착시를 만든다. "그래, 나도 엉망이지만 저 인간보단 낫지."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간신히 지탱하는 임시적 확증이다. 타인의 몰락을 통해서만 안도할 수 있는 존재는, 자기 확신과 자기 존중을 잃은 존재다.
자존감의 해체와 윤리 감각의 마비
자존감은 단순한 자기애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타인과 공존 가능한 존재’라는 감각이다. 자존감이 약화되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자신의 감정만이 유효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정서적 공범을 찾아 나선다.
‘너도 화났지? 나도야. 같이 욕하자.’
이런 감정의 동조는 새로운 형태의 ‘가짜 공동체’를 만든다. 이 공동체는 공감이 아닌 혐오와 조롱으로 연결되며,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정의'를 집행한다고 생각하고, 더는 윤리적 판단조차 하지 않는다. 대상이 “망가져도 싸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사라진다.
철학의 부재와 감정의 즉시성
과거에는 감정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의 언어들이 있었다. 종교, 도덕, 문학, 철학—이들은 감정을 맥락화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였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감정을 더 이상 해석하지 않는다. 감정은 곧바로 실행되고, 발산되며, 던져진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내면의 윤리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있다. 사람들은 ‘왜’ 분노했는지를 묻지 않고, ‘분노하고 있는 나’가 옳다고 믿는다. 감정이 이유가 되고, 감정이 정의가 된다. 이때 철학은 기능을 상실한다. 감정을 다스릴 언어가 사라지고, 인터넷은 감정의 쓰레기장이 된다. 생각 없는 감정의 낙진들이 쌓이고, 그 위에 또 다른 공격이 반복된다.
인터넷은 현실의 대체물이 아니다
인터넷은 흔히 가상이라 불리지만, 그것은 과잉현실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인터넷이 현실의 대체물이 아니라 현실을 더 과잉적으로 반영하는 장치라고 분석했다. 과잉현실(hyperreality) 속에서, 감정은 왜곡된 형태로 증폭되고, 정체성은 해체되며, 존재는 상품처럼 유통된다.
현실에서 억눌린 감정은 인터넷에서 폭발하고, 그 폭발은 다시 현실로 되돌아온다. 누군가는 직장을 잃고, 누군가는 자살하며, 누군가는 침묵 속에 감정을 내면화한다. 현실에서의 억압 → 인터넷에서의 분출 → 다시 현실로의 폭력적 반영. 이 감정 순환 구조는 점점 더 짧아지고, 더 파괴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이 감정 구조를 멈추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기술 윤리 구조의 재설계
알고리즘은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는 새로운 윤리 조정자다. 우리가 무엇을 클릭하고, 어디에 오래 머물며, 무엇을 공유하는지가 우리의 감정지도를 만든다. 기술자는 감정의 증폭이 아닌, 성찰과 대화를 유도하는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철학의 일상화
철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왜 타인의 파국에 이끌리는가? 지금 이 댓글은 어떤 감정의 결과인가? 이 질문들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묻는 순간, 우리는 존재의 윤리적 감각을 되찾기 시작한다.
감정의 재교육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더 이상 정보의 장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유통되고, 윤리가 시험받고, 존재가 해체되는 현대의 광장이다. 우리는 그 광장에서 타인의 몰락을 원한다. 그 감정은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고립되고 지친 존재가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무기력한 권력감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멈추기 위해서는 감정을 다시 배워야 한다. ‘분노’는 왜 생기고, ‘혐오’는 어디서 비롯되며, ‘공감’은 어떻게 회복되는가. 그 질문은 타인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댓글을 달기 전, 공유를 누르기 전, 내 안의 감정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망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장면을 클릭하지 않고, 그 파국을 소비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마지막 윤리이며, 감정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가 감당해야 할 철학의 방어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