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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Sep 20. 2024

이탈리아 맥도널드에서는  병맥주를 판다.

이탈리아는 술 보다는 음식과의 궁합에 초점을 맞추다

늦은 오후, 점심을 먹었음에도 딸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밀라노 시내 한 맥도널드 음식점에 들어간다. 세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내부 분위기.  셀프주문이 가능한 키오스크에서 영어로 불편함 없이 음식을 주문한다.


간식거리를 고르고 이제는 음료를 정해야 할 순간이다. 아이들은 콜라에 사이다를 주문한다. 딱히 음료 생각이 없던 나는 이 페이지, 저 페이지 기웃거리다가 내 눈을 의심한다. 병맥주를 주문할 수 있다.


'잠깐, 내가 지금 어느 음식점에 들어와 있더라.'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이 출출할 때 심심치 않게 방문하는, 부담 없는 그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맞다.

맥도널드 직원과 맥주판매에 대한 이야기 by 세반하별

나는 맥주에 관한 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에서 살고 있다. 깊은 맛과 향, 효모가 살아 숨 쉬는 맥주를 즐길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과도한 알코올 섭취, 과한 음주문화가 불러오는 훌리건 같은 사회적 문제점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살다가 맥도널드에서 맥주를, 그것도 '병'맥주를 파는 이탈리아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청소년 음주 문제는 괜찮은가? 과음으로 인한 사회 문제는? 맥도널드 같은 프랜차이즈 점에 주류 판매 허가가 난다고?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 오는, 내 상식이 상식이 아닐 수도 있는 혼돈이 온다.  단지 영국만이 아니다. 뉴욕, 런던, 서울 그 어느 맥도널드 지점에서도 볼 수 던 병맥주 판매가 어떻게 이탈리아에서는 가능한 것일까.


나와 짝꿍은 주문한 음식을 수령하러 카운터에 간다. 마침 점장으로 보이는 직원이 접객 준비를 하고 서 있다.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점장은 330ml 병맥주를 파는 것이 맞고 밤 10시 이후에는 일회용 컵에 담아 판매한다고 한다. 술 판매하면서 애로사항이 없는지 물었더니 별 감흥 없이 다른 음료 파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답한다.


나온 음식을 받아 들고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는다. 맛 좋은 일반 이탈리아 맥주다. 더운 나라에 걸맞은 라거 맥주였는데, 청량감을 주어 더운 여름 밖에서 마시니 좋다. 맥도널드 맞은편 케이에프씨(KFC) 매장이 눈에 띈다. 혹시나 하고 매장에 들어가 셀프주문스크린을 둘러보니 여기에서도 맥주를 판다.  키오스크 뒤편, 손님이 보기 좋게 맥주 냉장고가 서 있다.

KFC에서도 맥주를 팔고 있다 by 세반하별

무엇이 이런 다른 주류 문화를 만드는 것일까.


짝꿍은 영국의 술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즘은 펍이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술과 음식을 같이 취급하는 곳이 많지만, 자신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전통 펍은 음식을 서빙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 또는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펍에 들려 간단히 맥주 한잔 하면서 시간을 갖는 것이 전통적인 문화다. 그러다 보니 주말 저녁에도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 술을 마시는 것이 당연했었다는 것이다.


맥주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안주를 먹어서는 방해가 된다는 지론도 펼친다. 홉의 종류나 발효정도에 따라 수많은 맥주가 만들어지는데, 그 맛은 술 그대로 느껴야 안다고 말한다.  날씨가 더운 남부 유럽의 맥주는 '라거'라는 가벼운 맥주가 대세다. 그에 비해 영국의 맥주는 라거부터 맥주까지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다양한 영국 맥주의 매력이 있다.


그에 비해 남부 유럽은 날씨가 더우니 무거운 맥주보다는 비교적 가볍고 청량감이 드는 음료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주로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몸에 무리가 없도록 음식을 조금씩  자주 즐기는 것도 기후 차이에서 이유를 찾아본다.


