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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Apr 03. 2024

영국 부활절 음식 이야기

부활절 달걀, 핫크로스번, 스카치에그 그리고 선데이 로스트

부활절 하면  달걀과 그 모양의 초콜릿 그리고 핫 크로스번이 떠오른다.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주간으로 영국은 굿 프라이데이부터 부활절 다음날까지 4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올해 딸이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예전에는 종교적인 날들과 상관없이 지냈다면 세례 받은 첫 해인 올해부터는 좀 더 의미를 담아 부활절을 보낼 계획을 세워본다.




굿 프라이데이(Good Friday)라고 불리는 성 금요일은 예수가 못 박혀 돌아가신 날로 육식을 금하고 간결하게 식사하기를 권장하는 날이다.


지난 금요일,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고 우리는 외식을 하게 됐다. 오래간만에 하는 외식이라 다들 들뜬 마음으로 메뉴판을 보고 있다. 육식파인 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 고소하고 육즙 가득한 좋아하는 고기 버거가 메뉴에 있지만, 오늘은 고기 먹으면 안 되는 날이란 이야기를 들은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제 막 가톨릭 신자로 태어난 12살 소녀는 본능을 따르기에는 철이 들었고 그렇다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그 불편함을 숨길만큼 사회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아빠 취향 따라 들어와 보니 유난히 고기 요리에 진심인 식당이다. 그 흔한 피시 앤 칩스도 없는 집이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버거 세트가 그나마 최대한 절충한 선택지인데 아이 눈에는 아무래도 메뉴판 상단에 있는 그 고기 버거가 눈에 아른거리는가 보다.

해피 프라이데이날, 유혹의 고기 패티 버거

오래간만에 아이들을 만난 남편은 그냥 고기 먹게 해 주자고 설득해 보지만, 나는 조용히 아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놓고 말리면 반항이라도 해볼 텐데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더 난감한가 보다. 마지못해 채식 버거를 주문한 딸에게 ‘덕분에 새로운 맛보겠네’ 칭찬을 해주었다. 결론은 ‘역시 고기 버거가 최고다’였지만, 새로운 신념을 가지고 아빠의 달콤한 속삭임에도 흔들리지 않은 딸을 칭찬한다.




다음날은 홀리 토요일(Holy Saturday). 예수의 희생을 추모하면서 예수 부활을 기다리는 날이다. 아이와 핫크로스번(Hot Cross bun)이라는 부활절 빵을 구워보기로 한다.  건포도와 계핏가루를 넣어 만든 빵 위에 십자가 모양을 그려 굽는 부활절 빵이다. 올해는 빵을 직접 굽겠다고 하니 시어머니께서 ‘그냥 사다 먹지 그러니’ 하신다. 값싸고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으니 하시는 말씀이다. 세례 받은 첫 해이니 만큼 딸과 빵 굽기는 기억할만한 활동으로  안성맞춤이지 싶다.

집에서 구운 핫 크로스 번

강력분에 버터와 계란, 설탕 조금 그리고 이스트를 넣어 섞다가 소금 한 꼬집을 넣고 반죽에 탄력이 생길 때까지 치댄다.  한 시간 정도 휴지기를 가지고 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린다. 다음 부푼 반죽에 건포도 한 움큼 그리고 계핏가루를 넣고 다시 치댄 후 다시 한 시간 휴지기를 갖는다. 다시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반죽을 소분해서 동글동글 주먹만 한 공 모양을 만든다. 200도로 오븐을 미리 예열해 놓고는 오븐팬에 각 도우를 잘 담고는 밀가루와 물을 섞어 만든 반죽으로 빵 위에 길게 십자가 모양을 그린다. 오븐에 넣고 20분 정도 굽고 나면 먹음직스러운 빵이 나온다.


예쁜 모양의 시판 핫크로스번들과는 다르게 십자가는 삐뚤빼뚤. 빵들이 제각각의 모양으로 나온다. 본새를 보충해 보고자 뜨끈한 빵 표면에 마멀레이드를 발라 윤기를 더해본다.  갓 구운 폭신한 빵의 감촉이 나쁘지 않다. 시 어머니께 사진 찍어 보내니 첫 시도로 그 정도면 잘한 거라고 칭찬하신다. 미망인이 되시고 처음 맞는 부활절인데 멀리 계셔서 갓 구운 빵을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쉽다.


대신 성당 지인분들과 나눌 핫크로스번을 조금 챙겨서 늦은 저녁 성당으로 향한다.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활하시기를 소망하는 행사가 있다. 신도들의 손에 초가 한 자루씩 주어지고 깜깜한 성당 단상에는 촛불 하나가 켜져 있다. 영국 성당에서 처음 참가해 보는 딸과 나는 그 엄숙함에 숙연해진다.




부활절(Easter Day) 당일, 평소 일요일 미사보다 훨씬 많은 신도들이 모인다. 앉을자리를 찾지 못해 서서 미사에 참여하는 신도들도 많다. 라이브 스트림도 한다고 하니 부활절을 함께 하는 교인들의 규모를 상상할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며 신부님이 미사에 참여한 모두에게 성수를 뿌리는 예식을 하신다. 오늘따라 성가 부르는 목소리도 크고 밝다.

스카치 에그. 전통 버전과 김치를 넣은 퓨전 버전

미사 후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일요일 정찬을 준비한다. 사순절(Lent) 기간이라고 특별히 절식을 한 것도 아니지만 예수가 부활하셨으니 마음껏 먹고 싶은 음식을 즐겨도 된다는 부활절이다. 지난 금요일 먹고 싶은 고기를 먹지 못한 딸이 안쓰러 웠는지 남편은 오늘 특별히 쇠고기 안심을 준비했다. 살짝 핏기를 머금은 미디엄 웰던 스테이크에 당근, 브로콜리를 삶아 담고 그 옆에는 스카치 에그(Scotch Egg)라고 하는 삶은 달걀에 소시지 고기로 옷을 입히고 빵가루 뭍혀 구운 달걀음식을 놓는다. 올해는 그 고기에 김치를 넣은 퓨전 스카치에그도 있기에 사 와봤다. 삶은 계란과 고기의 고소함에 매콤하게 잘 익은 김치를 갈아 넣어 깔끔한 매운맛이 아주 잘 어울린다. 가장 전통적인 영국 음식인 스카치에그와 김치 조합이라니.



 

부활절 휴가를 마치면서 딸에게 이번 경험을 물었다. 솔직한 딸이 하는 말, “난 그래도 부활절보다는 성탄절이 좋아. 선물을 많이 받잖아”


아이 세례식에서 약속했었다. 엄마로서 아이를 신자(信者)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돕겠다고 말이다. 실상은 딸 덕분에 냉담자였던 내가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게 됐고, 크리스천 국가인 잉글랜드에 살면서 겪게 되는 일상의 기원과 의미를 종교를 통해 더 깊이 그리고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우선 시작이 좋다. 말 그대로 Happy Easter 주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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