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남편이 만든 점심 식사를 하면서 시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잘 익힌 돼지고기와 삶은 알 감자를 오븐에 구웠다. 짙푸른 케일 이파리와 밝은 주황빛 당근은 찜기로 찌고 그레이비소스를 넉넉히 부어 한 그릇 그득하게 대접한다. 어머니는 미소로 자기 몫을 받아 드시더니 제법 많은 양임에도 깨끗이 다 비우신다. 흰머리가 난 아들은 빈 접시를 치우며 엄마로부터 칭찬받은 듯 기분 좋다.
시 어머니는 최근 55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고, 미망인으로써 홀로서기를 시작하시는 중이다. 평생 배우자를 잃는 것은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고통이라고도 한다. 부부가 워낙 대화가 많고 금슬이 좋으셨던 터라 그 외로움을 어떻게 감내하실지 온 가족이 크고 작게 신경 쓰고 있다.
'주말이면 너무 외롭구나' 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아들네 집들이 돌아가며 한 주씩 모시고 있다. 우리 집에 오신 며칠 옆에서 지켜보니, 어머니는 평소보다 바깥출입이 눈에 띄게 줄었고, 옛날 추억 얘기하는 데에 푹 빠져 계시다.
며느리인 내가 기억하는 추억은 몽땅 시 아버지와 함께 한 최근 기억뿐이라, 얘기하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울린다. 아들이랑 자식들 어렸을 때 여행 갔던 얘기 하실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어머니는 평생 일하느라 바빴던 남편 대신 아들 넷 키운 밥상은 올곧이 아내인 자신의 몫이었다고 한다. 사실 요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이신데 말이다. 다들 한 덩치 하는 아들 넷이 어찌나 잘 먹어대는지 저녁식사마다 넉넉히 음식 준비한다고 하는데도 개 눈 감추듯 없어질 때는 무서운 지경이었다고 하신다. 안 봐도 알 것 같다며 가족 모두 깔깔 웃는다. 아들은 엄마가 해준 음식은 다 맛있었다며 맞장구를 친다. 한창 에너지를 쏟아가며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아가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기운이 나시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날 “엄마, 고기 파이를 좀 구워주세요. 내가 만들면 그 맛이 안 나” 아들이 우는 소리를 한다.
“별 비법이 있는 게 아닌데” 하시면서도 그날 저녁은 어머니가 직접 고기 파이를 만드신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감돈다.
평소 우리는 다진 소고기를 소금, 후추와 같은 기본 양념과 함께 팬에서 잘 볶은 후, 그 위에 페이스트리를 덮어 오븐에 구워낸다. 그때마다 “엄마가 만든 파이는 더 촉촉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한다. 알고 보니 다짐육을 팬에 볶는 것이 아니라 물을 살짝 부어 졸이듯이 익히는 것이었다. 고기에 그 국물이 자작하게 베어 고기 파이 안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하게 만드는 것이 노하우였다.
손녀딸이랑 아들이 배우겠다고 어머니 주위를 맴돌고, 다 구워진 파이는 맛있다고 먹으니 옛 생각도 나고 기분 좋으신가 보다. 먹는 동안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만드는 법을 배우던 이야기도 나오고, 아들들이 워낙 잘 먹으니 주말에 생지를 만들어 놨다가 퇴근하면 금방 익혀 낼 수 있도록 준비해 뒀던 이야기로 이어진다. 파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 그렇게 수다스러운 저녁 시간을 보낸다. 슬쩍 어머니 눈가가 촉촉해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 또한 씩씩하게 넘기신다.
부디 이 여름, 따뜻한 햇볕과 긴 낮시간이 어머니가 다시 기운 차리고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하실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고기 파이를 보면 오늘 저녁 시간 들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