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감정의 구조화_불안은 상품이 되었다

미디어, 정치, 그리고 감정의 구조

by 김형건

비 오는 도심 한복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 찰나.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은 더 이상 길을 보지 않는다. 그들의 눈은 각기 다른 스크린 속을 향하고 있다. 누군가는 SNS를 뒤적이고, 누군가는 뉴스 속보를 확인하며, 또 다른 이는 익명의 커뮤니티에서 방금 벌어진 사건에 감정을 실어 댓글을 단다. 그들 대부분은 오늘도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무언가에 ‘노출되었다’고 느낀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당사자인 것처럼,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폭력, 범죄, 혐오, 분열, 그리고 위기에 접속하면서. 그 접속은 현실보다 감정에 먼저 닿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대개 불안이다.




감정은 오랫동안 개인의 내면에 속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감정은 점점 더 유통되고 설계되는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미디어가 일상화된 세계에서는, 감정은 더 이상 ‘느끼는 것’이 아니라 ‘소비되고, 반복되며, 거래되는 것’이 된다.


그중에서도 불안은 가장 강력하고 유용한 감정 자산이다. 불안은 사람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소속, 더 많은 선택을 향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는 불안을 느끼면 정보를 검색하고, 대안을 구매하고, 새로운 정체성에 자신을 투입한다. 어떤 경우에는 선동에도 쉽게 휘말린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데이터를 제공하고, 표를 던지며, 상품이 된다. 불안은 오늘날 미디어와 정치, 그리고 자본이 공유하는 공통의 자원이 되었다.


현대 뉴스는 정보 전달이라는 본래 기능을 넘어서 감정 설계의 기술로 진화했다. 사실은 그 자체로는 힘이 없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배열되고 편집되며 프레이밍되는가에 따라 사건이 된다. 예를 들어, 살인 사건 하나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평균보다 낮은 범죄율 속의 예외임을 알려주는 뉴스는 잘 읽히지 않는다.


반면 “당신의 옆집에서 벌어진 참사”, “또 다시 반복된 충격”, “누가 이 위험에서 당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라는 문장은 공포를 자극하며 클릭을 유도한다. 이런 이례적 사건의 일상화는 결과적으로 감정의 확률 왜곡을 낳는다. 대중은 어떤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보다, 얼마나 강하게 느껴지는가에 따라 행동한다. 미디어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디어는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기술’을 산업화했다.


그렇다면, 불안을 유통하는 미디어에만 책임이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정치라는 두 번째 구조를 마주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표는 감정을 따라 움직인다. 감정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정치적 감정은 불안과 분노다. 불안은 종종 '타자'를 설정함으로써 정치적으로 활용된다. “당신이 이렇게 불안한 것은 저들 때문이다.” “우리는 당신의 불안을 가장 잘 이해하는 유일한 세력이다.”


이 논리는 정치적 세력화, 지지층 결집, 정당성과 예산 확보 등 다방면에서 이득을 가져다준다. 선거 국면에서 이 구조는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각 정당은 불안을 증폭시켜 동원력으로 전환하고, 승리한 이후에는 그 불안을 정교하게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한다. 정치 역시 불안을 유통하고, 활용하고, 소비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불안을 상품화하는 사회는 건강한가?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은, 불안은 인간 삶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불안은 존재를 열어주는 감정”이라 했고, 키르케고르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 말했다. 즉,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고, 세계를 성찰하게 만드는 감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불안이 ‘존재론적 각성의 기회’로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체계적으로 유도되고 통제되는 감정 자본’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불안은 더 이상 내가 삶에 대해 질문하는 계기가 아니라, 타인이 나에게 소비, 소속, 복종을 요구하는 근거가 된다. 이는 매우 위험한 구조다. 왜냐하면 감정이 내가 아니라 외부의 권력에 의해 설계될 때, 인간은 더 이상 자기결정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 저항하기 위해 우리는 단순한 도덕적 비난이나 음모론을 넘어, 감정을 ‘읽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감정을 누가, 왜,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묻는 훈련. 이른바 감정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불안을 느끼지 말자는 게 아니다. 불안을 의심하자는 것이다. 뉴스에서 무엇이 과잉 편집되어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군가의 클릭 수단이 되고 있는가? 내가 공유한 콘텐츠는 불안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는가? 이 감정은 나의 판단인가, 주입된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다시 감정의 주체로 되돌려 놓는다.




우리는 감정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불안은 가장 널리 유통되는 화폐다. 미디어는 불안을 통해 주목을 얻고, 정치는 불안을 통해 표를 얻으며, 우리는 불안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소속되며, 조정된다. 하지만 그 구조에 매몰되는 대신, 우리는 불안을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 그 기술은 곧 자기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불안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불안은,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불안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불안을 조율하는 존재여야 한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이 시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고, 타인의 분노에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감정 이후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감정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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