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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마법의 물기둥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2일 차

싱벨리르에 도착할 무렵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있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서다 보니 산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이전의 산들에서는 퇴적층을 이끼인지 풀인지 알 수 없는 초록색 식물이 뒤덮고 있고 나무 한그루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 길에 있는 산들은 그냥 우리나라 산처럼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있었다. 

아기자기 예쁜 풍경 사이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갑자기 주차장이 나오는데 조카가 뜬금없이 거길 일단 들어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사전에 계획에 없던 곳을 즉흥적으로 들렀는데 이것은 신의 한 수였다. 주차장 안쪽으로 전망대가 있어서 가보니 협곡 같은 것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일단 멋진 풍경이라 사진을 찍고 있는데 뭔가 전문가의 아우라를 뿜어 내시는 분이 일행 몇 분을 데리고 오셔서는 이곳이 대륙판이 갈라지는 곳이라고 설명하시는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확인해 보고 싶어 직접 물어보았더니 그곳은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 판이 갈라지는 곳이며 우리가 서있는 곳은 북아메리카 판이라고 알려 주시는 것이었다. 

싱벨리르에서도 판이 갈라지는 것을 보긴 했지만 이곳이 더 분명하게 땅이 갈라져 있는 대륙판의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었다. 계획에 없던 이런 보물 같은 곳을 만나게 되는 것. 이런 게 여행의 기쁨이 아닐까! 

계속해서 길을 나서서 게이시르에 도착하니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사유지였으나 몇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마지막 주인이 게이시르를 아이슬란드 주민에게 되돌려 주고자 정부에 기증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무료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주차비도 없다. 

게이시르는 사실 간헐천을 뜻하는 보통 명사이고 아이슬란드의 게이시르 중 물기둥을 내뿜는 게이시르는 ‘스트로쿠르‘라는 별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통상 이 지역 전체를 게이시르라 하기도 하고 스트로쿠르를 게이시르라고 하기도 하며 혼용해서 많이들 사용한다. 아무튼 이곳에는 물 웅덩이가 스트로쿠르 말고도 여러 개가 있는데 예전에는 그레이트 게이시르 등 물기둥을 뿜어내는 곳이 몇 곳 더 있었다는데 지금은 스트로쿠르 만이 물기둥을 뿜어 올린다. 

게이시르 입구에 들어가니 저 멀리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게 바로 보였다. 즉시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옆에 흘러가는 냇물이 뜨거운지 손을 살짝 담가 봤는데, 그냥 찬물이었다. 다만 몇몇 물웅덩이에는 뜨거우니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이윽고 마주한 게이시르. 오래 기다리지 않아 물기둥이 솟아올랐는데. 애걔, 물기둥이 너무 초라했다. 하늘로 확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물기둥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뭔가 바람 빠지듯이 푹 하고 꺼져 버리는 물기둥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바로 발길을 돌릴 수는 없는 법. 기다렸다. 주기가 일정 치는 않지만 대략 5~8분 만에 한 번씩 솟아오른다 했다.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물기둥이 관광객들과 밀당을 한다. 솟구칠 듯 물이 꿀렁꿀렁하다가 그냥 가라앉고 또 꿀렁꿀렁하다가 또 가라앉고 하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자꾸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절대 돌아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밀당 고수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몇 차례 꿀렁꿀렁하던 물은 어느 순간 폭발하듯 하늘로 치솟아 올랐는데 이번 것은 정말 대단했다. 엄청난 크기의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았고, 그렇게 치솟은 물기둥은 바람을 타고 우리가 있던 곳으로 날아와 우리를 덮쳤다. 물세례를 받고도 이렇게 기분 좋은 곳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물기둥이 치솟을 때 ’우와‘하고 한번, 물세례를 받을 때 ’ 유후‘하고 한번 더 탄성을 질러 댔다. 이 멋진 풍경을 한번 보고 말 수는 없었다. 몇 번을 더 봤을까? 셀 수도 없다. 

한참을 본 후 위쪽으로 더 올라가 봤다. 위쪽에는 에메랄드빛 물웅덩이, 짙은 유황 냄새나는 물웅덩이 등 여러 개의 웅덩이 가 더 있었다. 뜨거운 물이 끓어오르는 웅덩이에서 피어나는 연기는 유황냄새가 짙어 숨쉬기가 곤란했지만 따뜻해서 그 속에서 한참을 몸을 녹이다 왔다. 숨을 참아가며 어떻게든 온기를 붙잡으려는 우리를 혼자 여행 온 여행객이 재밌게 쳐다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아쉬워 물기둥을 또 몇 번 더 보았다. 신이 난 나는 혼자서 마법 주문을 외다가 솟아오를 타이밍 맞춰 ’ 얍‘하고 주문을 걸고 놀고 있었는데, 조카말에 따르면 외국인 꼬마는 물기둥보다 날 더 신기하게 쳐다봤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줬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곳 기념품 매장에서 기념품을 구매하였다. 조카들은 각각 퍼핀 인형과 스노우 볼을, 나는 아이슬란드 머그컵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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