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9일 차
계획된 여행일정은 이제 단 한 곳만 남아 있었다. 해변에 설치된 철제조형물 썬보이야저 이다. 하르파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핫도그월드 반대편이어서 핫도그를 먹고 숙소로 가는 길에 둘러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할 일이 있었다. 오후에 깨뜨렸던 막내의 기념품 스노우볼을 사는 것이다. 무지개 거리로 다시 돌아갔다. 오는 길에 무지개 거리에 기념품 가게가 여럿 있는 것을 확인해 둔 참이었다. 무지개 거리로 돌아오는 초입에 대형 기념품 가게가 하나 있었다. 규모가 상당해서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 정도면 비슷한 스노우볼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었다. 다른 쪽 입구 옆 안내표지판에서 영업시간이 오후 6시까지 임을 알게 되었다. 6시가 갓 지난 시간에 벌써 영업 종료라니! 며칠 전 마트에서 겪었던 이른 영업종료의 트라우마가 엄습해 왔다. 기념품을 다시 살 수 없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곳은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공식적인 기념품 샵인 것 같았다. 다행히도 다른 개인 기념품 가게들은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어느 곳에 우리가 원하는 스노우볼이 있을지 몰라 가게가 보이는 대로 모두 들어가 보았지만 좀처럼 맘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대략 대여섯 곳을 찾아보았을까, 드디어 우리가 찾던 스노우볼을 찾을 수 있었다. 깨진 스노우볼보다 조금 덜 예쁘기는 했지만 할그림스키르캬, 화산, 퍼핀 등으로 구성된 조합은 비슷했다. 비슷한 걸 다시 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 썬보이야저로 향했다.
썬보이야저를 단순히 ‘태양호’라고 번역을 하면 뭔가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차라리 풀어서 ‘태양을 항해하는 배’라고 하면 느낌이 훨씬 와닿는다. 이름처럼 바이킹의 꿋꿋한 기상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이 작품은 뒤로 펼쳐진 아이슬란드의 멋진 자연 배경과 어우러져 비로소 완성되는 걸작이다. 오랫동안 꿈꿔오던 나의 여행은 태양을 향한 이카루스의 꿈과 달리 마침내 완성이 되었다. 그래서 썬보이야저는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잠시 앉아 이번 여행을 음미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계속 돌아다니던 게 습성이 되어 버린 걸까, 한 곳에 지긋이 앉아 있기가 쉽지가 않았다. 감동과 여운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런 시간이 되길 기대했었는데,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 ‘이제 갈까 얘들아?‘하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여행의 마지막 밤을 이대로 숙소에서 보내기엔 뭔가 아쉬웠다. 레이캬비크의 밤거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린 결국 얼마 못 가 다시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이날 하루에만 세 번째 숙소에서 시내로 향해 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레이캬비크 거리는 토요일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여전히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젊은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으며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낯선 도시의 설렘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 결국 발걸음이 닿은 곳은 또다시 무지개 거리였다. 무지개거리에 있는 조그만 광장에는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몇 개 놓여 있는데 이 것 자세히 보니 주상절리를 깎아 다듬은 의자였다. 아이슬란드가 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의자이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문화재 느낌이 나는 건물도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계속 거리를 걸었지만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결국 티외르닌 호수에 다시 가서 앉아 쉬다 되돌아가기로 했다. 호수에서 조용히 앉아 쉬고 있는데 사진작가 한 사람이 모델을 두고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근데 모델이 어딘가 좀 이상했다. 흰색의 수도승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행동이 그냥 사진 포즈를 취하는 게 아니고 무언가 행위예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있으니 머리 위로 한 5미터 정도 되는 고깔이 부풀어 올랐고 고깔 안쪽에 전구가 있어 불이 켜지는데 이 사람은 그 고깔을 낚시처럼 물에 집어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심오한 퍼포먼스가 뭔가 궁금했는데 조카는 그냥 아이슬란드식 유머일 수도 있겠다 했다. 무엇이었건 간에 특이한 경험이었는데 마침 돌아서는 우리에게 어떤 아저씨가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조금 전 그 퍼포먼스는 지금 펼쳐지고 있는 축제의 한 프로그램이며 조금 있다 뒤편 건물에서 록밴드 공연이 있을 거라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에서 온 세 팀이 공연을 하는데 공짜이니 꼭 보고 가라 했다. 오~ 이런 기막힌 행운이.
나는 한평생 록 포에버를 외치며 살아온 록커 외길인생 아니었던가! 조카들? 당연히 록음악 좋아한다. 뒤편 건물은 식당 같아 보였는데 상설무대가 설치되어 있어 이날처럼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객석은 평상시 식당으로 사용하는 홀 이어서 스탠딩 공연이었다. 무슨 축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연장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밴드 관계자들과 행사 관계자들 빼고 순수 관객만 대략 스무 명이 되었을까? 암튼 조촐했다.
첫 번째 무대에 오른 밴드는 아이슬란드 여성 3인조 밴드였다.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기타를 치기도 하고 신디사이저를 조작하기도 하며 노래를 부르는 보컬로 구성된 밴드였다. 이들의 음악은 참.. 난해했다. 하지만 힘이 넘쳤다. 너무 힘이 넘쳤던 나머지 드러머는 심벌을 찢어 버렸다. 하지만 음악을 향한 그들의 열정은 진심인 듯했다. 뒤이어 오른 밴드는 노르웨이 밴드였다.
