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에 만난 질문
2024년 하반기 강의가 끝났다. 주에 이틀 정도 초등학교로 출강을 했다. 매번 다른 학교로 출강을 했고, 갈 때마다 긴장을 했다. 만나는 어린이들이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매일 아침, 어떤 어린이들을 만날까, 오늘 수업 부디 무사히 끝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며 기도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태산 같은 걱정을 가지고 시작했던 강의가 끝이 나니 시원섭섭하다. 그때 수업을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예시를 들어줬으면 더 쉽게 이해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해맑은 아이들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름 소통을 했다는 기분 좋음이 공존했던 시간.
이번 강의는 개항기 시기의 부산의 역사에 대해서 수업을 했다. 개항기 부산을 기록한 외국인과 조선인의 기록을 바탕으로 부산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는 시간이다. 대상이 초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이라 최대한 쉽게 풀어서 전달해야 한다. 생각보다 어린이들이 역사공부를 일찍 시작해서 저학년이더라도 한국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경험과 상식이 아직까지는 부족한 탓에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다. 그리고 사는 곳에 따라 부산을 이해하고 있는 부분도 다 달랐다. 그런 부분을 바로바로 알아채고 될 수 있으면 최대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수업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부분을 그 어린이들이 앞으로 역사를 배워가면서 메꿔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학년 수업이라 지식적 전달 내용은 꼭 필요한 것으로 최소화했고, 모든 단어는 다 풀어헤쳐 전달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했다. 그래서 수업의 내용에 관련해서는 의문이나 질문이 없었는데, 수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질문이 몇 가지가 있었고, 그중 인상 깊었던 질문에 대해서 기록해보고자 한다.
이번 수업에서 활용된 자료 중 하나가 개항기 해관에서 근무했던 민건호가 쓴 일기인 [해은일록]이었다. 해은은 민건호의 호이다. 민건호는 일기를 30년 동안 썼는데, 이 일기에 개항기 부산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기록들이 많이 있어서 부산에서는 아주 중요한 기록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해은일록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어린이가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일기는 무척 개인적인 기록인데, 우리가 이렇게 막 봐도 되는 건가요?"
순간 멍-해졌다. 그렇지. 일기는 개인적인 거지. 아무리 죽은 사람의 일기라도 우리가 이렇게 함부로 봐도 되는 걸까? 이어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떠오르고, 안네의 일기도 떠오르고. 아 뭐라고 대답할까.
사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기나 편지는 남들이 보라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들이 볼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편지 배틀인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쟁이 유명해진 이유도 둘이 주고받은 편지를 둘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비들이 돌려보았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도 있다. 일기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일기를 나중에 다른 이가 볼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나중에는 책으로 만든다. 전근대 시대의 아주 속도가 느린 SNS라고나 할까. 아마 조선시대에 페북이나 트위터가 있었으면 조선 선비들이 짱 먹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일기를 보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질문을 한 어린이는 2024년 개인정보가 민감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걸. 그리고 나는 해야 할 수업이 많이 남았는 걸.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짧게 고민을 하다가, 있는 사실만 전달했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자신의 글이 읽힐 것을 알고 썼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일기를 읽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하고 넘어갔다. 만약 나에게 좀 더 긴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조금 더 나이가 있는 학생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덧붙였을 것 같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자신의 일기나 편지가 남들에게 읽힐 것을 알고 글을 썼어요. 자신의 편지나 일기로 자신이 평가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글을 쓸 때 아주 신중하게 글을 썼고, 사실에 있어서는 굉장히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애썼습니다. 또 어떤 의견을 이야기할 때도 그 의견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아주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말 한마디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일기라고 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죠. 그 글에 대한 평가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SNS가 발전한 탓인지, 아주 쉽게 글을 씁니다. 남이 읽을 걸 알면서도 아무런 맥락이 없이, 읽는 상대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은 글들이 많습니다. 너무나 많은 글의 홍수 속에서 내 글도 그저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죠. 하지만 글에 대한 평가는 다시 돌아옵니다. 익명으로 쓴 글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글을 보며 글쓴이를 평가합니다. 익명이라서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본인이 알겠죠. 그리고 그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도요. 어쩌면 조선시대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평가를 받을 겁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읽히지 않을 수도 있는 일기마저도 공들여 썼는데, 지금 우리는 남이 읽을 걸 알면서도 함부로 쓰곤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글을 쓸 땐 누군가는 읽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쓸 필요가 있습니다."
라고 말이다. 아.. 너무 어렵네. 말 안 하길 잘한 것 같다. 나도 내 SNS에 욕이 한가득인데.. 나나 잘하자.
마지막 수업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수업한 게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네. 다음 수업은 좀 더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