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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이수 Aug 03. 2024

돼지 3형제의 집은 동화적 허용이다

이수기(4)


이수'기(記)' :: 이수의 일기



남편과는 6년 반에 달하는 연애 기간을 보내고 결혼했다. 결혼한 지도 어느덧 2년을 바라보고 있어 우리의 첫 신혼집이었던 이곳 계약 만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계약을 연장할 생각이 없다. 신혼집 위치가 워낙 좋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까지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 보니 다들 왜 계약을 연장하지 않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물론 그 부분은 나도 동감한다. 접근성으로만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니 근데 C발..(추임새와 헛웃음)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때는 바야흐로 2022년. 우리는 그해 12월에 예식을 올리기로 했으나, 어쩌다 보니 그 해는 나와 남편이 취업을 한 이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낸 때이기도 했다. 하물며 연차를 내고 드레스 샵에 가던 날, 오후반차로 돌려 오전에 업무를 처리하고 샵에 가는 택시에서도 업무를 봤으니까. 이러한 상황적인 요인과 둘 성격이 잘 맞물려 싸우는 일 없이 준비 과정은 얼렁뚱땅 진행됐고, 업체 과실로 있던 이슈도 해결 가능한 선에서 마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결혼 준비 전반을 나름 별생각 없이 보낼 수 있던 건 모두 신혼집이 일찍이 합의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면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에게 집이란 인생의 중대사가 아니든가. 서울 집값 이슈로 많은 신혼부부들이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대신 쾌적하고 넓은 거주 환경을 확보하는데, 우리 부부는 운이 좋게도 지인을 통해 서울 중심에 위치한 작은 평수의 신혼집을 구할 수 있었다. 다만, 그해 초 기준으로 완공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라고는 공사 중이었던 건물 외부 모습과 예상 내부 평면도뿐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길지 않은 고민 끝에 그 집으로 계약하게 됐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역시 접근성이었다. 나는 20대 중반까지 지금의 신혼집 근처에 위치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살다가 경기도로 이사하고 통근했던 6년의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어떻게든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남편은 나와 반대로 평생을 경기도에서 자란 사람이라 2~3시간 통근에 단련이 돼 있었지만, 그만큼 통근길 단축에 대한 갈망이 엄청났다. 그런 바보 두 명의 섣부른 결심이 미래의 비극에 어느 정도 기여했던 것이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을 무렵, 우리는 애타게 입주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주가 예정됐던 9월에서 10월까지 넘어갔기 때문. 그러나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고 뉴스에서 부동산 PF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건설사들이 부도가 나고 관련 시장이 마비됐으며 그 여파가 우리에게까지 불어왔다. 완공을 앞두고 시공사가 망해버린 탓에 이후 작업이 진행이 어렵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한창 청첩장을 돌리던 때였는데, 신혼집은 어디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야 되나 고민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 A동에 있긴 있는데.. 아직 완공은 안 됐는데.. 입주가 사실 이달인데.. 시공사가 망했다는데.. 우리 어떡하지?


그렇게 밀리고 밀리던 중, 우리는 본식 한 주를 앞두고 이 건물 첫 입주자로 들어왔다. 정식 입주 시기도 아니고, 입주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 대상으로 미리 입주를 허가한 것이었다. 뭐 얼리버드 세일 이런 건가.. 소음 걱정은 안하고 밤낮으로 청소기를 돌릴 수 있긴 했다. 시공사 부도로 자재가 없어 공사가 중단됐던 건물의 퀄리티는 과연 대단했다. 건물 내벽에 금이 가있거나, 엘리베이터가 멈춰 갇히기도 했고, 여전히 손보던 곳들이 있어서 배달을 시키면 여기가 맞냐고 전화가 걸려오기 일쑤였다. 집 내부 역시 자재가 맞지 않는 것들끼리 연결돼 있거나, 도색이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수납력은 마이너스에 달하는 등.. 입주 두 달까지는 우리가 유일한 입주자였던 만큼 우리 집 하자가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추후 다른 분들이 입주하며 알게 된 사실은 그나마 우리 집이 제법 정상이었다는 반전이 있었다. 우리 집은 에어컨이라도 작동이 잘 됐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입주하고 5개월 무렵 지났던 지난해 4월 말. 한밤 중에 화재 경보가 울려 대피했던 날이었다. 어찌나 소리가 확실한 지 저 정도 울리면 바로 대피할 수 있겠네, 라며 안심했는데 처음 울리기 시작한 날 이후로 마치 알람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귀를 찢을 것 같은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하면 바들바들 떨며 옷을 주워 입고 비상계단으로 뛰쳐 내려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건물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예민해지며 스트레스를 크게 받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오랜 공황 환자인데 한참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다 이 사건으로 병원 진료를 다시 이어 나가게 되기도 했다. 거의 세 달 가까이 괴롭히던 경보 작동은 경보 기계 결함이 문제였다며 수리했다고 공지를 받았지만, 다시 또 언제 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꽤 오래 불안해하며 지냈다.


그리고 최근.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아침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하게 건물 내부에서 나는 소리였다. 오 정말 오랜만이군! 불이라도 났나. 마침 집을 나서던 참이라, 익숙한 짬빠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어느 층에서 나는 소리인지, 불냄새가 나는지 파악하며 1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문자를 남겼다. 나는 무사 탈출. 진짜 불 난 거 같으면 빠르게 도망쳐!


오래전 읽었던 돼지 3형제 동화 속 그들의 집은 이렇게 허술할 수 있나? 싶도록 쉽게 무너져 버린다. 벽돌집으로 탄탄하게 만들었던 막내만 웃으면서 끝났던 것 같은데. 나를 지켜줄 벽돌집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집을 구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바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집들이 늘어나는 걸까. 이사까지 이제 4개월 반 남은 지금, 나는 과연 벽돌집 찾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집 짓기를 배워야 되나. 아니 근데 진짜..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2su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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