저녁 먹기에는 이른 오후 시간, 스프릿츠(Spritz)라는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스페인 샹그리아(Sangria)와 비슷한데, 프로세코라는 샴페인 종류의 알코올에 캄파리, 아페롤 같은 진한 스트레이트 그리고 토닉워터로 청량감을 살려준다. 오렌지 같은 과일을 얹어 내어 주어 그 청량함이 눈으로도 맛으로도 즐길 수 있다. 가볍게 와인 한잔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늦은 오후, 간식거리와 함께 즐기는 스프릿츠 by 세반하별

이탈리아는 스페인처럼 시에스타(Siesta : 뜨거운 대낮, 쉬는 시간을 갖는 문화)를 철저히 지키는 것 같지는 않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저녁 7시 즈음부터 사람들이 모이고 붐비기 시작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맥주 이 외은 모두 기본 서빙 음식이다 by 세반하별

밀라노에 어느 날, 찌는 듯한 무더위에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난다. 주인장은 현지 이탈리아인이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식전 음식처럼 작은 접시에 바게트 빵 위에 햄과 치즈, 루꼴라를 얹어 술안주를 내어놓는다. “안 시켰는데요” 하니 “이건 우리가 내어드리는 음식입니다”라며 편안히 즐기라고 한다. 영국남자인 짝꿍은 “서비스 안주 말고 맥주값을 더 싸게 받으면 좋으련만” 아쉬워 한다.


다음날인 8월 24일. 에이씨밀란(AC Milan)과 파르마 가르치오(Parma Calcio)의 축구 경기가 있었다. 축구하면 맥주다 싶어 근처 주점을 찾는다.

지역 주민들이 찾는 이탈리아 주점 by 세반하별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을 법한 허름한 다. 맥주를 주문하니 주인장은 마련해 놓은 음식은 무료이니 맥주와 함께 즐기라며 안내한다. 뒤를 돌아보니 아예 음식을 뷔페로 차려 놓았다.


안주 없이 맥주를 마시는 문화에, 더 나아가 공짜가 없는 영국에서 온 우리는 이런 후한 대접이 낯설고 반갑다. 한편 궁금하다. 저렇게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게 안주를 제공하면 분명 과하게 즐기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 수요를 어떻게 감당하는 걸까.


마침 한 무리의 지역 중년 사내들이 경기 전, 텔레비젼 앞에 모이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조그만 한 접시만큼의 안주를 챙겨 앉지만, 한 사람은 한 끼 넉넉할 만큼의 안주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챙겨 먹는다. 바 사장과 손님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하다. 암암리에 과하지 않게 적당히 뷔페 음식을 즐기는 것이 서로 간의 문화로 자리잡혀 있는 듯 하다. 아니면 맥주를 많이 사 먹든지 말이다.


지역 주점에서  음식에 관한 한 인심 좋은 이탈리아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관광객 대상 음식점은 달랐다. 원래대로 주문하는 음식만 서빙한다.

경기 시작 전, 조용하던 주점이 축구팬들로 붐빈다. 전력상으로는 에이씨밀란이 앞서는 데다가 나는 지금 밀라노다. 홈팀 응원에 동참한다. 역시 경기는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경기 결과 2대 1로 파르마 승. 밀란 팬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예상보다 졸전에 실망한 탓이다.  


경기가 끝나자 다시 펍은 조용해진다. 축구경기와 맥주는 이곳 이탈리아에서도 찰떡궁합이지만, 역시 대부분 사람들은 와인이나 다른 주류를 저녁식사와 함께 즐기는 것이 문화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맥도널드에서 파는 병맥주와 지역 펍의 접객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사랑하고,  술은 그 자체로 보다는 음식과 함께 하는, 과하지 않게 즐기는 짝꿍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영국과 이탈리아. 그리 크지 않은 유럽 대륙이 흥미진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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