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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Jun 26. 2024

얼마나 맵길래, 영국에서 매운 불닭 볶음면

덴마크 불닭볶음면 회수조치는 한식의 수출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 아닐까  

얼마나 맵길래 판매금지?

덴마크 수의식품청(DVFA)은 삼양식품의 매운 불닭볶음면 3종에 대한 리콜 명령을 내렸다. 해당 제품에 함유된 캅사이신의 함량이 너무 높아 급성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사는 영국에서는 불닭볶음면이 계속 팔리고 있는지 궁금해 마트에 가보니, 평소와 다름없이 잘 보이는 매대에 자리 잡아 여전히 팔리고 있다. 중학생 딸아이를 통해 불닭면 먹은 친구 얘기를 들어봤지만, 정작 나는 먹어 본 적이 없다. 판매금지 할 정도로 맵다고? 얼마나 매운지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


남들 따라 해보고 싶은 인간 본성.

해외 이민 생활, 뜨끈하고 매운 MSG맛이 그리울 때면 한 번씩 찾아 먹는 것이 라면이다. 난 그 맛을 알고 있기에 매운 불닭볶음면 특유의 맵싸한 MSG 향이 올라오자 우선 침샘이 자극된다. 포장 봉지 안에 일반 라면 스프 대신 벌건 소스가 들어있는데, 꼭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닭꼬치에 발라주시던 새빨간 소스 같기도 하다.  


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Youtube) 불닭볶음면 관련 릴스를 훑어본다. 벽안의 청소년 유튜버들이 눈물 콧물 흘려가며 맵다고 호들갑이다. 실제 틱톡에 올라온 불닭 관련 태그 게시물이 3억 6000만 건, 유튜브에서도 불닭 관련 콘텐츠가 수 억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라고 하니 선풍적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자, 이제 내 앞에 놓인 불닭볶음면 시식 시간이다. 시뻘건 색감의 면을 눈으로 보고, 매운 냄새를 코로 맡는다. 침샘은 이미 분수 터진 상황. 내가 아는 맛을 상상하면서 한 젓가락 크게 떠서 입안 가득 불닭면을 채운다. '이 정도면 먹을 수 있다'는 첫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매운 '후 통증'이 인다. 찬물을 마셔보지만 왠지 매운맛을 더 일으키는 것 같다. 예전 매운 닭발 먹던 시절, 쿨피스가 생각나지만 주위에 없으니 대신 우유를 한잔 부어 벌컥 마신다.

 

서유럽인들에게 익숙한 매운맛이란

영국 전통음식에는 고추보다는 향신료로 내는 매운맛에 더 익숙하다.


영국의 전통 머스터드(Mustard)는 제법 맵다. 일본 고추냉이(Wasabi)처럼 양 조절에 실패했다가는 코가 뻥 뚫리고 눈물이 찔끔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주로 고기 파이나 스테이크 먹을 때 잉글리시 머스터드를 포크 끝으로 조금 찍어 발라 먹으면, 그 매운맛 덕에 느끼하거나 고기 특유의 누릿함 없이 맛있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은 단연 인도 커리에서 찾을 수 있다. 강황과 같은 다양한 향신료, 생강, 양파에서 나는 매운맛이다. 인도 본토 음식에 비해서는 크림이나 코코넛을 넣어 매운맛을 중화시킨 편이지만, 은근하게 맵다.  


요즘 힙한 상점들의 경우에는 익숙한 초콜릿에 칠리맛을 가미한다거나 잼보다는 과육식감을 살린 전통 과일 처트니(Chutney)에 칠리를 넣어 과일의 달콤함과 칠리의 매콤함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훈제한 고추를 가루로 만들어 완성된 음식에 살짝 뿌려 먹기도 한다.


식사를 제공하는 펍(Pub)이라면 코리안 BBQ 치킨 메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양념치킨을 본떠 만드는데, 고추장 소스를 발라 나오면 단짠 매운맛이 새로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스페인 타파스나 멕시코 타코 음식에 쓰이는 현지 칠리(Chilly)는 한국 땡고추 이상으로 매운 경우도 많다. 요즘은 다른 세계인들과 마찬가지로 입맛이 보수적이라는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매운맛이 인기다.  

