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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Mar 27. 2024

만두 대신 영국 파이

파이(Pie)에 관한 추억이 없는 영국 사람은 없다.

퇴근한 남편이 집에 돌아온다. 은은하게 퍼져 있는 파이 굽는 냄새를 맡으면 그 미간의 주름이 펴지면서 세상 편안한 표정이 된다. 오븐에서 갓 나온 파이의 바삭함이 좋다. 뜨끈한 파이를 접시에 담고 그 옆에 삶은 완두콩이나 감자 으깨 만든 매쉬포테이토. 빠질 수 없는 그레이비소스를 흠뻑 적시면 이제 가족 저녁 식사가 준비된다.




영국인들에게 파이는 꼭 한국인들에게 만두와 같다. 별 다른 메뉴가 생각나지 않으면 만든다. 무심한 듯 슥슥 밀가루 반죽으로 페이스츄리(pastry)를 만들고, 냉장고 자투리 고기, 야채들을 모아 다져서 소(필링 filing)로 만든다. 그 재료들을 페이스츄리로 잘 싸서는 오븐에서 구우면 끝. 파이는 가족들과 나눠 먹는 영국 일반 가정식, 소울푸드다.


홈메이드 고기 파이

만두피 마냥 페스츄리도 슈퍼마켓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집에서 손으로 만들면 음식에 스토리가 생겨 그 맛이 더 좋기 마련이다. 시 어머니의 고기파이 만드시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해본다.  


밀가루에 버터와 계란을 넣고 치댄다. 재료들이 잘 섞이면 빵 도우처럼 모아 1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어 휴지기를 가진다. 그런 다음 밀대로 반죽을 밀어서 얼굴만 한 크기의 페이스츄리(Pastry)를 만든다.  


반죽 휴지 시간 동안 만두소와 같은 파이 필링(filing)을 만들 차례다. 우선 양파, 마늘, 파슬리, 당근을 잘게 다져 기름 살짝 넣고 팬에 볶다가 다진 쇠고기를 넣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볶는다. 다음 영국 MSG 고기 스톡을 소량 넣고 물을 살짝 첨 해서 자작해질 때까지 볶는다.

 

밀대로 잘 편 페이스츄리를 오븐 그릇에 깔고 그 위에 준비한 파이 소를 담는다. 그릇의 2/3 정도 소를 담고 그 위에 다시 페이스츄리 한 장을 올려 내용물을 덮는다. 파이 가장자리는 꼬아 바구니처럼 모양을 만들고 겉 표면에 군데군데 사선을 긋거나 포크로 구멍을 낸다. 보기도 좋고 속까지 잘 익도록 돕기 위함이다. 파이 표면에 준비해 놓은 계란물을 살짝 바른 후 오븐에서 30여분 정도 구우면 먹음직스러운 금빛 파이가 완성된다.

 

전통 스테이크 파이


파이는 디저트나 간식용으로도 사랑받는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애플파이. 져민 사과와 설탕, 계핏가루를 소로 넣고 구운 파이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주걱이랑 함께 먹으면 내겐 최고의 디저트가 된다. 베리류가 많이 나는 영국에서는 딸기 파이, 블루베리 파이 등 과실은 무엇이든 파이 재료가 될 수 있다. 바삭한 파이에 달콤한 과일 토핑은 티 한잔과 함께 그 어느 때라도 반가운 간식거리가 된다.


새콤 달콤 딸기 파이

크리스마스에 빠질 수 없는 민스파이(Mince Pie)가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뭐 다른 고기 다짐육을 넣는 파이인가 했다. 중세 시대에는 실제로 다짐육과 과일, 향료들을 넣어 만들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가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건포도나 과일 말린 것을 잘게 썰어 설탕, 넛맥, 럼이나 브랜디 등을 섞어 끈적한 소를 만든다. 처음에는 예수를 뜻하는 반달 모양이나 길쭉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대는 손바닥만 한 페이스츄리에 그 과일소를 넣고는 동그란 파이를 굽는다.  

성탄절 뿐만 아니라 일년 내내 사랑받는 민스 파이

크리스마스 당일로부터 12일간, 동방 세 박사가 베들레헴에 방문하는 예수 공현 축일까지 민스파이를 매일 하나씩 먹으면 복 된 새해가 온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 크리스마스 전후 어디서든 민스파이를 만날 수 있고 요즘은 슈퍼마켓에서 일 년 내내 민스파이를 팔고 있다. 국민 간식인 셈이다.   


 

나는 해변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피시 앤 칩스도 유명하지만 나는 코니쉬파스티(Cornish Pasty)를 즐겨 먹는다. 영국 남서부 끝 콘월(Cornwall)이라는 주에서 유래된 반달모양으로 제법 큼지막한 파이다. 소에 들어간 고기가 큼직하고 또 야채가 듬뿍 들어 있어 한 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영국 해변 마을 모습

사람들은 주로 코니시 파스티를 야외에서 즐기는데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반드시 벽을 등지고 앉아 먹어야 한다. 아니면 갈매기들이 등 뒤로 날아와 채가기 일쑤다. 어느 날 해변가에 앉아 파스티를 먹고 있는데 갈매기가 딸 등뒤에서 낙하하는 것을 본 남편이 막아섰다. 일촉즉발, 딸 점심을 갈매기에게 뺏길 뻔했다. 그를 본 주위 사람들이 자신도 그런 적 있다며 함께 웃는다.




비가 오고 어두운 저녁, 고기 파이로 속이 뜨끈하게 채워지니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그 맛이 이거구나' 싶다. 옛날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파이 얘기, 대학 때 친구들이랑 집밥 생각이 나서 처음 파이 구웠다가 새까맣게 태운 얘기.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이런저런 추억 얘기하는 소리가 듣기 좋은 음악처럼 들린다. 파이와 함께 즐기는 편안한 저녁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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