난해했던 이전의 밴드와는 달리 이들의 음악은 한결 듣기 좋았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멤버소개를 먼저 했었는데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매니저가 일본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인지 몇몇 노래에서는 일본적 색채가 강하게 배어 있었다. 베이시스트는 이누이트였으니 다국적 밴드라 할 수 있다. 5인조 밴드인데 드럼과 베이스, 기타, 그리고 보컬 겸 세컨드기타, 서드 기타 겸 키보드로 구성된 특이한 조합이다. 록적인 요소가 가미된 팝 음악을 하는 이 밴드는 연주도 훌륭했고 무대매너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 셋은 몇 안 되는 관객 중 유독 열심히 박수치고 호응을 해 주었는데 멤버들 눈에도 그게 다 보였나 보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떠나며 베이시스트는 조카에게 기타는 나를 가리키며 박수를 쳐주었고 무대 밖으로 퇴장하려던 드러머는 뒤돌아 나를 가리키며 엄지 척 한번 해주고 나갔다.
세 번째 밴드는 시간 관계상 보지 않기로 했다. 내일 아침 비행기를 놓치면 안 되니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이슬란드에서의 마지막 시간은 그렇게 즐겁고 유쾌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봤던 밴드의 이름을 몰랐다. 어느 시점에서건 말하긴 했을 텐데 다들 놓쳤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숙소로 돌아와 SNS를 뒤진 지 얼마 안돼서 밴드를 찾아내고는 DM까지 날렸다. 놀라운 세상이다.
여행의 마지막 밤엔 아쉬움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그날밤엔 아쉬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움직여서 해서 새벽시간에 알람을 맞춰 놓고 내일 아침 시간계획을 확인하다 보니 계속 여행의 연속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썬보이야저에서도 그랬지만 결국 이번 여행은 현지에서 여행을 되돌아보며 음미하고 여운을 느낄 시간을 갖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하지만 여운은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니 괜찮다.
마지막 날 아침, 온라인 수속을 했다 하더라도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면 7시쯤에는 공항에 도착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주유를 하고 렌터카 반납까지 마치고 7시까지 공항에 도착하려면 숙소에서 5시 30분 정도에는 출발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시간을 너무 딱 맞추기보단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아직 여명도 찾아오지 않은 어두운 새벽에 여행의 마지막 숙소를 나오니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살짝 아쉬운 맘이 들었다. 조카들은 차를 탄지 얼마 안 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가로등이 밝혀진 시내를 벗어나자 적막한 어둠 속에 자동차 불빛만 줄지어 내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찍이 붉은색 조명 같은 것이 보였다. 무슨 조형물이길래 저렇게 크게 조명을 밝혀 놓았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차를 달리다 커브 구간을 돌아 그 불빛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그건 조명이 아니었다. 그건 용암이었다. 용암이 지표 밖으로 나와 붉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옆에서 자고 있던 조카를 깨웠다. 조카는 내가 용암이라 소리치며 흔들어 깨우자 급히 눈을 뜨고 보았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던 차라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느낌상 대략 5초에서 10초 정도만에 지나쳐 버린 것 같았다. 일단 뒤에 차가 바짝 따라붙고 있어서 차를 멈추기가 위험하기도 했지만 너무 순식간이라 뭘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되어 버렸던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카와 나는 붉은 용암이 지표 밖에서 끓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 기억은 생생하다. 화산의 땅에서 생동하는 붉은 물결은 이번 여행에서 본 것 중 가장 스펙터클한 것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그 정체가 궁금해 정말 많이 검색을 해 보았다. 내가 공항 가는 길에 보았으니 케플라비크 공항 근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2022년 여름에 케플라비크 공항 근처에서 화산이 폭발하긴 했지만 그곳은 공항에서 남쪽으로 상당히 떨어진 산악지대인데 반해 내가 보았던 곳은 마을과 꽤 가까이 있었다. 한 사이트에서 아이슬란드에는 비폭발성 용암이 있어 위험하지 않게 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했는데 그곳의 위치정보가 없어 내가 본 것이 그것인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공항 가는 길에 바로 길옆에서 그렇게 용암을 볼 수 있다면 상당히 유명할 것 같은데 이렇게 인터넷에 아무런 정보가 없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아이슬란드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내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나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비로소 끝이 났다. 나에게 있어 아이슬란드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꿈의 결정체였다. 꿈같이 흘러간 9일. 그 9일은 시간을 품고 있는 만년설 빙하처럼 내 맘속에 축적되어서 결코 녹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외로울 때 언제나 꺼내보고 추억할 사진첩이 될 것이고, 힘들 때 다시 심기일전할 동력이 될 것이며 지칠 때 떠올리면 언제든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 줄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시간,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에필로그 – 공항에서의 해후
돌아오는 항공편 역시 핀란드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헬싱키 공항에서 아는 사람을 보았다. 다름 아닌 어제 공연했던 팀의 베이시스트였다. 커피숍 쪽으로 가는 것 같았는데 조카들에게 이야기하니 한번 가보자는 것이다. 커피숍 근처로 가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기타리스트랑 키보디스트와 마주쳤다. 말을 건네고는 어제 공연 잘 봤다며 인사를 했다. 공연 소감을 묻길래 아주 좋았다고 하고 사진촬영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기타리스트만 나와 사진을 찍고 키보디스트는 촬영만 하는 것이다. 나는 조카를 포함해서 다 같이 찍자는 것이었는데 그들도 우리도 대표선수 한 사람씩만 사진 찍고는 금방 가버렸다. 잠시 후에 보니 그들의 SNS에 나와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키보디스트가 SNS 관리자여서 그는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었나 보다. 아무튼 그들의 국제적 인기를 홍보하는 데 내 사진이 쓰였다니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