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차 방문한 밀라노. 그 중심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두오모 성당을 둘러보며 이탈리아 가톨릭 문화에 흠뻑 젖는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성당 밖, 광장에 나와보니 세계 곳곳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아이들과 여행 온 가족들, 설렘이 가득한 연인들, 문화견학을 온 듯한 어린 학생들… 밝은 웃음을 띤 채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남기느라 다들 여념이 없다. 성당을 한참 둘러보고 나니 배가 고프다는 딸들은 남편과 간식을 먹으러 떠나고, 나는 그 광장 옆 대형 이탈리아 서점으로 향한다.
이탈리아 밀라노 서점가 모습 by 세반하별
내가 살고 있는 영국 서점가에서는 요즘 한국 작가 작품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내의 유명작가에서부터 재외국민 작가들, 더 나아가 한국 소재의 해외 작가들 작품까지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을 만큼 소개되는 작품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하면 일본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한국 작품을 찾은 날은 특별한 날로 신이 나고는 했었다. K팝, K 영화 등 다른 한류 문화의 흐름에 따라 서점가에 K문학이 예전과 다르게 활발히 영국서점가에 선보이고 있어, 현지에서 얼마나 기쁜 마음인지 모른다.
이탈리아 서점가에도 한국 작품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이탈리아 말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표현밖에 할 줄 모르지만, 서점에 들어가 키오스크 직원에게 물어본다. 두어 사람을 거쳐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을 만난다. 우선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구역이 따로 있는지, 아니라면 이 큰 서점에서 어떻게 관련 서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지 물어본다. 사실 담당 직원은 내 질문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선 따로 아시아 작품들만 모여 있지 않고, 테마별로 흩어져 있으니 둘러보기를 권한다. 그러면서 다른 층, 영어로 번안된 책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 가보라며 추천한다.
간간히 일본 소설들이 눈에 띈다. 많지는 않지만 중국계 작가나 베트남 작가의 소설도 보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작가의 작품은 이탈리아어 번안서로는 찾을 수가 없다. 2층 외국어 서적 파트, 영어 번안 책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 간다. 구석구석 찾던 중 방탄소년단BTS의 10년간의 경험을 담은 자서전 그리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찾았다. 백세희 작가의 작품인 이 에세이집은 내가 이미 영국 서점가에서 찾아 읽어본 경험이 있다.
밀라노에서 발견한 한국 문학 작품들 by 세반하별
작가가 겪은 우울증 그리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나간 자서전적 이야기다. 저자는 우울증과 두려움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의 이런 감정의 원인을 찾고 그 아픈 마음을 보듬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죽을 만큼 힘든 마음이지만, 그러다가도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한다. ‘떡볶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련한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한국인의 소울 푸드. ‘떡볶이’라는 음식이 주는 감성을 통해 아프지만 살고 싶은 마음, 치유받고 싶은 작가의 심정이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일상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말고 즐기세요’, ‘힘들면 쉬어도 돼요’ 와 같은 구절들을 통해 백세희 작가는 아픈 마음의 사람들을 보듬고 용기를 전한다.
영국, 미국의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작가의 이 마음이 잘 전달된 듯하다. 아마존 사이트에 남겨진 이 작품에 대한 평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다. 같이 공감하며 울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이번 에세이를 통해 한국 작가의 작품에 더 관심이 생겼다는 이야기들까지 그 평가가 다양하고 호의적이다.
이탈리아의 독자들도 한국이라는 먼 나라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현대인이라면 감기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한 감정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하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세상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넓혀 놓았다.
아쉽게도 이탈리아 대도시 밀라노의 중심, 두오모 성당 앞 서점에서는 오직 이 한 권의 한국 작가 작품만을 만날 수 있었다. 찾을 수 있어 반갑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미 영어판을 사서 읽었음에도 또다시 한 권을 구매한다. 해외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한국 작가의 작품을 보면 미약하나마 판매 부수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묻지 않고 사는 버릇이 생겼다.
책 한 권을 들고 서점을 나서는 길, 아시아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준 서점 직원이 다가온다. 원하는 책을 찾았는지 묻기도 하고,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만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 배경으로 한국 문학 만난 기념 사진 찍어봤어요 by 세반하별
인사를 나누고 서점을 나서자마자 이탈리아 여행 중에 만난 이 귀한 한국 작가의 작품을 두오모 성당을 배경 삼아 사진으로 남겨본다. 마침 간식 먹고 여유로운 표정이 된 아이들과 남편이 나를 보고는 길 건너편에서 반갑게 손을 흔든다.
여행이 주는 색다름, 이질감을 즐기다가도, 이 아무도 모르는 밀라노 한복판에서 한국 소설가 작품 한 권, 잠깐 간식 먹느라 헤어졌지만 그 마저도 미주알고주알 얘기 전하느라 바쁜 가족들이 주는 따뜻한 익숙함이 참 좋다.
직접 서점을 둘러봤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한국 작품이 이탈리아 현지에서 소개되고 있는가 궁금하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얼른 관련 검색을 해본다.
2022년 1월, 백현주[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탈리아/피사 통신원의 기사를 인용해 보면 구병모 작가의 <파과 (Artiglio). 가 이탈리아어로 번역, 2021년 4월 출판해 좋은 평을 얻었고,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Le orgini del male)>,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Kim-Ji Young, nata nel 1982)>도 이탈리아 아마존 등에서 이탈리아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는 기사 내용을 검색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매년 수여하는 2023년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자에 이탈리아인 리아 요베니티씨가 선정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요베니티씨는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를 번역해 수상자가 되었다. 이탈리아어로 출간되는 한국 문학 작품이 늘고 있지만 번역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그녀의 인터뷰 내용에 주목하게 된다.
며칠 후 나는 밀라노를 떠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밀라노 중앙 기차역에 있는 다른 대형 서점에도 들러보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K팝, K영화 등 세계적으로 한류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아직 비 영어권인 이탈리아에 소개되고 있는 한국 문학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반면 서점을 둘러보면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탈리아 독자들의 관심사를 느낄 수는 있었다. 여전히 일본 소설이 다른 아시아 작품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다음으로는 동남아시아 지역 특히 옛 유럽 식민지였던 나라 작가들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전통적인 아시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부터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나 일본 작가작품인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처럼 사람들이 편안하게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의 책들도 많았다. 상상을 자극하는 픽션 문학들도 매대에 전시되어 있다.
요즘 영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이 점점 활발히 성장해 나가듯이, 비 영어권 국가들에서도 현지인들이 관심 가질만한 좋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