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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둘셋 Apr 29. 2024

사람 안 변해, 그냥 내 식대로 사는 거지! 라고요?

누구나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고 변화하고자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친구들이 고민을 얘기하면 무턱대고 위로하기보다는 친구가 스스로를 포함해 상황을 제대로 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처로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조언하곤 했다. 예컨대, 지금껏 하급자들에게 거침없이 할 말 다 하고 지내다가 욕을 먹게 됐다면 말을 좀 줄여보자든가 하는 식이다. 단순하게 보여도 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옆에서 끊임없이 응원했다. 진심으로.


그런데 전혀 바뀌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곧장 내게 왔는데 내 조언대로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국은 늘 자기 식대로였고, 또 어려움에 처했고, 다시 내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반복됐다. 지친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어차피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서 왜 묻는 거야?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데 친구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친구는 이제야 듣고 싶은 말은 듣게 됐다는 듯 "그래! 사람이 어디 변해? 그냥 내 식대로 사는 거지!"라며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동안 친구가 나를 찾았던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친구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조언의 앞뒤로 덧붙이는 나의 위로와 응원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거나 자신을 변화시켜 상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거다.


나는 웃으며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충격을 받았다. 누구나 변화와 성장을 꾀하고자 한다는 나의 믿음이 틀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사람들 대부분은 위 친구처럼, 주변 상황은 자신의 기대와 희망을 섞어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관계에서는 상대의 의중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고, 그래서 마주하게 되는 시련은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위로로 이겨내고, 자신은 지금까지처럼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게 일반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다르겠는가. 나는 과거와 비교해 변한 게 있을까. 온 힘을 다해 변화를 도모하고 다른 대처를 했던 순간도 몇 번 있지만, 그렇다고 나의 본질이 달라지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졌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무렵, 고 신영복 선생님이 쓴 '담론'이라는 책을 만났다. 


저자는 감옥에서 -신영복 님은 70년대에 간첩단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지내는 동안 스스로를 철저히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집을 그릴 때 자신은 지붕부터 그리는데, 목수 출신 재소자가 실제 집을 지을 때처럼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가진 추상성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 출신이라고 근엄을 떠는 대신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이해하려 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자 애쓴다. 나름 변화하고 성장했다는 자부심을 안고 출소 후 20년 만에 사람들을 만났는데, 모두가 한결 같이 자신에게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그대로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저자는 '20년간 하나도 안 변했다.'라는 말이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상대방도 별반 변한 게 없어 보여 더욱 두려웠다고 한다. 저자는 20년의 시간이 헛된 것이었나 하는 좌절감도 느꼈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평생 노력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답을 구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건 성장하고자 노력하는가, '변하지 않은 나'를 마주할 때 부끄러운가 하는 것이겠다. 


나는 이제 그 친구에게 조언하지 않는다. 친구가 힘들다고 하면 '다 지나갈 것, 하고 싶은 대로 해.' 정도의 말만 하고 만다. 좋은 관계는 아닌 것 같다.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 있습니다.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관계야말로 최고의 관계입니다." - 신영복 '담론' 중에서



일러스트 Natalia Lavrinenko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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