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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Apr 24. 2024

영국 디저트는 일상이고 추억입니다.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영국 생활 이야기

오랜만에 손녀들과 저녁 식사를 나눈 할머니는 마지막에 디저트를 꼭 챙기신다. 단 것을 자주 먹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할머니 디저트에는 군소리를 않는 또는 못하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신이 났다. 여름날이면 이튼메스(Eton Mess)라 불리는 머랭 위에 휘핑크림을 얹고 그 위에 산딸기와 블루베리들을 잔뜩 얹어주시기도 하고, 겨울이면 스티키 토피 푸딩(Sticky Toffee Pudding)에 따뜻하게 데운 커스터드를 둘러 주시기도 한다. 그릇을 싹싹 비워 맛있게 즐기고 나면 할머니와 손녀들은 서로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디저트란 엄마가 만들어주신 식혜나 수정과를 시원하게 마시거나 과일 한 두 쪽으로 입가심하는 정도였다. 말하자면 뒷맛을 정리하는 딱 그 수준이면 족했다. 친구들과 커피 마실 때에도 디저트로 주문한 케이크에는 손도 안대는 그런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시 부모님이 한국 우리 집에 놀러 오시면 과일 몇 쪽을 디저트 삼아 맛있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는 했었다. 이분들이 조용히 조각 케이크를 따로 사 드셨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먹어도 마지막 디저트가 빠지면 뭔가 아쉬운 것이었다. 영국 현지에 와서 보니 디저트는 일상에서 수시로 즐기는 문화다. 음식을 먹은 후 뿐만 아니라 늦은 오후 잉글리시 티타임으로도, 특별한 날에도 즐긴다.  


영국 남서부 크림티(Cream Tea) by 세반하별


영국 유명 TV프로그램 중에 브리튼스 베이크 오프(Britain's Bake off)가 있다. 참가자들이 주어진 주제에 따라 각양각색의 디저트를 만드는데, 그 메뉴를 선택한 이유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쁜 날, 즐거웠던 날, 누군가가 그리운 날, 슬픈 날. 살아가면서 그 마음을 보듬고 안아주는 영국인들의 추억 속에는 디저트가 함께하고 있었다.  
 

처음 시댁을 방문한 때 먹어본 '라이스 푸딩(Rice Pudding)' 디저트를 기억한다. 시 어른들과 함께 한 첫 외식이라 긴장되는 자리였다. 한국에서 온 손주 며느리가 신기하고 궁금하신 어르신들은 이래저래 부담스러울까 질문 속도 조절을 하시던 중이었다. 버터에 잘 씻은 쌀을 넣어 볶다가 우유와 설탕, 넛맥을 넣어 걸쭉하게 끓여낸 죽 같은 것이었는데, 달고 뭉근한 것이 이런 자리만 아니었으면 입도 대지 않았을 음식이었다. 어르신 중 한 분이 처음으로 질문하신다. 쌀로 만든 디저트 맛이 어떠냐 하시는데, “이런 쌀 맛은 처음이에요” 했더니 다들 박장대소를 하신다. 그렇게 첫 만남의 서먹함은 잦아들고 가족의 일원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시 삼촌 팔순 생신에 둘째 며느리가 '트라이플(Trifle)'을 정성 들여 만들어 왔다.  전날 밤 스펀지케이크를 셰리주에 적셔 큰 접시 모양대로 둘러 밤새 냉장고에서 굳히고는 다음날 과일, 젤리, 커스터드 크림을 켜켜이 쌓아 올렸다 한다. 딸들과 속재료가 잘 보이도록 하느라 힘들었다 하는데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 몰랐다. 생일 디저트로 한 접시씩 받아 드신 생신 축하 어르신들이 모두 즐거워하시니 둘째 며느리가 고생한 보람이 있다.


영국 여행 다녀보면 지역마다 디저트가 달라 문화체험으로도 좋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의 고장답게 귀리에 꿀과 휘핑크림, 딸기나 블루베리를 넣고는 위스키를 첨하고,  웨일스는 낙농업이 발달한 만큼 치즈를 넣거나 스콘 닮은 과일 케이크인  웨일스 케이크(Wales cake)가 있다. 잉글랜드는 남서쪽은 크림티(Cream Tea)로 유명한데 스콘에 딸기잼과 꾸덕한 유제품 클로티드 크림을 잔뜩 발라 먹는 것으로 유명하고, 북동쪽은 진저브래드(Ginger Bread) 쿠키나 페이스트 사이에 크림을 넣고 그 위에 초콜릿을 바른 에클레어(Eclair) 등이 유명하다.


영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는 스티키 토피 푸딩(Sticky Toffee Pudding)이라고 한다. 스펀지케이크에 말린 과일을 넣은 위에 설탕과 버터를 녹인 토피소스를 얹어서는 크림이나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먹는다. 단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도 이제는 한입씩 찾아 먹기도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베이킹은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어려서는 아이들이 노는 방법으로 좋았고, 학교 행사면 케이크를 굽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면 케이크를 굽고, 아무 일 없는 날에도 입이 심심하면 뭐든 굽는다. 밀을 주 식재료로 삼는 영국 사는 김여사는 그렇게 현지 문화에 적응되어 간다. 영국 사람들처럼 디저트로 추억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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