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섭씨 20도가 넘을 거라면서 아침 뉴스 앵커가 호들갑이다. 올해 4월은스톰(Storm)이 계속올라와서 날씨는 춥고 어두웠다. 5월. 절기는 무시 못한다 하더니 드디어 해가 짱짱한 주말이다.
영국 삶의 좋은 점은 집 주변에 녹지가 많다는 것이다. 구역마다 작든 크든 공원이 있고 교회들은 공동묘지터를 함께 하고 경우가 많아 그 또한 산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집들은 단층이거나 높아봐야 3층 정도다 보니 일조량이 어디에서나 보장되고 새들이 놀러 와 쉴 수 있다. 고슴도치가 마당에 나타나는가 하면 자정 즈음이면 여우도 오고 간다. 나는 영국 남부도시 중심부에 살고 있지만 충분히 자연의 품을 느끼고 있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말 목장, 양 떼 목장이 있다. 그 주변을 걷기 시작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양 떼들은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몇몇 양들은 오래간만에 햇볕이 나니 더운가 보다. 나무 그늘 밑에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다. 나에게는 조그만 강아지가 있다. 양 떼들이 있는 초원을 가로질러 함께 걷는다. 여기저기 싸 놓은 양똥들이 천지다. 내 강아지는 그 냄새에 황홀경에라도 빠진 듯 킁킁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려 하기도 한다. 아마 목줄을 걸어 놓지 않았다면 똥 위에 몸을 비비며 만끽했을 것이다.
다음날 일요일은 딸이 참여하는 크리킷(Cricket) 경기가 있는 날이다. 마침 경기 장소가 해변 근처다. 햇볕도 좋고 기분도 좋다. 그동안 입던 긴 팔 우비 옷을 벗고 오늘은 티 없이 맑은 흰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고 집을 나선다. 아이들은 경기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니고, 선수 가족들은 싸 온 피크닉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긴다.
영국 햇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금방 살이 벌겋게 익을 정도로 강한 자외선을 가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풀밭에 자리를 깔고 누워 느긋이 하늘을 바라본다. 풀 냄새가 풋풋하니 좋다. 끼룩끼룩 나는 갈매기도 보이고 저 멀리 경비행기도 보인다. '이렇게 이쁜 하늘, 자주 좀 보여주셔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던지고 배팅을 하던 딸은 지난주 보다 더 날렵해진 시구 결과에 신이 났다. 열심히 뛴 당신, 아이스크림 타임이다. 영국은 진한 유제품 맛이 나는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대세다. 양 떼와 소 떼가 지천에 널려 있는 덕분에 영국 사람들은 지역 유제품에 자긍심이 높다. 해변 옆 명물 아이스크림 집 앞에 줄을 선다. 알록달록 차림판에는 온갖 종류의 아이스크림들이 있다. 네 명의 가족이 각각 다른 아이스크림을 골라서는 '이게 더 맛있다', '저건 새로운 맛있네' 맛품평 하느라 바쁘다.
그 뒤로 멀리 해변에는 태닝 하는 사람들, 벌써 물속에 뛰어든 사람들이 보인다. 겨울 바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섭씨 20도면 그들에게는 쉽고 쉬운 유영이겠다. 나는 한 여름에도 대서양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소름이 돋는다. 봄 바다수영은 나에게는 어림없는 일이다.
앞으로 볕 좋은 날이 많아 풍덩 수영할 날 어서 오기를 달콤한 아이스크림 먹으며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