영국 전통 쳐트니(Chutney)에 칠리(chilli)로 다양한 맛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by 세반하별


왜 현대인들은 매운맛에 열광하는가?

나는 스트레스 받은 날이면 매콤한 음식이 땡긴다. 특히 매운 낚지 볶음이 먹고 싶은데, 다음날 배탈이 날 것을 알고도 먹는다. 매운 음식을 먹자마자 땀이 나고 그 매운 통감에 온 정신이 집중되면서 그 날의 고민이 머릿속 지우개 처럼 순간 사라진다. 매운 기운을 누그러뜨리려고 계란찜이나 쿨피스 같은 다른 음식도 먹다보면 어느새 배가 부르다. 포만감에 날카로웠던 신경은 느슨해지고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의 허세가 차오른다.   


이런 육체적, 정신적 반응의 이유가 뭘까? 고추에 함유된 캅사이신은 몸의 자연 진통제인 앤돌핀 분출을 자극한다. 매운 음식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먹는 순간, 신나고 재미있는 느낌을 선사한다. 기능적으로는 매운맛이 혀를 자극해 침샘 분비를 촉진시키고, 달고 짜고 시고 쓴 맛 감각에 매운맛을 더해 먹는 재미를 더한다. 매운맛은 체온을 올려 땀을 배출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부작용도 있는데, 위산을 과다 분비시키고 심장에 자극을 줄 수 있다. 속 쓰림, 설사 등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일부지만 매운맛에 쇼크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매운맛이 자신에게 맞는지 단계별로 경험해 보는 주의가 필요하다.  


 

무분별한 SNS 매운맛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덴마크 수의식품청(DVFA)이 회수 조치에 관한 발표 내용을 다시 한번 찾아 읽어본다.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건강 취약계층의 경우, 이 제품의 매운맛이 쇼크를 일으킬 경우를 우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실제로 2023년 미국에서 14살 청소년이 매운 토르티야 칩을 먹은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 부검 결과 해당 페퀴 칩(chips)에 함유된 다량의 캅사이신이 쇼크에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이 소년의 사망 사고 직후 페퀴 칩 제조사는 해당 제품을 시장에서 전량 회수하고 판매 중지를 발표했다. 당시 제조사는 세계에서 가장 매운 두 가지 고추를 사용한다고 선전하고 있었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틱톡(Tik Tok)'페퀴 칩 챌린지'가 유행중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나니 스테이트(Nanny State, 유모처럼 챙기는 복지국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정책들은 나라마다 자신에 맞는 방식으로 운영되게 마련인데, 영국, 특히 식품기준청(FSA), 의약품 및 건강식품관리청(MHRA)의 경우 허가 및 안전 제도가 무척 세분화되어 관리되고 있다. 알러지 테스트 같은 임상실험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한데, 비단 영국만이 아니라 EU 규율이 그런 경우가 많다.

 

이번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회수 조치는 '식품의 유해성'이 아니라 '매운맛' 때문이라는 점에서 전례 없는 조치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 문화'에서 '개인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의외의 결정이기도 하다.


 

노이즈 마케팅 효과 그리고 한국 음식 문화의 세계화

이번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회수조치 발표 이후 '불닭(Buldak)' 키워드가 구글 검색 트렌드 기준 검색량 최대를 기록했다. 틱톡(TikTok), 유튜브 등 SNS에서는 더욱 인기다. 수출량의 증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판매금지 조치로 삼양식품은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회수 조치 관련, 삼양식품은 국내 공인기관을 통해 해당 제품의 캅사이신량을 측정한 뒤 지난 19일 덴마크 수의식품청에 판매금지조치에 대한 반박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진행 과정을 통해 유럽 시스템이 어떻게 해외, 특히 아시아 음식들을 받아들이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K문화가 다방면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 식문화가 세상에 소개되고, 언제나 새로운 맛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다. 이번 불닭볶음면 리콜 조치는 한식이 유럽에 수출되면서 겪는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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