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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Mar 25. 2024

[영화 감상 소설] take my waltz, plz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감상 후, 매혹을 주제로 단편 쓰기

[제가 매혹을 좀 해드릴까요.]


질문인지 대답인지 알 수 없는 끝음처리. 공손한 언어 형식 테두리에 갇힌 두 글자가 불쌍했다. 그래서 웃은거다. 말도 안 되는 문장이야, 평가하면서. 당신이, 뭘 한다고요? 내 앞에서 침도 제대로 못 삼키는 양반이 말야. 같잖아 정말. 흩날리는 피곤을 온 몸에 두른 채로 대꾸했다.


 


“아, 예. 그러세요. 뭐 어떻게 할 건데요? 해 보시죠, 어디.”


 


하아트. 그놈의 사랑타령. 지겹기도 하지. 피고 질 일주일간의 단 한 번의 만개를 위해서 일 년 동안 금이야 옥이야 가꾸는 여의도 공원 관리자는 벚나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나 같으면 이럴 테지.

[평소엔 쳐다도 않더니, 제 눈에 예뻐 보일 때만 잠시 우르르 몰려오는 꼴이라니.

변덕스러운 인간들 때문에 350일을 찬밥 신세로 견뎌야 하는 저들이 불쌍하다.]


 


그런 이유다.


그래서 사랑이니 연애니, 다 필요 없다는 거다.


 


공공연히 스무살 적부터 무성애 따위를 외치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아는 평범한 세상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그냥, 선택했을 뿐이다. 남들이 웃으며 넘겨버리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는 질문. 거기에 대답을 한 거다. “둘 다 싫어.”라고. 뭐- 그런 격이지. “너는 어떤 사람이랑 나중에 사귀고 싶어?” 하는 질문에 “아무도 안 사랑하고 싶은데요.” 하는 말대꾸. 그게 내 인생이다. 지금까지.


 


어렸을 때에는 뭣 모르고 달려드는 사람들도 있더라. 오히려 이런 나를 한 번 자빠뜨려보고 싶다던가, 도전 의식이 느껴진다던가,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패배자를 구원해주고 싶다던가 하더라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럼 알아서 얼마간 생난리부르스를 치다가 쟨 진짜 이상한 애라며 떠나곤 했다. 눈물 몇 방울 꼭 내 앞에서 방명록마냥 떨구고.


 


“네 그 공사다망,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네 주말 공사를 확 누가 망쳤으면 좋겠어. 단 한 번이라도.”


엄마는 장난처럼 말하곤 했다. 잘나고 바쁜 딸내미 두어 좋겠다는 다른 엄마들의 시샘 어린 눈길을 받고 난 저녁은 더더욱. 그럼 뭐하냐고, 제가 너무 예쁜 걸 스스로 잘 알아서 결혼이나 연애같은 건 생각도 않는다고. 그래서 얄미워 죽겠다고. 주말마다 기대를 품고 뭐 하냐는 전화를 거는 그녀에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공부해. 끝나고는 나랑 약속 있어. 바빠. 이따 전화해.” 왜 바쁘냐고 심화 질문을 던지는 날에는, 만루 홈런을 쳐냈다. [책 읽느라, 회식하느라, 봉사하느라, 일기쓰느라, 영화보느라, 헬스하느라, 여행가느라.] 물론 전제는 혼자.


 


[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할게요.]


가만히 다른 생각에 빠진 나를 두고 그가 일어났다. 차에서 뭘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 사람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너 뭐 잘못된 수작 부렸다가는 네 엄마한테 크게 혼이 날 텐데. 나 이래봬도 네 엄마 직속 후배야. 출신 대학에 동아리까지 같다는 이유로 무척 신경써 주시는. 집에도 꽤나 들락거릴 정도로 나름 막역한. 적당히 선은 넘지 말았으면 좋겠...


 


종이.


그리고 펜.


[싸인해 주시죠.]


내 신상 정보와 서명란 빼고 상대방 쪽의 모든 칸이 채워진, 그것은

 


“이게 매혹인가요?” 나는 물었고 그는 끄덕였다.

[시작이죠, 첫 번째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어떻게 되는데요? 다시 한 번 물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전 단계가 완료되어야 다음 단계를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소용이 없어요. 물어보셔도.]


“이게 무슨 장난입니까.” 나는 묻지 않았고 이번에는 그가 물었다.

 [진심인데요?]


“당신 혹시, 미쳤어요? 또라이야?” 나는 화를 냈고 그는 웃었다.

[처음부터 확실히 사랑하려고요. 두려워하는 게 두려워서.]


 


그래서 했다. 싸인.


그 말을 듣고. 납득이 가서.


하고 물었다. 이제 다음 단계 알려줄 건가요?


그는 답했다. 네. 이제 구청에 가요. 제출하러.


 


다음 단계는, 뭔가요?


내면, 알려줄게요.


그럼, 일어날까요?


네. 제 차로 가시죠.


 


서류 봉투에 종이 몇 장을 다시금 넣는 그의 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쳐다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손이건 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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